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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우먼 Nov 14. 2022

9. 다음 개기월식은 천국에서

우주에 빠진 아이

개기월식 중

 



 며칠 전에는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는 개기월식이 일어난 날이었다. 그날은 개기월식에 이어 천왕성이 달 뒤로 숨는 천왕성 엄폐도 일어나는 날이며 수백 년 만에 한 번 찾아오는 광경이라고 한다. 같은 현상을 보려면 200년 뒤에나 볼 수 있다고..

 

 몇 주 전부터 밤하늘에 달이 엄청 밝고 별도 그 밝기가 밝아서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H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이는 그럴 때마다 카메라 화소수가 높은 내 핸드폰 카메라를 빌려 베란다 창문에 붙어 달과 별을 찍어댔다. 카메라가 확실히 좋아 줌으로 확대를 하니 달의 모습도 별의 모양과 색깔도 볼 수 있었다. H는 찍힌 사진을 보며 이게 어떤 별인지 아니면 행성인지 궁금해서 책과 어플을 찾아보며 확인했다.


 H가 우주에 급속도로 빠진 것은 작년 초 즈음이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우주의 행성, 별 등의 사이즈를 비교한 영상을 보게 된 것이 출발점인 것 같다. 시각인 예민한 아이에게 실제로 우주 안의 행성과 별의 모습과 그 크기를 보기 좋게 비교한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나 보다. 

 "저게 저렇게나 크다고? 태양보다 큰 별이 있다고?" 연신 감탄을 멈추지 않으며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보았고 그 채널의 다른 우주 영상들도 보기 시작했다. 아이는 급기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작은 수첩을 가져와 크기를 적으며 정리를 했다. 나는 별의 크기를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아이가 스스로 빠진 관심사에 어떤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서 집에 있는 관련 책에 별 이름에 대해 정보를 찾아보거나 검색을 해주기도 했다. 

 '베가, 앜투르스, 카펠라, 알데바란...' 이런 별들의 정보는 집에 있는 아이들이 볼 만한 우주관련 책에는 나와있지 않았다.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의 얼굴을 보니 안 되겠다 싶어 같이 도서관을 오가며 전문 코너에 가서 두꺼운 책들을 빌려보았고 그러는 사이 아이는 점점 우주 박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런 노력의 결과물을 얻고 싶기도 하였고 그전에 지능 검사를 하러 갔던 영재원 수업 교실 밖에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만들어 놓은 짧은 책을 본 적이 있어서 H에게 '직접 만든 우주 책'을 제안해 보았다. 아이는 처음에는 너무 재밌겠다며 내 제안에 걸려들었다.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책을 만들 건지 기획을 하였고 아이는 행성에 대해 자기가 본 책들의 내용을 적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한 두 번은 신나게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색칠도 하며 중요한 정보들을 옮겨 적었다. 하지만 완성을 위한 꾸준한 작업을 힘들어했다. 나는 보상을 걸며 겨우겨우 아이를 설득했고 한 달 여 만에 책은 완성이 되었다. (사실 책이라기 보단 자기가 정리한 행성 정보 정도이다.)


아이가 만든 우주책의 일부


 



 역시 완성작을 직접 보니 스스로 뿌듯해했다. 나는 이 외에도 원데이 줌 수업으로 우주 수업을 신청해서 듣게 하기도 했고, 과학관에서 야간 천체 관측 프로그램은 신청하며 아이의 관심사를 확장시켜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마냥 순탄치는 않았다. 어렵게 예약을 한 야간 천체 관측 날에 하필 폭우가 쏟아져 취소가 되는가 하면 그래서 다시 토성을 관측할 기회가 생겼는데 코로나 거리두기로 예고 없이 연기되기도 하였다. 


 그러고 1년 후인 지금, 아이는 아직도 우주의 행성을 알아보고 직접 찾아보는 게 자기의 큰 즐거움 중에 하나이다. 이럴 땐 가끔 내가 별 박사였다면 아이에게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몰려온다. 오늘은 천문학자, 내일은 축구 선수, 그다음엔 역사 전문가.. 이렇게 직업을 여러 개 가졌더라면 우리 아이도 아쉬움 없이 매일 채움을 받았을 텐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같이 밤에 별 보러 나가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서치 해서 책 빌려다 주는 일뿐인 게 가끔은 미안할 때가 있다.


 개기월식의 사진을 찍으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다음 개기월식과 천왕성 엄폐는 같이 천국에서 볼 수 있겠네" 

"^^... 그러네.. 그때 H가 천문학자가 되어서 사람들한테 재미있게 별 보면서 설명해줘 ^^"

라고 말하며 아이를 설레게 해 본다. 

설레는 아이를 보며 마음 한편이 뜨뜻해진다. 


'너의 열정의 결과를 내가 감히 예측할 순 없지만 늘 즐겁고 행복한 아이가 되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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