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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May 10. 2021

할머니의 유언

- 그녀의 삶을 돌아보며


작년 가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구순을 넘긴 연세였고, 가족들은 고령이 된 할머니와의 이별 준비를 어느 정도 한 상태였다. 장례식장에는 할머니의 칠 남매가 모였고, 그들의 자녀들까지 모여 그 수만 해도 50명이 넘었다. 입관식이 지나 도착한 나는 사촌들과 함께 장례식을 도왔다. 손님은 삼일장이 끝나는 날까지 쉼 없이 왔다. 손님상 차리는 일을 돕고, 손님을 안내하고, 사이에 밥을 먹기도 하며 3일을 보냈다. 잠도 빈소에서 잤다. 

가족 모두가 모인 것이 오랜만이었다. 엄마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자주 오지 못했고, 나머지 가족 역시도 바빠서 자주 보지 못한 듯했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온 가족이 모두 모였다. 손님들이 떠난 밤엔 잠들지 않은 몇몇 가족들에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겐 모두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내게 외갓집 식구들은 낯설었다. 자주 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경기도 지방의 억양은 경상도에서 자란 내게 낯설고 기이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외갓집은 어수선한 편이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큰외삼촌 식구들이 함께 사는 집이었다. 차에서 내려 두 사람 정도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길을 5분 정도 걸어가면 기역자 모양의 집이 있었다. 마당에는 잡초와 꽃 같은 것이 순서 없이 자라고 있었고, 큰 개가 철장 속에 갇혀 우리를 향해 울고 있었다. 어수선한 마당과 물건이 한가득 쌓인 방은 어린 나의 눈에 낯선 풍경이어서 한참을 밖에서 쭈뼛쭈뼛 서 있던 기억이 난다. 일 년에 한 번쯤은 방문했는데 나와 동생은 사촌들과 작은 방에 모여 놀았고 다른 식구들과는 데면데면했다.     



그렇게 이따금 보던 외가 식구들을 우리 집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후로는 더 보기 힘들었다. 엄마는 일곱 남매 중에서 넷째 딸이었는데, 유일하게 혼자만 경상도 살았다. 엄마는 힘든 내색을 쉽게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살만해지고 나서야 외갓집 식구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요양원 입원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였다. 

엄마는할머니 손을 잡고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만 계속해서 울며 말했다. 할머니는 그런 엄마의 손을 잡고 말없이 쓰다듬으셨다. 옆에 있던 나도 엄마의 재촉에 할머니의 두텁고 메마른 손에 내 손을 포갰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내게 반가움을 표하며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시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 엄마와 닮은 얼굴, 굽은 등 때문에 더 작아 보이는 몸집, 연분홍색 스웨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그렇게 내게 남았다.     



장례식 마지막 절차인 발인 날이 왔다. 가족 모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화장터를 갔고, 납골당으로 이동했다. 모든 일이 막힘없이 이루어졌다. 그녀가 살아온 9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재로 남았다. 가족들은 더 울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과 몸을 가까이했다.      



그 후 엄마와 나는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시기 전까지 머무셨던 외삼촌댁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짐을 정리하고 할머니가 계셨던 방으로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생전 준비해둔 영정 사진이 방 한구석에 있었다. 가만히 사진을 바라봤다. 낯설다는 이유로 두 분의 얼굴을 자세히 본 적도 없었다. 엄마와 나란히 방에 앉아 “외할아버지 정말 잘생기셨다.”, “맞아. 네 외할아버지가 좀 바람둥이셨지.”, “어? 정말?”, “말도 마.”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불러와 도란도란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눴다.   


    

외갓집 마당에 잡초가 많았던 이유는 할머니가 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는 것,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좋아해 칠 남매 부부동반 모임에도 꼭 함께했다는 것, 부잣집 딸이었던 할머니는 손이 커서 늘 음식이 차고 넘쳤다는 것. 내가 낯설어한 할머니와 가족들에게서 전해 들은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무척이나 그녀를 몰랐음을 알았다.

할머니는 90년을 넘게 사셨다. 얼마나 많은 역사를 가지고 사셨을까. 이제야 듣게 된 그녀의 이야기에 살아계셨을 당시에 내가 먼저 다가가지 못했음이 아쉬웠다.     



방 안쪽 서랍을 살피다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상자가 나왔다. 열어보니 수십 장의 사진이 있었다. 할머니가 간직하셨던 사진인 듯했다. 사진 속에는 일곱 남매와 그의 자식들이 있었다. 할머니는 이 작은 방 안에서 모두가 외출한 시간에 이 사진들을 보고 계셨을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사진도 있었다. 4살쯤 되어 보이는 나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남동생까지. 한 사진 속에 우리는 멀뚱하게 카메라를 보며 엉거주춤 서 있었다.

집으로 오던 날, 그 사진을 챙겨 집으로 왔다. 어쩐지 그 사진이 할머니의 유언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너희들을 생각하고 있단다.’라고 내게 말을 건네는 기분이었다. 그 사진은 내 시선이 가장 잘 닿는 곳에 있다. 비록 살아생전 할머니와 친하진 못했지만, 장례식 이후로 알게 된 그녀의 삶의 조각들이 내 어릴 적 일기장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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