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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10. 2016

<곡물의 역사>

한스외르크 퀴스터

<곡물의 역사>  한스외르크 퀴스터

                     강 일 송

오늘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곡물”을 통해서 본 인류의
역사이야기입니다.

이전에도 “치즈의 지구사”, “빵의 역사”, 등과 커피, 홍차, 향신료 등
여러 가지를 매개로 역사를 들여다 본 적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마치 코끼리를 장님이 만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기준으로 자기 상황으로 본다면 전부 다른 형태처럼 느껴
지니깐요.
매개되는 사물의 기준으로 볼 때마다 역사는 전혀 새로운 모습을 늘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저자는 한스외르크 퀴스터(1956~)로서 하노버의 라이프니츠 대학교
식물지리학 연구소의 식물생태학교수입니다. 
저자는 만일 재배식물이 없었다면 인류역사는 완전히 다르게 진행
되었을거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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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처음엔 땅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냥꾼과 채집꾼으로 문자도 필요
없이 오랜 시간 머물러 왔다.  필요성이 없으니 도시와 국가를 세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최초로 식물을 재배했을 뿐만 아니라 동물도 기르기 시작
했다.  인간의 생활방식은 “재배식물 경작 ”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농부는 특정한 장소에 정주해 살아간 최초의 인류였다.  재배식물의
경작은 이후 조직된 국가의 존재와 문명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재배식물은 농업의 영향으로 그리고 이후 체계적인 품종개량을 통해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특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재배식물은 문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재배식물 경작과 가축 사육으로 인해 독특한 풍경이 형성되었다.
나무는 벌채되어 숲음 경작지와 목초지로 쓰이는 너른 들판이 되었고,
그 후 초원이 형성되었다. 비탈진 산허리는 계단식으로 일구었다.
그럼으로써 햇빛이 늘 드는 평지나 약간 경사진 경작지가 생겼다.

서아시아-유럽 문화권의 재배식물은 동방에서 서양으로 넘어왔다.
이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재배식물의 중심지가
19세기 학자들이 생각했던 동방, 즉 흑해 부근이 아니라, 서남아시아의
산악지대라는 것을 안다. 

원래 식물은 물속에서 살았다.  물속에서는 언제나 광합성을 위한 미네랄
과 물이 충분했고, 수면에서 이산화탄소와 빛을 풍부하게 쓸 수 있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식물개체가 나타났는데, 새로 등장한 식물개체는
우선 부분적으로 그리고 이어 완전히 물 밖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

그 일은 뿌리의 물을 잎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물관”이 식물 내부에 있을
경우에만 가능했다.   또한 잎에는 물이 충분할 때는 열리고 물이 부족할
때는 닫히는 기공이 필요했다.  마침내 완전히 물 밖에서 자랄 수 있는
식물 개체가 나타났다. 

최초의 육지식물은 토지가 습한 곳에서만 살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직 물관의 물 수송 체계가 아직 최적으로 발달하지 못했고
기공도 기능이 썩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백만 년이 
흐르면서 지속적인 돌연변이를 거듭한 후, 그리고 이어 다양한 유전물질
재조합을 통해 건조한 조건에서도 자랄 수 있는 식물 개체가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열대지역 외의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은 성장의 주기성이 관찰
된다.  즉 식물은 같은 계절에 성장하고 꽃을 피운다. 또한 같은 시기에
씨앗과 열매를 맺고 씨를 뿌리며, 같은 시기에 땅속에서 휴지기를 보내는데
물이 부족해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대지역에는 항상 먹을 게 있지만 열대 외의 지역에는 특정한 계절에만
먹을 식물이 있으므로, 초식동물은 계절이 바뀌면 먹는 식물의 종류를
바꾸거나 아니면 서식지를 바꾸거나 또는 동물이 휴지기를 보낼 때만
생존할 수 있다. 
모든 생물은 먹을 게 없는 계절을 견뎌내야 한다.

현대인의 선조들은 무리를 지어 협동해서 사냥을 하고, 사냥에 성공한 후
공동으로 나누어 먹었다. 
빙하기에는 기온이 지금보다 10도 정도 낮았다. 빙하기의 사람들은 야생
동물의 이동에 따라 반응을 하며 동물을 따라다녔다.

빙하기가 끝날 무렵부터 기후변화는 지구의 많은 지역에 현격한 환경
변화를 일으켰다.  기온 상승으로 예전에 식물이 살 수 없었던 지역에도
식물이 번성할 수 있었다. 

선사시대에 서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에서 경작된 가장 오래된 재배 식물
은 모두 서남아시아에서 뚜렷하게 경계 지어진 지역에서 출현했다.
즉 오늘날 레바논, 이스라엘, 시리아, 이란, 이라크의 산악지대다.
이 지역이 재배 식물의 유전자 중심지이다.

서남아시아의 초기 재배 식물 경작은 약 1만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오래된 재배식물에는 학명 트리티쿰(Triticum)에 속하는 오늘날
밀의 몇몇 친족류, 보리의 몇 가지 종류, 깍지가 있는 열매인 콩과
식물 완두와 편두, 그 밖에 아마가 있다. 
이들 식물을 “기초식물(founder crops)"라고 한다. 

밀 종류는 처음부터 재배 식물으로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왜냐하면 밀의 낟알은 풍부한 전분 외에 단백질도 함유하기 때문이다.
단백질의 한 종류를 글루텐이라고 한다. 끈적이는 글루텐 때문에 빵을
굽기에 특히 좋았다.   이스트나 효모를 이용하면 반죽이 아주 잘되고
빵이 부드러워지면서 찰기를 얻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은 곡식 낟알을 먹을 목적으로 저장하는 게 가능
할뿐만 아니라 씨앗을 뿌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렇게 해서 재배 식물의 최초 경작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은 재배 식물을 먹이 경쟁자로부터 지키기 위해 감시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곡물을 경작하면서 정주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정주하면서 동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서남아시아 사람들은
소, 양, 염소, 개를 길렀다.
이제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인간은
자연에서 음식을 채집해 얻는 생활방식 대신 생산하는 생활 방식을
취했다.

드디어 인간은 곡물의 낟알을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열대 이외의 
지역에서도 매일 음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비로소 기독교의 
주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을 거론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서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우선 농경은 하지만 아직 토기는 제작되지 
않았던 시기가 존재했다.  이 시기를 ‘토기 제작 전 신석기’라고 한다.
몇백 년 동안 이미 곡물이 재배된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토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토기는 무엇보다 주로 저장 용기였지만 음식물
준비하고 끓이는 데도 사용되었다. 

사냥과 식물 채집보다 농경과 가축 사육으로 더 많은 사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서남아시아에서는 “비옥한
초승달“지대에 농업을 일구며 정주하는 주거지가 생겨났다.

인류는 농경도입, 가축사육, 정주생활 방식을 통해 인구 증가의 
한계를 극복해 냈다. 이제 면적당 더 많이 사람이 거주하며, 토기를 
굽고, 집을 지을 목재를 구하며 물물 교환도 이루어졌다.

결국 최초의 농부와 최초의 재배 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 
역사가 다르게 진행되었으리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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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역사라는 코끼리를 곡물이라는 안경프레임을 쓰고 한 번
살펴 보았습니다.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언어 때문에 문명이 발달했다고 하고, 
어떤 학자는 불을 발견함으로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하고, 어떤 
학자는 도구 때문에 문명이 발전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다양한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모든 일들은 서로 맞물리
면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문명이 “비옥한 초승달지대”, 즉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은 척박한 지역이지만, 만년 전에는 비옥한 땅이었고 그 곳에서
농경이 시작되고, 정주생활이 이루어졌으며, 처음으로 잉여생산물이
생겼다는 것이 의미가 큽니다.

잉여생산물로 인해 분업이 이루어지고 여러 직업이 생겼으며,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생기고 사회가 형성되어 결국 도시와 국가가 생기게 된
것이지요.

덩달아 가축을 기르게 됨으로써, 여러 이득을 보게 됩니다.
소의 강한 힘을 이용해 밭을 갈게 되고, 양털을 얻게 되었으며, 젖을 이용
해서 여러 유제품들을 만들게 됩니다.
처음에 우유를 소화할 유전적 소인을 가진 인간이 적다가 점차 우유를
마셔도 되는 인간이 늘어나게도 됩니다.

사실 인간은 인종에 상관없이 그 능력에 비슷하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단지 환경에 맞추어 몸의 부속적인 부분만 변화를 하여와 피부색이나 머리
카락색, 눈동자색, 키, 유연성 등이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거의
동일합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처음 문명이 일어났다고 해서 거기에 살던 사람들이
더 뛰어나서가 아닌 것이지요.
환경적인 요인이 뒷받침되고 우연하게 재배 작물을 발견하였고, 가축 사육에서도
모든 동물이 다 가축화되지 않기에 때마침 그 지역에 가축화되기 쉬운 동물이
가까이 있었던 것이 큰 이유로 보입니다.

얼마전에 이라크와 미국의 전쟁이 있었지요.  일방적인 게임으로 미국이 이겼지만
사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의 나라와 가장 새로운 문명의 나라와의 전쟁이
었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곡물을 통해서 역사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수렵채집 시기보다 농경생활을 한 후 인간은 건강이 더 안 좋아지고
영양상태도 안 좋아졌다는 이론도 있더군요.

하지만 농경을 함으로 인류는 처음으로 매일매일 끼니 걱정 없이, 비축된 식량으로
근심을 덜어내고, 다른 분야에 집중이 가능해져 문명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주 적은 수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는데, 그래도 워낙 품종개량과 대량
생산으로 생산량은 유지가 되고 있지요.
그렇지만 곡물도 석유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라 언제든지
자원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대비를 해야할 것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여러 방면으로 이야기가 새기도 하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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