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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 Dec 10. 2015

Rio, Lapa 의 밤.

해달 여행기 | Rio De Janeiro

@2013년 1월.


오스틴이 말했다.

“Oh shit, I forgot to bring my ID.”
30분 택시를 타고 달려간 곳은 리오의 구시가지인 Lapa였다. 12시까지 늦은 저녁과 디저트까지 마치고 도착한 시각은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파네마 해변과 코파카바나 해변가를 달리며 한적한 금요일밤의 풍경에 의아해 했던 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구시가지에서 리오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일방통행길을 빙글빙글 돌다가 마침내 도착한 클럽 앞에서, 오스틴이 신용카드와 현금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저녁을 먹기 시작하고서부터 이곳에 오기까지 2시간이나 기다린 보이텍은 벌써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What the f*ck up, you dude, you didn’t bring your ID? Huh?”


둘은 금방이라도 싸울 기세였다. 클럽 앞을 지키고 선 덩치 커다란 물라토 브라질 가드는 아무리 애원해도 들여보내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택시비만 3만원을 썼는데. 살인적인 브라질의 물가가 새삼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다. 일단 보이텍을 진정시키고, 클럽 안에서 보이텍을 기다린다던 친구에게 보내 주기로 했다.

보이텍 (Wojtek) 이 들어간 클럽. 리오에서 가장 핫한 클럽 중 하나. Carioca da Gema. (c) Rio.com


“You can go alone. I will stay with him here. Please go ahead and enjoy!”

도저히 새벽 브라질리언들이 가득한 Lapa에서, 택시비 3만원을 다시 내고 돌아가는 오스틴을 볼 수가 없어 같이 남기로 했다. 오스틴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난 기쁘게 남았다. 오스틴과 함께라면 이 새벽의 열광적인 사람들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어제 그는 혼자 Christ redeemer의 중간까지 “기어서” 올라갔다 온 사람이니까.


보이텍이 먼저 들어간 후, 우리는 다른 일행을 바깥에서 기다렸다. 그들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았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핸드폰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 연락을 취할 수가 없었다. 반쯤 부식된 벽에 알록달록한 페인트와 형광 핑크색과 초록색 조명등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시끌벅적하게 밖에서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도 어느정도 진정이 되어 점차 거리는 조용해져 갔다. 몇 분쯤 바깥에서 다른 일행을 기다리던 우리는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른 일행은 이미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Why don’t we just check the “futuristic” church out there?”

나는 택시를 타고 오다 본, 마야 문명의 아즈텍 사원 탑 모양의 교회에 가보고 싶었다. 어제 이파네마 해변에서 만난 아산이 중심가에 탑 처럼 생긴 “21세기형 교회” 가 있다고 했었는데, 택시를 타고 지나가다 문득 발견했다. 교회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밤이라 붉은 조명을 밝혔는데, 왠지 모르게 노숙자들과 어우려져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었다. 우리는 시끌벅적한 거리를 떠나 육교를 건너 기이한 모양의 탑처럼 생긴 교회 쪽으로 향했다.

Cathederal de Metropolitana. 우주의 신전 같다. (c) Rio.com


“Wow, it looks amazing. I really want to go closer.”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클럽은 어디에나 있고, 그리고 언제든 갈 수 있다. 비록 리오는 아닐 지라도. 그렇지만 언제, 새벽 2시에, 이렇게 리오 한복판 – 그것도 경찰차가 수시로 돌아다니는, 우범지역이라는 것이 매우 명확한 – 에서 산책을 해 볼수가 있을까. 가까이서 바라본 교회의 모양은 마치 신전 같은 느낌을 풍겼다. 아마존에서 제물을 바치는 제단으로 쓰이는 모양새 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스틴이 인디언 소수 민족을 다룬 미래지향적 영화에서 비슷한 제단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시간이 늦은 탓일까, 문은 굳게 닫혀서 내부를 들여다 보지는 못했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콘크리트 탑 모양의 교회. 과연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크게 교회 건물을 타고 한바퀴 돌아본 우리는 Lapa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은 어림잡아 50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르몬 교도라서 술은 마시지 않는 오스틴 덕분에, 카이피리냐를 파는 가판대도 일단 통과. 가까이서 본 Lapa는 생각보다 크다. 흰색 아치 아래에는 곳곳에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까 들어가려 했던 클럽은 입장료가 2만원이 넘는 고급 클럽인데, 이곳은 현지 사람들이 3천원 하는 카이피리냐를 한잔씩 들고 신나게 춤추는, 여름밤의 홍대 놀이터 같은 느낌이다. 한쪽에서 젬베로 리듬을 만들자, 금세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디든지 클럽인 것이다. 모두가 축제였다. 지금이 이럴진대, 과연 삼바 페스티벌 시즌에는, 월드컵 시즌에는, 얼마나 더 대단해 질까.

Arcos da Lapa, Lapa다리 앞의 밤풍경. (c) Notibras


Lapa다리를 타고 우리는 좀더 탐험해 보기로 했다. 언덕 위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이 보여서 무작정 그쪽으로 향했다. 작은 광장 앞에는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술을 나르고, 누군가는 음악을 만든다. 누군가는 엉덩이를 흔들고, 누군가는 알수없는 연기를 피운다. 이곳이 브라질이구나, 하고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있던 곳은, 잘 싸여지고 포장된 예쁜 모습의 어항 속이었던 것이다. 음악에 따라 신나게 몸을 흔드는, 쟁반에 카이피리냐 5잔을 지고 옆을 지나가는 레게 머리의 여인에게서 브라질의 냄새가 났다. 브라질을 떠나기 하루 전, 나는 브라질의 심장 속에 들어와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한 골목. 거리가 모두 흥겨운 파티장이 된다. (c) Tripadvisor.com.br


사람들로 꽉 찬 광장을 빠져나오는 데에는 무려 20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오스틴과 나는 Lapa탐험을 마치고, 다시 클럽 쪽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새벽 2시가 넘어도 광장은 활기가 넘쳤다. Lapa의 아치를 지나, 포르투갈과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알록달록한 3층건물들로 가득한 거리를 걸어서 우리는 친구들이 있던 클럽 쪽으로 향했다. 새벽시간이 깊었는데도, 거리에는 퍼포먼스를 하는 그룹과 음악을 연주하는 그룹들이 가득하다.


중간쯤 돌아갔을 때, 길 모퉁이에서 삼바음악이 흘러나왔다. 오스틴과 나는 서로 마주보고 피식, 하고 웃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스꽝스런 삼바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메인 거리에서 약간 벗어난 도로는 한산했고, 음악은 거리에서 춤출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미러볼이 달린 듯한 2층 삼바 바에서는 흥겨운 삼바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Do you think this is the right step?”
“I have no-idea. I just try to dance, like what I learned from Morumbi.”

거리의 건물들에서는 끊임없이 흥겨운 삼바 음악이 흘러나온다. (c) Rio.com


다이아몬드 스텝인지, 엇박자 스텝인지, 삼바인지 막춤인지도 알수없는 춤. 브라질이 가진 음악의 매력, 에너지의 분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라틴아메리카의 정수를, 나는 하룻 밤 사이에 모두 흡수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음악을 즐기고 있던 그때, 우리 옆으로 “Copacabana”라는 표지가 적힌 버스가 지나갔다. 오스틴과 나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외쳤다.

“Let’s take a bus back home!!”

우리는 큰길가로 나가서 버스 정류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간을 2시를 넘기고 있어서 과연 버스가 계속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호텔이 있는 Leblon에 가까이 가서 택시를 잡자는 것이 우리의 공통 목표였다. 택시비를 아껴야지. 괜히 빙글빙글 돌면서 택시비만 올리는 고약한 리오의 택시 기사에게 다시 속고 싶지 않았다. 얼마를 걸었을까, 뒤에서 버스 한대가 다가왔다. 정류장은 50미터 앞에 있었다. 혹시 안될까, 여기 브라질인데.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역시, 여기 emerging country 맞구나. 버스는 정류장이 아닌데도 우리를 보고선 문을 열어줬다. 더 다행인 건, 버스가 바로 Leblon 행이였다는거다. 3레알, 1500원으로 집까지 갈 수 있다.

브라질에 있던 2주 동안, 한 번도 버스를 타본 적이 없었다. 원래 내 성격이라면 버스를 몇 번이고도 탔겠지만, 택시의 편한 생활에 익숙해진 친구들에게 버스는 위험하고 귀찮은 교통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오스틴에게는 예외였다. 좀 괴짜 같은 면이 있는 오스틴은 모험과 스포츠, 그리고 익스트림한 상황을 즐겼다. 심야의 버스는 덜컹거리며 아무도 없는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택시처럼 돌지 않고, 터널과 호수를 지나간다. 조용하고 야심한 시각, Leblon이라는 글씨를 전광판에 크게 밝힌 버스. 3시가 넘어가는 시각에 졸린 눈을 하고 엎드린 버스의 차장. Leblon의 끝자락에 내려 바닷가를 조용히 걸어, 오스틴과 나는 호텔로 돌아왔다. 잊을 수 없는 모험의 밤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음에, 다시 한 번 서로에게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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