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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11. 2016

<18세기의 맛>


오늘은 색다르게 음식을 통해본 사회현상에 대한 책을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향신료가 서양의 역사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익히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미각의 구조 등 새로운 시야를 펼쳐주는

흥미로운 내용이 그득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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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터와  후추

<미각의 구조>
맛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 사회의
사람들을 상당히 오랜 기간 지배하는 실체이다.  역사가들은 이를
"미각의 구조"라 부른다.
한국의 사회는 그 나름의 특별한 미각의 구조가 있고, 이는 타이,
프랑스 할 것없이 마찬가지이다.  이런 것들은 장기간에 걸쳐 형성
되어 사람들을 구속하고 지배한다.
유럽의 음식, 특히 프랑스 요리는 언제부터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내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중세에는 오늘의 인도음식보다 더 매웠고
매울수록 더 고급 음식으로 쳤다.   매운 음식들이 물러나고
부드럽고 순한 맛 위주의 음식이 널리 퍼진 것은 근대이후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버터가 있었다.

<버터의 확산>
버터는 중앙 아시아의 유목민이 처음 개발해 주변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소, 양, 염소, 야크 등의 젖에서 얻어낸 지방질을 기둥에 걸어
둔 가죽주머니에 넣고 한참 휘저어서 버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오래
된 방식이었다.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의 기록이나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의 기록
에 버터가 나오고, 로마에서는 버터를 "야만인의 음식" 이라 하였다.
스칸디나비아나 게르만 지역에서는 버터를 많이 사용하고, 지중해
지역에서는 올리브기름이 최상의 음식재료였다.
북쪽의 버터, 남쪽의 올리브기름 이라는 이분구조는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초기에는 버터가 북유럽, 동유럽 정도에서 쓰이다가 16세기가
되어서야 남쪽으로 보급이 되었고,  교황청에서 금식 기간중 버터를
금지하는 조항 문제로 종교개혁때 논란이 되었으며, 이후 가톨릭 교회
에서 이탈한 나라와 버터를 주로 사용하는 나라가 거의 일치한다는
흥미로운 관찰도 있다.

<욕망이 미각의 구조를 변화시킨다.>
과거 중세의 음식들은 고급요리일수록 후추를 많이 첨가해 매웠고
근대에는 고급요리일수록 부드러워졌다.
특히 프랑스요리의 섬세함은 유럽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러시아 등은 여전히 향신료를 많이 첨가해
강한 맛으로 요리하는 전통이 남아있는데, 이는 아마도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의 도입 자체가 늦어서 그렇다는 추론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미각의 구조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까?,  
답은 인간의 욕망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구조를 반영하여 욕망이
변화하기도 하지만, 욕망이 먼저 변화하여 사회구조를 바꾸기도
한다. 욕망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맛을 평가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퍼뜨리는 주역은 대개 상층
인사들이다. 맛의 유행에서 "희소성"은 지극히 중요한 요소이다.
중세 유럽에서 매운 맛이 그토록 고귀한 지위를 누린 것은 후추가
워낙 고가의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후추는 지상낙원의 나무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얻는다는 전설까지 가미되어 최고의 상품이었으며
보석처럼 후추를 수집하고 선물한 것처럼 맛의 재료뿐 아니라 일종
의 의식의 요소이기도 한 것이었다.
유럽인들이 아시아로 진출하고자 한 욕구는 세계사를 움직인 큰
동력이었으며 그 이면에는 후추를 비롯한 "맛의 추구"라는 현상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시아에 직항로가 생기고 후추가 대량으로 수입되자 모든
것이 바뀌었고, 후추가 가격이 하락하여 모든 사람들이 후추를
사용하자, 상류층은 그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17세기에 프랑스 엘리트들은 후추대신 다른 향료를 찾았고,
최대한 섬세한 맛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유럽음식의 역사를 장기적으로 고찰하면 가장 중요한 사실이 중세의
매운 맛에서 근대의 부드러운 맛으로의 이행이고, 그 정점이 18세기
프랑스요리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지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사회 요인들과 복잡하게 얽히게 되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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