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종종 외적 이상형에 관한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들이 있다.
나는 중학생 때 재미교포 출신 선생님께 영어 수업 그룹 과외를 받았다. 당시 내가 이성에 눈을 뜰 무렵이었고, 같은 그룹 이성 친구에게 관심이 증폭되던 시기였다. 내 시선이 자주 한 곳에 머무는 것을 그 선생님께서 눈치를 채셨고, 내게 미국판 Vogue 과월호 잡지 여려 권을 선물하셨다. 멋진 여성 모델들의 미모와 몸매 그리고 패션 센스를 보면서 여성의 외면을 보는 안목을 격상시키라는 의중이셨지.
그 후로 관심 밖의 형이하학적 부분들까지 형이상학적 단위로 진화하면서 눈만 잔뜩 높아진 나는 웬만한 미인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완벽한 외모의 이성은 현실에서 만나기 어렵다고 깨달은 것이다. 이게 내 문제다.
따지고 보면, 지난날 모델과 교제 후 키 크고 몸매 좋은 여성들이 대수롭지 않았고, 재벌가 여식과 교제 후 재력과 배경이 있는 여성들이 대수롭지 않았고, 배우와 교제 후 표현력과 미모가 뛰어난 여성들이 대수롭지 않았고, 외교관과 교제 후 품위유지와 의사표현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이 대수롭지 않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향평준화를 지향하며,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적응하기 때문이다.
내가 대수롭다 느낄 때에는 상대방의 외면, 배경, 능력보다는 다른 차원의 섬세함, 다정함, 명랑함, 진실함에 놀라서 감탄할 때이다. 아무리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하여도 쉬이 바뀔 수 없는 사람의 본성, 취향, 센스, 표현방식에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는 편이다. 때로는 그러한 인물로 키워 낸 그 부모를 진심으로 존경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외적 이상형은 큰 의미가 없다. 미모가 빼어나다는 이유만으로 호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성적 호감은 보통 상대방과의 정서적 교감과 동화를 통해서 생성된다.
예컨대 상대방의 이마가 좁든, 눈이 작든, 코가 낮든, 입술이 얇든, 머릿결이 거칠든, 목이 없든, 어깨가 넓든, 다리가 짧든... 그 사람이 지닌 유전적 특징에서 섹슈얼을 느끼기 어렵더라도 일단 미소가 밝고, 행동에 넘침이 없으며, 항상 세심하게 배려하고, 말도 예쁘게 하며, 몸짓이 우아하면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비로소 상대방이 사랑스러워 보이고, 아껴주고 싶고, 잘해주고 싶고, 항상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한 결 같이 "외적 이상형은 중요치 않다."라고 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했던 호수로 손을 집어넣어 반드시 바닥을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외적 이상형이 없는 남자는 이 세상에 존재치 않는다."라고 반론하며 뭐든 하나라도 건져내려고 입씨름을 벌인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이미 학습되어 버린 분명하고 예리한 시선 때문에 부조화 압력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매번 숨기려고 했을 뿐, 내면에는 섹슈얼을 느끼지 못하는 이성의 외면에 대한 마지노선이 정립되어 있다. 결국 숨은 속내를 꺼내야만 끝나는 대화다.
"일단 키가 160cm 이하인 여성에게는 섹슈얼을 느끼지 못한다. 다리의 경우 가쪽복사 위로 종아리뼈와 정강뼈가 굵고 벌어져 신장에 비해 장딴지가 짧아 보이거나, 팔의 경우 마찬가지로 노뼈와 자뼈가 벌어져 팔뚝이 굵어 보이는 여성, 그리고 목선을 볼 땐 등세모근과 목빗근이 두텁고 딴딴한 여성의 경우도 섹슈얼을 느끼지 못한다."라고 답한다.
첨언으로 "정말 중요한 건 사상과 가치관이 바르고 긍정과 희망이 넘치는 인물이라 그저 바라만 보아도 미소를 짓게 만드는 내면 덕분에 이런 기준들을 상쇄할 수만 있다면, 사실 거론할 가치도 없는 영역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점은 결국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껍데기 말고 그 안에 담긴 것이 얼마나 예쁜지가 중요하다."라고 전한다. 사실 껍데기가 다 무슨 소용일까. 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해야지.
이렇게까지 설명을 했음에도 노뼈는 뭐고, 자뼈는 뭐냐며 그냥 쉽게 여성 연예인으로 예를 들어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땐 항상 ‘이영애’로 갈음한다.
사진: Pecado
글: Pec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