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좁은 세상이라 우연의 우연을 거듭해 재회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만 유독 자주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나만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무언가 새롭게 하고 싶어 군청에서 하는 역사수업에 나간 적이 있다. 굳어져 가는 머리에 교양과 지식을 심어주고 게다가 수업 말미에는 취업과 연계해준다는 말에 서둘러 등록을 했다. 초반의 교실은 북적였으나 장장 6개월이나 되는 수업은 갈수록 빈자리가 늘어갔다. 광고와는 달리 취업과는 멀어지는 분위기였고 더 배우고 싶던 분야는 과목에서 사라지기까지 했다. 결국 함께 다니던 친구는 수업을 포기했다. 나는 수료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겨우 출석만 하고 있었다. 비협조적인 마음과는 달리 조장을 맡아 대표로 실습을 나가는 언행불일치의 나날이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은 지역 행사의 역사교육부스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윤선생님이 지역행사의 부스 일을 돕기로 했다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했다. 그저 이 수업이 모두 끝나고 자유의 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 누가 무엇을 하든지 내가 맡은 일만 잘하자 하면서 커피만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함께 다니던 친구도 없고 이래저래 쓸쓸하게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 호들갑스럽게 내 이름을 불렀다.
“너, 해봄이 아니니?”
“어?!! 어머, 어머! 네가 그 윤이니?? 윤선생?”
세상에나, 이름을 들을 때만 해도
“그런 분이 있으시군요.”
하고 흘려들었는데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목소리와 얼굴을 보니 내가 아는 그 윤이 맞았다. 촉이 좋고 눈치가 좋은 나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6개월이나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음에도 알아보지 못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그 아이의 이름조차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그 친구와 나는 결석한 날이 교묘하게 엊갈리기도 했고, 출석을 부르는 수업이 아니었기에 서로 알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둘 다 이 지역 출신도 아니고 초등학교(무려 27년 전) 이 후로는 소식이 끊겨 서로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 이런 외딴 지역에서 마주치는 일은 상상도 못 했다.
윤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키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뭐 주름 정도가 늘었겠지만. 연극무대의 뒷배경이 도르래를 이용해 서서히 바뀌는 것처럼 우리 둘은 그대로인데 갑자기 아이도 남편도 생겼다. 주변의 변화는 느껴졌지만 둘 사이의 공백은 느껴지지 않았다. 묘한 느낌이었다. 그 날은 친구와 점심을 먹고 그간 어찌 살았고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아직도 친정은 그곳인지 등등 안부를 물었다.
분명 우린 그대로였지만 무언가가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상당히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편이다. 힘들었던 추억까지도 너무 예쁘고 아쉬워서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정도이다. 아빠가 지방에서 일하시게 되어 엄마와 오빠와 나는 할머니 댁에 살게 되었다. 엄마가 일을 하시면서 할머니께 사랑받지 못하던 나는 해가 지도록 친구들과 산들로 쏘다니다 친구 집에서 저녁밥까지 해결하고 귀가하는 날이 많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도 뒷동산에 누워서 하늘을 본다거나 나물을 캐러 가는 모습이 어른이 된 나는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이런 시대극이 한창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너무 옛날이야기 같은지 '문학 극장'이라던가 그런 단막극도 못 본 것 같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윤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사진 속의 모습처럼 그 친구가 있었어. 있었지. 있었는데...... 더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그 아이의 집이 어디이고 가족이 어떻고 그 집 대문이 무슨 색이고 마당에 볏짚까지 생생한데 그 아이와 놀았던 기억이 없었다. 이상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윤과 싸워서 얼굴을 붉혔다거나 서로를 시기했다거나 그런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이렇게 맛없는걸 어떻게 먹냐?" 하는 것 말고 '어떠한 맛도 느껴지지 않아.'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아.'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윤에 대한 기억도 마치 어떤 재료인지 눈앞에 훤히 보이지만 무슨 맛인지는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딱 그런 감각
윤의 근처에 살았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윤을 만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겸사겸사 전화를 했다. 친구도 나와 윤의 재회가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다. 친구는 내가 윤과 친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반가웠는데 말이다. 사실 전화를 한 이유도 반가움의 이유가 무엇인지 불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기억하지 못했는데 절친이었다거나 하는 대답이라면 속이 시원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기억이 안 났을 리 없겠지만) 우리도 서로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고 살자면서 전화를 마무리했다.
전화를 끊고도 한참이나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럴 수도 있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윤을 만난 순간 반가웠던 내 감정은 진짜였다. 반가웠고 신기했고 즐거웠다. 그러나 서로 깔깔거리며 나눌 추억이 너무도 없었다. 서로 나눌 추억이 없다는 것은 조금은 슬픈 일이었다.(차라리 대판 싸워 머리 끄덩이를 잡았더라면 '우리 그때 왜 그랬니?' 하며 웃어버릴 나이는 되었는데.) 이유가 있어 다시 만난 것이라고 의미부여를 하자면 더욱 슬퍼지는 일이고말이다. 인생은 타이밍인지라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이 친구를 만났더라면 오히려 새로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절친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가끔 어떻게 지내느냐고 연락을 하기에도 윤과 공유한 일상이 없는 나는 선뜻 연락을 할 수 없다.
신은 내게 우연한 재회를 많이 주고서는 운을 지키는 용기나 적극성은 주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해주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신은 내 인생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렇게 그 수업은 끝이 났고 윤과의 연락도 소식도 끊겼다. 윤도 나처럼 기억을 찾아 한참을 고민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