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L. 프리드먼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토머스 L. 프리드먼
강 일 송
오늘은 10여년 전에 나온 책을 한 번 보려고 합니다.
“세계화”에 대해서 어느 책보다도 훌륭하게 설명을 해주는, 세계화에 대한 성서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명저입니다.
저자인 토머스 L. 프리드먼(1953-)은 보스턴의 브랜다이스대학에서 지중해학을 공부하고
옥스퍼드대학에서 현대중동학을 전공하고 석사를 받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자로 베이루트, 이스라엘 등에서 오래 근무하였고 퓰리처상을 7회나 수상
한 명기자이자 명컬럼니스트입니다.
저서로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씨줄과 날줄;911 이후의 세계”, “세계는 평평하다”
등 이름 높은 책이 많습니다.
저자의 말을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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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화가 치밉니다. 우리는 러시아나 아시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소규모 내수업체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 나라들 정부가 자기 나라를 잘못 다스린 탓에 우리까지
덩달아 손해를 본단 말입니다.“
-- 로키 마운틴 인터넷(주) 더글러스 핸슨 사장
(1998년 주가 대폭락 사태로 1억 7500만 달러 규모의 정크본드 발행이
무산된 후 월스트리트 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 1997년 12월 8일 아침, 태국 정부는 자국의 58개 주요 금용기관들 가운데 56개를
폐쇄 조치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민간 금융기관은 태국 통화인 바트화의 폭락사태로
하루아침에 파산해 버리고 말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종말”과 “새로 시작된 세계화시대”의 첫 세계적 금융위기의 시발점이었음을.
태국의 경제위기는 아시아 신흥시장 거의 전지역에서 총체적 자본 도피 사태를 촉발
시켰다. 이로써 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통화까지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몇 달 후, 동남아시아 지역의 불황은 전세계 원자재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아시아는 엄청난 양의 원자재를 소비하는 엔진이었다. 이런 엔진이 문제를 빚기 시작
하자 금, 구리, 알루미늄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유의 가격이 일제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같은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바로 동남아시아의 위기가 러시아로 번지는
경로였다. 당시 러시아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으로 수렁에 빠진 경제를 뭍으로
끌어내려 노력중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근본적인 문제는 공장들이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이
었다.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는 만성적으로 취약한 재정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세수기반도 취약하고 재정의 대부분이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아시아의 위기로 촉발된 유가하락으로 러시아정부는 돌아온 국채의 원리금 갚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게다가 태국, 한국, 인도네시아의 구조조정에 밑천을 드러낸
IMF로서는 러시아에 더 이상 쏟아부을 자금 여력이 없었다.
1998년 8월 17일, 간신히 버티어 오던 러시아 경제는 결국 무너져 내렸고, 세계경제는
이중으로 충격을 입었다. 러시아는 일방적으로 루블화를 평가절하했을 뿐만 아니라,
국채에 대한 채무상환 불이행을 선언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러시아에 투자했던 헤지펀드, 은행, 투자신탁회사들은 일시에 엄청
난 손해를 보게 되었고 대거 도산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시 엄청난 액수의 투기자금이 러시아 위기가 다른 신흥시장, 그 중에서도 특히 브라질
로 확산되게 만들었다.
즉 재정이 부실한 나라에서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재정이 안정적인 나라에서 돈을 빼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까지 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오던 브라질에서 자금회수 사태가
벌어졌다. 돈이 한번 빠져 나가기 시작하자, 모든 투자자들이 공황심리에 빠져 주식이나
채권이나 마구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위기에 몰린 브라질은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40%까지 올려야 했다.
투자자들이 앞다투어 안전한 투자처로 도피하면서 이런 사태가 신흥시장 곳곳으로 퍼졌다.
특히 브라질, 한국, 이집트, 이스라엘, 멕시코 등지로 파급되었다.
그곳 채권과 주식을 현금으로 바꾼 투자자들은 이를 금고에 넣어두든지 아니면 가장 안전
하다고 생각한 미국 국채로 바꾸었다.
이에 미국 국채 가격이 급상승했고, 금리는 급락했다. 제 발로 몰려드는 자금의 해일 덕분
에 미국 정부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미국 국채 금리의 급격한 하락은 더 많은 헤지펀드와 투자은행의 위기로 이어졌다.
◉ 1945년 이래 국제 정세를 지배해 온 느리고 안정적이며 조각조각 분열되어 있던 냉전
체제가 “세계화”라는 새롭고 빠르고 긴밀히 연결된 시스템으로 확고히 교체되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렸을 때만 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10년
이 지난 이후 명확히 이 상황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1800년대 중반부터 1920년대 후반 사이에도 세계는 지금과 비슷한 세계화 시대
를 겪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인류는 오늘날 겪고 있는 세계화와 상당히
유사한 현상을 경험했는데, 당시의 초강대국이었던 영국은 신흥시장에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철도 채권, 라트비아 국채, 독일 국채 등이 이와 같은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었다. 환율을 제어하는 아무런 통제수단도 없어, 1866년 대서양간 통신케이블이 연결
되자마자 뉴욕에서 발생한 은행의 금융위기는 곧바로 런던과 파리로 확산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제 1차 세계화는 세계를 “큰” 사이즈에서 “중간” 사이즈로
줄여 놓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제 1차 세계화 및 글로벌 금융자본주의는 제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대공황 등을 거치며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출현한 냉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국제 체제였다. 이 체제는 1945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989년까지 지속되다가 드디어 또 다른 시스템으로 교체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신(新)세계화시대”다. 나는 이를 “세계화 제2라운드”라고 부르
고자 한다. 오늘날의 세계화는 그 이전보다 규모면에서 엄청 커지기도 하였고,
그 본질적인 성격도 많이 달라졌다.
종전의 세계화는 운송비용의 하락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철도, 증기선, 자동차의 발명
등으로 사람들은 전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곳을 더 빨리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비해 오늘날의 세계화는 통산 비용의 하락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마이크로칩, 위성, 광케이블, 그리고 인터넷 등의 덕분이다. 이런 신기술은 세계를
더 단단하고 촘촘하게 엮어 주고 있다.
오늘날 세계화의 특징은 이런 기술들 덕분에 전통적인 국가 단위의 정부나 기업들이
전보다 더 멀리, 더 빨리, 더 싸게, 더 깊숙이 세계 구석구석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각 개개인이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세계화는 정치적으로도 1900년대 세계화와 다르다.
종전의 것은 영국의 힘, 영국의 파운드화, 그리고 영국의 해군에 의해 주도된 것이었다.
오늘날의 것은 미국의 힘, 미국의 문화, 미국의 달러화, 그리고 미국의 해군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첫 번째 세계화 시대가 세계를 “큰” 사이즈에서 “중간”사이즈로 불여 놓았다면,
두 번째 세계화 시대는 세계를 “중간” 사이즈에서 “작은”사이즈로 줄여놓고 있는 것이다.
새뮤얼 P. 헌팅턴은 세계 곳곳의 문화적 갈등 현장을 보고는 앞으로 매우 오래 지속되고
아주 첨예한 문명간의 충돌 사태로 확산될 것이며, 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것은
“문명간의 전쟁이 될 것”이러고 단언했다.
헌팅턴은 냉전 이후 오직 “종족주의”만이 남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냉전 이후의 국제정세는 새로운 시스템과 구시대 열정간의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복잡한 드라마다. 그것도 마지막 장이 아직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 드라마다.
그 누구도 결론을 알 수 없다.
세계화 시대에는 문명간의 충돌현상과 동화작용이 동시에 일어나고, 또한 환경재앙과
놀라운 환경복구가 동시에 진행되며, 자본주의의 승리와 그에 대한 반격이 동시에
발생하고, 국가 체계가 끈질기게 유지되는 한편, 동시에 엄청나게 강력한 비국가적
주역들이 부상할 것이다.
세계화는 단점과 부작용도 많다. 세계화의 무자비함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책은
우선 이 시스템의 논리와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이 시스템을 통하여 혜택은 최대한으로 늘리고 고통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화는 이제 막 세상에 출현한 한 현상이다. 세계는 마이크로칩과 시장 뿐 아니라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온갖 독특한 습관과 전통, 저마다 다른 간절한 소망과 꿈을 가지고 사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오늘날 세상사는 인터넷 웹사이트와 같은 새로운 것들과, 요르단
강변의 옹이 박힌 올리브나무와 같은 낡은 것들간의 상호작용을 언급해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렉서스 만드는 공장을 간 적이 있다. 66명의 사람과 310개의 로봇이 매일 300대의
렉서스를 생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동에서는 아직도 올리브나무를 놓고 서로 제 것이라며 싸우고 있었다.
세상의 반쪽은 더 좋은 렉서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냉전으로부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반쪽은 아직도 올리브나무의 주인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올리브나무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들은 곧 우리의 뿌리를 의미하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존재
의미를 말해주며, 우리가 속한 가족과 지역사회, 민족과 종교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상징한다.
국가는 최후의 올리브나무인 것이다. 언어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국가는 우리가 어디
에 속해 있는가를 표현해주는 최후의 보루다.
렉서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 역시 올리브나무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이
면서도 아주 오래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생계유지와 생활의 향상, 번영 그리고 근대화 등 오늘날 세계화 체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 욕망의 전개 모습 그대로다.
렉서스는 오늘날 우리가 더 높은 생활 수준을 추구하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할 글로벌
시장의 발아와 성장, 금융기관, 그리고 컴퓨터기술 등의 대표격이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대립과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우 오래전부터 있어온 주제의 현대판에 불과하다.
유럽연합(EU) 가입여부를 결정하고자 했던 1994년 노르웨이의 국민투표는 세계화 체제
아래에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가 한판 승부를 겨룬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노르웨이는 분명 유럽내에 있고 부유한 선진국인데다가 다른 나라와 무역도 많아서
가입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국민투표의 결과는 뜻밖이었다. 국민들은 그들이 가입하면 노르웨이의 정체성
이 상실되고 그들만의 생활방식이 뿌리째 뽑힐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EU에 가입하지 않아 경제적 손실을 입더라도 그 정도는 노르웨이 북해 유전
덕분에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 세계화 시대에는 개인이든 국가든 모두 건전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당면과제라 하겠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집 그리고 우리 지역사회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 체제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들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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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프리드먼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부터 현재까지 세계화에 대한 명철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97년 IMF시기의 우리나라에 대한 내용도 언급이 되고 있네요.
과거의 거리의 장벽을 1차 세계화로 19세기말에 극복을 하였고, 통신의 혁명으로
인해 2차 세계화가 진행이 됩니다.
세계화로 인한 폐해인 빈부격차의 심화, 승자 독식, 자본에 대한 종속, 인간성의
상실 등 현대에 당면한 문제가 즐비하지만, 이미 세계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 인류는 난관에 봉착하지요.
과거로부터 내려온 전통과 문화를 의미하는 올리브나무와 성장과 번영, 발전을
추구함을 상징하는 렉서스 사이에서 인간들은 끊임없이 갈등과 타협을 반복합니다.
서양적인 마인드로 촉발된 세계화, 투기자본과 금융이 국경없이 넘나드는 욕망의
현실에서 자연과 인간을 중시하는 동양적인 중용의 마인드가 해결의 열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긴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