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 개론>
서연은 아나운서가 되어서 부잣집에 시집가고 싶어 하는 속물적인 여자였다.
펜티엄 컴퓨터를 가지고 혼자 자취를 하는, 자기 차도 가지고 있는 부자 선배가 멋지다고 말했다.
승민이 용기 내어 찾아간 그날, 술에 잔뜩 취해서는 잘생기고 부자인 그 선배에게 안겨서 집에 들어가는 서연을 봤다.
자신한테 먼저 연락하고 호감 표시해놓고서는, 잘 나가는 선배에게 안겨서 넘어가는 나쁜 년.
서연이 부잣집에 시집갈 거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그건 승민의 가난함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부자인 선배가 멋지다고 말한 적은 있어도, 한 번도 그 선배를 좋아한 적은 없었다.
용기 없는 승민 때문에 건축학 수업을 핑계로 매번 용기를 내서 약속을 잡아야 했던 건 서연이었다.
승민의 서툰 입맞춤도 모른 척 넘어가 줬다. (승민은 보지 못했지만) 그 선배 놈의 억지 입맞춤을 술에 취한 와중에도 모두 거절한 서연이었다.
서연이 술에 잔뜩 취했던 바로 그날, 승민은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가장 비겁한 것은 바로 승민 자신이다.
상대방을 "썅년" 취급하며 도망쳤던 스스로가 비겁했다고, 미안하다고, 20살 그땐 내가 너무도 어리고 무지하고 모자랐다고.
"이루어지는 첫사랑" 판타지가 아닌, "지난날 너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제멋대로 욕하고 찌르면서 스스로를 보호했던 못난 자신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직접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판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