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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Mar 15. 2021

노화 부스터

늙어간다는 것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인터넷 검색 중 연관 검색어에 뜬 ‘노화 부스터’를 클릭하여 접한 기사였다. ‘부스터’란 단어는 흔히 현 상태를 좀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촉진제’ 같은 뜻으로 쓰이지 않았나. 예를 들면 스킨 부스터, 운동 부스터 같은 것(물론 나는 카트라이더 게임에서 부스터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 그런데 노화 부스터라니. 노화를 촉진하는 것인가. 궁금한 마음에 기사를 읽어갔다.     



2019년 작성된 칼럼으로 사람은 살면서 조금씩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3번의 변곡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 번의 변곡점은 34세, 60세, 79세였다. 그 시기쯤 노화 단백질 수치가 급격히 늘어나고 노화가 급격히 진행된다는 기사였다. 연구진은 그 원인을 아직 밝혀내진 못했다고 전했다. 기사를 읽다 보니 나 역시 한 번의 변곡점을 지났음을 알았다. 외국 논문임을 알고서 만 나이를 확인했으나 그것도 이미 한참 전이었다.  


   

외장하드엔 2007년부터의 사진이 저장되어있다. 14년간의 행적이 고스란히 그곳에 있다. 앞머리를 눈썹 위까지 짧게 자르고 귀밑 5cm 정도의 단발머리를 한 2008년의 내가 있었다. 20대 중반 나이답게 멋도 부리고 친구들과 부지런히 여행도 다녔다. 30대가 되면서 앞머리는 자연스레 길어지고 혼자 여행을 시작한 흔적이 보인다. 외형이 가장 많이 변한 듯했으나 내 눈엔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이 눈에 띄었다. 만나던 친구들도 바뀌었다. 지금은 잊힌 얼굴들도 있었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이곳저곳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안 본 사이에 많이 늙었더라고요.”, “그러게, 힘든 일 겪으면 늙는다더니 정말인가 보군.” 어린 시절 어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방금 마주한 사람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퀭한 얼굴, 깊이 팬 주름, 윤기 없는 머리카락. 그때 나에겐 늙음은 무서움 같았다. 사람은 종종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후 늙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 역시 내가 모르는 사이 늙게 될까 전전긍긍했다. 내 나이보다 한참을 어리게 말해주는 타인의 겉치레에 쉽게 마음을 놓았다.     



나는 지금 늙음을 외적인 것에만 국한하고 있지 않은가. 20살이 되던 해 20대가 끝나면 아름다움도 끝나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30대가 되고 나니 20대와 다른 성숙미가 생겼다. 40대, 50대, 60대 혹은 그 이상이 된다고 해서 내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나이에 걸맞은 아름다움이 눈빛과 마음으로 흐르리라. 요즘 유튜브를 통해 박막례 님, 밀라논나 장명숙 님의 채널을 이따금 시청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그분들의 눈빛에선 고유한 그들만의 아우라가 흐른다.     



“젊음의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노년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노인이 청년보다 불행할 거라고 믿는 공중의 믿음부터 바꿔야 해요. 늙는 것은 추락이나 쇠퇴가 아니라 정점을 향해 더욱 성장해 가는 과정이에요.” 김지수 인터뷰집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에서 노인에 대한 편견 중 바로 잡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자의 말에 노인 의학자 마크 E. 윌리엄스가 대답한 글이다. 어쩜 ‘노화 부스터’라는 말도 정점을 향해가는 노년을 생각한 칼럼니스트의 깊은 뜻은 아니었을까.     



핸드폰에 저장된 최근 내 모습을 본다. 20대에 비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30대의 내가 있다. 이 부드러움에는 삶의 노련함도 있고, 정점을 향해가는 희망도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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