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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우먼 Jan 23. 2022

2. 검사를 해보라고?

큰 숙제를 얻다




안정적인 아이

 

 H는 즐겁게 어린이집을 다녔다. 너무나 긍정적이고 항상 즐거운 아이라서- 처음에는 보통 적응기간을 갖는다는데 H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몇 년 다녔던 아이처럼 엄마와 잘 떨어졌고 친구들도 너무 좋아했다. 아파트 단지 내 작은 가정 어린이집이었지만 처음으로 여러 활동들을 해보고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는 첫 공동체 환경을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먼 타지로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도, 친구도 없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집안일을 하고 커피 한잔을 하고 낮잠도 자다가 아이가 하원을 하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이 좋았다. 하원 후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으로 와서 남편이 퇴근하면 같이 저녁을 먹고 놀다가 자는 시간들이었다.


 결혼 후 H가 태어날 때 즘 우리 가족은 먼 타지로 이사를 왔다. 결혼 후 남편은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둬야 했고 이후 직장을 먼 곳으로 옮겨 주말 부부로 지내다가 왠지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급하게 집을 알아봐 작은 전셋집으로 이사를 왔다. 어른이 되어 가족을 이루고 처음으로 경험해본 낯선 환경들이었다. 낯선 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온전히 우리 가족을 바라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부모님이 보고 싶고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면 더 남편을 의지하고 아이를 한껏 따뜻한 눈빛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H와 둘이 있는 시간을 오롯이 둘만의 시간으로 보내니 아이와 교류하는 시간이 많았다. 같이 티타임을 갖고 책도 읽어주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다 알아듣겠거니 하면서 H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 알아듣는다는 듯, 눈빛으로 소리로 손짓으로, 어떤 식으로든지 대답을 하였다. 그러면 또 나는 반응하였고 그렇게 우리는 나이차는 많이 났지만 좋은 친구가 되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니 아이의 발달 사항들을 선생님으로부터 들을 때가 종종 있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활동에서 호기심을 보이며 언어 표현이 빠르다'라는 내용들이었다. 어느 날은 선생님께서 이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셨다. 활동시간에 플래시 메소드 방법(일정한 규칙의 카드를 이용해 재빨리 카드를 넘기는 방식으로 1초 안에 빠르게 카드를 보여줌으로써 좌뇌가 반응하기 전에 무의식의 영역인 우뇌가 반응하게 하는 방법)으로 아이들과 활동을 하였는데, 그림 한번, 글자 한번 보여주고 난 다음에 글자만 보여줬을 때도 H는 그게 무엇인지 맞췄다는 말씀을 하셨다. 뭐지? 싶었다. 난 한글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교육관?



 그때 당시 난 교육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집 안 곳곳에 책이 널브러져 있지만 그때는 집이 너무 좁기도 하고 책은 비싸다는 인식이 강해서 살 엄두도 못 냈다. 중고로 책을 살 수 있다는 개념도 그때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다. 홈쇼핑에서 처음으로 베이비 전집, 파란 토끼를 산 게 전부였다.

 

 아! 그리고 하나는 예외로 확고한 교육관이 있었다. 영어 듣기(지금은 영어 노출이라고 대중화되어 있다)는 어렸을 적부터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유는 내가 영어 듣기에 고생을 했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독해와 문법은 노력을 하니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유독 듣기에서 점수를 까먹었고 토익에서도 리스닝 점수를 기본적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늘 한이 되었었다. 이런 좌절감은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돌 전에도 15분씩 영어 영상을 보여줬다. 돌 전까지의 영상은 아이에게 안 좋다고 하지만 영상을 아예 안보는 환경은 만들어주기 어려웠다. 시간을 지켜서 영어로 조금씩 보여줬었다. 

 그래서 그런가 H는 어린이집 영어 시간을 좋아했다. 영어 프로그램에 불만이 있었던 엄마들이 있었는데 나는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저 아이가 좋아하니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집에서는 자주 노래를 들었다. 동요를 듣기도 했지만 남편은 당시 교회에서 드럼을 치고 있어서 연습 곡을 많이 들어야 했다. 그래서 저녁에 노래를 자주 틀어놓고 박자를 맞추는 연습을 하면 H도 옆에서 노래를 따라 하고 박자를 맞췄다. 나도 예전에 건반으로 반주를 했어서 집에 작은 연습용 건반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를 조그만 듣고도 잘 따라 하고 흥이 많았다. 


 특별히 내가 신경을 쓰는 부분은 없었고 다른 것보다 H의 시선과 관심을 잘 맞춰주려고 했다. 책을 읽어 달라면 책을 읽어줬고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 놀이도 많이 했다. 아빠를 기다리러 산책할 겸 밖으로 나간 시간에 도로 위로 지나가는 자동차도 참 많이 보았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한참 동안 버스가 멈췄다 지나가는 것도 보기도 했다. 자동차 이름을 물어보면 알려주고 빠빵타러 가자! 하면 좋아해서 바로 나가는 아이였다. 점점 알게 된 차종의 이름도 많아졌고 친구 엄마들과 있을 때도 자동차 이름을 맞춰 엄마들은 자동차 천재 아니냐며 놀라기도 했다. 




졸업


 이렇게 2년의 어린이집 생활도 끝날 무렵. 어느 날 원장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데리러 간 나에게 길게 말씀을 하셨다. 내용은

' H가 모든 활동에서 두각을 보이고 언어 인지도 빠른 것 같다. 빠른 수준에 비해 쓰기는 좀 약한 것 같다. 지능 검사를 한 번 받아보면 좋을 것 같다'라는 이야기였다.


 ' 지능검사? 그거는 어떤 거지? 어디서 받는 거지? 쓰기? 쓰기가 약한 게 아니라 다른 게 빠른 거 아닌가? '


 내 속에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복잡해서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몇 가지를 여쭤보고 난 큰 숙제를 얻은 느낌으로 H의 어린이집을 졸업시켰다. 

 

 원장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은 나의 시선을 H와 교육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 신경을 쓰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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