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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9. 2016

<영국역사 한번에 읽기>

인문학 공부 中

<인문학 공부> 영국역사 한 번에 읽기 – 신동기

                          강 일 송

오늘은 “아주 낯익은 지식들로 시작하는” 이라는 부제가 달린 인문학책
을 한 번 보려고 합니다. 
인문학은 흔히 “문사철(文史哲)”로 나타납니다. 문학, 역사, 철학입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은 최근에는 그 지경이 넓어져 과학
까지도 포함하는 추세로 가고 있습니다.  인간을 알려고 할 때 생물학적
근원을 밝히는 뇌과학, 생물학, 생화학 등을 모르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저자는 인문학의 범주를 일곱 개의 주제로 나누었는데, 역사, 신화, 종교,
정치, 경제, 철학, 과학이 그것입니다. 
저자는 신동기(1961~)작가입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및 경영대학원을
나왔고 여러 기관에서 경영학과 인문학을 융합한 내용을 강의하고 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신동기와 하는 생각여행” 게릴라 인문학 콘서트를
매달 1회 정기적으로 행하고 있다 합니다.

오늘은 일곱 가지 주제와 그 아래 열여섯 가지 테마로 인해 방대해진 내용
중 한 가지를 우선 보려고 합니다.
역사 파트 중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역사에 대해서 한 번 보겠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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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역사 한 번에 읽기

영국의 인구는 6,000만 명, 국토면적은 24만 제곱킬로미터다.  인구수는 대한
민국보다 더 많고, 면적은 남북한 합친 22만 제곱킬로미터보다 약간 더 넓다.  
19세기말-20세기 초에 세계 육지의 1/3을 지배했던 나라, 세계 인구
65억 중 10억 이상이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이다. 
오늘날 인간 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
주의 경제체제를 만들고 다듬어온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 영국의 고대사
영국의 고대사를 비롯해 유럽 국가들의 고대사는 언급할 내용이 많지 않다.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국가의 모습을 형성한 곳이 
700년대의 프랑크왕국이었고, 800년대 후반의 영국의 브리튼이었다.

영국이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카이사르의 영국 원정에서이다.
카이사르는 BC55년과 BC54년에 두 차례에 걸쳐 갈리아, 즉 지금의 프랑스
지역의 평정에 나서면서 내친 김에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 땅을 원정했다.
당시 영국땅에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건너간 민족과 프랑스 지역에서 건너간
켈트족이 주로 모여 살고 있었다. 

이후 AD43년에 로마 클라디우스황제가 영국 땅 원정에 나선 후, 영국 땅에
는 300년 이상 로마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5세기에 들어 게르만족이 로마를
침입해 오자 방어선 축소와 병력확보를 위해 410년에 로마군을 영국땅에서
철수시켰다. 
이때부터 영국땅은 안락한 보호가 사라지고 불안한 자유가 시작되었다.
영국땅은 유럽 대륙 본토와 북유럽 여러 민족들의 각축장이 되었고, 색슨족과
앵글로족이 영국땅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 왕정체제 형성기
8세기 후반에 들어서 스칸디나비아 지역으로부터 바이킹족의 대규모 침입이
시작되자 부족들은 통일된 왕국을 세웠고, 871년 알프레드 대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알프레드 대왕이 죽은 뒤 100년 정도 지나 덴마크왕의 동생인 크누트가
영국땅을 공격해오자 아예 그를 왕으로 뽑았다. 이후 크누트(재위 1016-1035)
는 지배 지역을 북부 스코틀랜드와 노르웨이까지 늘렸고 형이 죽자 덴마크
까지 포함시켜 스칸디나비아 제국을 완성했다.

다음에 영국을 지배한 것은 정복왕 윌리엄 1세(재위 1066-1087)였다.  윌리엄 
1세는 원래 프랑스지역 노르망디 땅의 소유주였다. 그는 1066년에 영국 침략
에 나섰는데, 카이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라틴 문명이 영국에 상륙하는 의미와
함께 대륙의 봉건제도가 영국에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영국에 올 때
주변의 프랑스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서, 영국의 왕실 및 귀족들은 프랑스어로
말하고 일반 평민들은 영어가 사용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후 등장한 인물은 헨리2세(재위 1154-1189)인데, 그는 재위기간 중 영토확장
을 이루었고,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땅에 통일국가를 세웠다. 
그리고 관료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의 셋째 아들 리처드가 반란을 일으켜 말년에 늙고 병든 몸으로 산속
에서 생을 마감을 하였다.

1189년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된 리처드 1세(재위 1189-1199)는 흔히 ‘사자왕 리처드’
라고 불린다.  격정적인 성격의 리처드는 영국왕으로서는 최초로 십자군 전쟁에 
나섰고, 프랑스왕 필리프 2세와도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다. 
그 다음 왕은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의 주인공 존왕(재위1199-1216)이었다.
그는 귀족들과의 내전에서 무릎을 꿇고 요구사항인 대헌장에 사인을 했다.
유럽 역사 최초의 왕의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제한이었다. 
당시 대헌장은 영국 최초의 헌법이자 현대 민주주의의 주춧돌이 되었다.

존왕의 아들 헨리 3세(재위1216-1272)때 드디어 국회가 탄생했다.
1341년에는 귀족과 종교인 등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상원”과
농장주인, 돈 많은 상인, 학식있는 평민 등 실질적인 국민의 대표로 이루어진 
“하원”으로 구분되는 “양원제”로 발달하게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14세기에 들어 “백년전쟁 1337-1453)”에 돌입한다.
해묵은 영토문제, 영국 내 프랑스 출신들의 기득권 독점 등 복합적으로 꼬이
면서 싸웠는데 영국이 앞서다가, 잔다르크로 인해 칼레를 제외한 프랑스
영토를 회복한다. 

이후 영국은 내전에 들어가는데, 30년간 왕가 랭커스터 가문과 귀족 가문 
요크가와의 싸움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가문의 문장이 장미였다는 데서 이름이
비롯되었다. 결국 랭커스터 왕가의 승리로 끝났고 헨리 7세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헨리 7세부터 왕권을 다졌고, 아들 헨리 8세(재위1509-1547)에 이르러 가장
그는 영국 역사상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교황의 교권을 거부하는 위험한
도박을 단행했다.  왕인 자신을 수장으로 하는 별도의 기독교 조직(성공회)
로 나아갈 것임을 공표했다. 

헨리 8세의 뒤를 이은 메리 1세(재위1553-1558)은 독실한 카톨릭신자였다.
그녀는 영국내 성공회를 금지시키고 카톨릭으로 돌아갈 것을 선언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역사는 그녀를 “피의 메리” 로 기록한다.
이후 그의 이복 여동생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88-1603)가 왕위에 오른다.
그녀는 다시 성공회를 국교로 돌리고, 스페인 함대를 물리치는 엄청난 일을
하게 된다. 
이후 해상권을 장악함으로 동인도회사가 마음껏 무역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 다음 제임스 6세(1603-1625)가 왕위에 올랐는데, 이 시기 1620년에 102명의
청교도들이 종교 탄압을 피해 메이플라워호로 북미로 건너간다. 
그의 아들 찰스 1세는 철 지난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다가 귀족들에게 몰려
“권리청원”에 사인하였고 “청교도혁명”에 의해 유럽 역사 최초로 국민에 
의해 목이 잘리는 왕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찰스 1세 이후 크롬웰(1599-1658)이 이끄는 공화정시대로 돌입한 후
찰스 2세를 거쳐 제임스 2세(재위1685-1688)가 왕위에 올랐으나 그는 
카톨릭을 옹호하고 전제정치를 하였다.  의회는 그를 왕위에서 내리고 사위인
윌리엄 3세(재위1689-1702)를 앉힌다. 그의 부인이자 제임스 2세의 딸인 
메리와 공동으로 왕위에 올렸는데, 순수한 국민의 힘으로 피 흘리는 일 없이
왕을 바꾸어 1686년의 “명예혁명”이라 불린다. 

윌리엄 3세는 영국의 헌법인 “권리장전”을 발표했다. 법위에 있던 왕이
법 아래로 내려온 입헌군주국의 출발이었다. 

이후 그의 처제인 앤여왕(재위1702-1714) 시기에 스코틀랜드를 정식으로
합병했다.  앤여왕이 후사가 없자, 독일의 하노버공(재위1714-1727)이 
왕위를 물려 받았고 하노버 왕조에서 빅토리아여왕(재위1837-1901)이
등장한다. 

빅토리아여왕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영국의 세계제국
시대를 열었다.  세계 영토의 3분의 1에 이르는 식민지를 개척했으며
영국의 기술력을 뽐낸 만국 박람회를 개최하고 자유무역의 시작을 알리는
곡물법 폐지를 이끄는 등 수많은 업적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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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책은 인문학의 기초를 완성하는 “틀잡기”를 하려는 저자의 의도로
쓰여진 책입니다. 
수년 전부터 인문학붐이 일어 인문학에 대한 강좌와 도서는 엄청 늘어났
지만 실제 가르치는 대학에서는 인문학과가 축소되는 아이러니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웬 인문학인가 하지만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21세기에 가장 요구되는 능력이 “창의성”과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를 향상시킬 가장 좋은 방법은 인문학이
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인문학의 분야 중 역사 파트 중에서 현대사회의 민주주의와 자본
주의의 시작점인 영국의 역사를 한 번 보았습니다.
오늘날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은 모두 영국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이 로마 카이사르에게 정복당한 뒤, 스스로 왕국을 만들고 왕권을 제한
하면서 민주주의, 의회, 대헌장 등을 만들어 온 것을 보면 경이롭습니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행보로 인한 식민지 주민들의 극심한 고통과 희생 등을
생각하면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지요. 
반면에 그들의 식민지를 겪은 나라들, 호주나 뉴질랜드, 캐나다 등 원주민
의 희생이 있었지만 다들 선진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습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역사는 인문학의
첫걸음과도 같겠지요.

다음에는 다른 파트를 한번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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