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달감상기 | Seoul
@2018년 3월.
넷플릭스의 98% match.
이것은 그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숫자였다. SF장르와 미스테리 장르를 특히 좋아하는 나에게 벗어날 수 없는 유혹. 북미에서는 개봉했지만 이외의 국가에서는 넷플릭스로 서비스된다. 소름끼치게 미래적이며 감각적이고 미학적이었던 엑스 마키나 (Ex-Machina) 감독인 Alex Garland 감독의 신작. 게다가 주연은 나탈리 포트만. 주저없이 저장해 놓았다가, PLAY.
(한국 제목은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이라 불린다.)
Georgetown 의 저명한 생물학 교수인 Lena의 강의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는 Lena. 알고 보면 Lena의 남편인 Kane은 군인으로서 특수 임무에 파견된 후 1년째 연락 두절에 행방불명 상태이고, Lena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남편을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지내고 있다. 일상 생활을 남들과 똑같이 즐기면서 지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Lena 역시 군인이었기 때문에, 남편의 사라짐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체념해 버린 것.
그러던 어느 날, Kane이 휴일에 집안을 페인트칠 하던 Lena 앞에 거짓말처럼 다시 나타나게 되고, 지난 1년간의 기억과, 어떻게 돌아왔는지에 대한 기억이 깡그리 사라져버렸노라 말한다. 떠나기 전 지극히 건강하고 밝았던 Kane이었지만, 1년만에 돌아온 Kane은 정상이 아닌 것만 같다.
어딘가 아파보이던 Kane은 물을 마시다가, 각혈을 하고 급작스럽게 쓰러진다. 급하게 911을 부른 Lena, 그러나 의식을 잃은 Kane을 구급차에 실어가던 도중 둘은 군 특수 부대에게 추적당하고, 어디론가 알 수 없는 장소로 "극비" 라는 이름 아래 이송된다. 그곳에서 맞닥뜨린 비밀의 실체, Shimmer.
알 수 없는 외계의 물질이 충돌한 이후, 충돌 지점인 등대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의 공간 자체가 이지러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마치 비누방울로 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Shimmer의 영역은 점점 더 확대되어져 가고 있으며, 미국 국방부 및 정보부에서는 지난 몇년 간 극비리에 탐험을 시도했으나, 한번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연락 두절, 통신 두절, 추적 불가의 상태. 그런데 Lena의 남편 Kane이 살아서 돌아온 첫 사례였던 것이다. Shimmer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Kane을 추적한 당국, 그러나 Kane은 Lena앞에서 쓰러진 이후 혼수상태에 빠졌고, 다시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Lena는 너무나 사랑했던 남편 Kane을 살리기 위해, 그가 위험에 빠진 원인을 알아야 겠다고 판단하고, 차기 Shimmer 원정대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차기 Shimmer 원정대는 모두 여성으로 꾸려졌으며, 지금까지의 탐사 팀을 총지휘 했었던 Ventress 박사가 리더로 나서게 된다.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Shimmer는 점점 확장되어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 셈. 박사도 본인의 명운을 걸었다. 군인으로서 훈련받았던 경험과, 생물학자로서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다는 바를 강조하며, Lena는 Ventress 박사 이외 다른 대원들에게는 남편의 이야기를 숨긴 채 탐사 팀의 일원으로 Shimmer로 향한다.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말할 수 없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품은 5명의 대원들은 중무장을 한 채, 비오는 날 물웅덩이 위 자동차 윤활유가 떨어져 무지개 무늬가 뜬 것만 같은 Shimmer의 장막 속으로 성큼, 한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5명의 대원들이 모든것을 "굴절" 시켜 버리는 Shimmer의 특성에 따라 겪는 다양한 물질적, 비물질적 변화들을 체험하는 내용을 다룬다. 그들은 Kane을 포함했던 전 탐사대의 흔적을 쫓고, Shimmer 안에서의 변형된 사례들을 추적하고, 그리고 끝내 Shimmer의 양상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Shimmer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 특질은 지구상의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그것이 5명의 대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는 거울과 같은 존재로 작용하는 것이 본질일 지 모른다. 거울이란 것 역시, 실체가 아닌 빛을 굴절시키는 장치이므로.
외계에서 온 물질이 충돌했던 근원인 등대에 가까이 가서 그 핵심을 바라본 순간, Lena는 Kane에게 일어났던 일들과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이해하게 된다. 생물학자였던 Lena에게 있어서, 등대에 새겨진 충돌 흔적은 세포 분열시의 최초의 세포 핵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최초의 세포는 세포 분열을 통해 또다른 세상을 꿈꾼다.
모든 것이 소멸되는 듯했던 그 근원에서, 새로운 분열이 시작된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파멸 (Annihilation) 의 끝이 다시 새로운 시작. 근원의 개체에 접촉해 자아복제가 일어나는 순간, Lena는 둘이 된다. 쌍둥이처럼 닮은 둘. 복제된 개체는 Lena와 거울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둘다 존재할 수는 없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았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Lena는 살아서 돌아간다. 그리고 Shimmer를 연구했던 연구소 사람들에게 겪었던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어째서 그녀가 돌아올 수 있었는지, 그리고 Shimmer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그리고, 물을 마신다.
마지막 장면의 일렁이는 Lena의 눈빛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물을 마시고, 외부 인간 세계에 적응한, 새로운 개체. Shimmer는 Kane을 통해 실험하고, Lena를 통해 진화한 것이다. 이제 인류는 Shimmer의 것 . (그리고 번식까지 나아가겠지.)
인간의 본성, 생명체의 자가증식 및 복제, 세포의 분열, 굴절과 변형, 물리학적 그리고 심리학적 파동, 인류와 자연개체, 외계와 지구. 어찌보면 대립되는 모든것을 하나로 포용하는 기둥으로 유전자와 생명의 생존 본능이란것으로 꿰뚫어 엮어낸 작가 겸 감독에게, 그의 상상력과 주제의식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모두와 계속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너무도 다양하고 풍성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