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태 진
<아트인문학 여행> 김태진
강 일 송
오늘은 “이탈리아를 거닐며 르네상스 천재들의 사유를 배운다”는 타이틀을 가진
책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태진 저자는 서울대에서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보들레르를 전공한 미술애호가로
인문학시대를 맞아 예술과 인문학을 접목해 선보인 <아트인문학>강연이
공전의 히트를 하며 전국 곳곳을 누비고 있다 합니다.
저자는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의 피렌체,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의 흔적을 찾아갑니다.
이제 르네상스와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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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르네상스를 말하면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들이 동시에 쏟
아져 나온 시기“라고 했다.
역사를 통틀어 창조력이 용솟음쳤던 시대를 꼽으라면 누구나 르네상스 시기를 꼽을
것이다. 약소국이 만들어낸 창조와 혁신의 한판 뒤집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브루넬레스키, 보티첼리 등
빛나는 별처럼 그들은 존재한다.
이탈리아에서 개화한 르네상스가 더욱 눈길이 가는 것은 당시 이탈리아가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된 국가가 아니라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늘 불안에 떨어야 했던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 있었다.
작은 나라들끼리 경쟁하면서 서로 싸우기를 반복했으니, 정세는 늘 불안정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피렌체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이탈리아 전역을
창조의 열기로 가득 채우고, 곧이어 주변의 다른 나라들로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문화 예술의 일대 혁명이 된 것이다.
예술가들은 유럽 전역으로 불려다녔고 예술작품들은 엄청난 값에 팔려나갔다.
이러한 일을 벌인 주역들은 남들이 정한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들처럼 시대를 거스르고 오히려 자신들이 만든 기준을 세상이
따르도록 만들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던 일들이 펼쳐지고
그들은 어느새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변화였다.
그 중 오늘은 브루넬레스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1400년, 중세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만 같았다. 인문주의 운동의 중심지이자
상업의 도시 피렌체. 여기에 한 무리의 소위 ‘아웃사이더’가 등장한다. 국제 고딕양식
이 대접받던 예술계에서 진부한 표준을 거부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양식을 만들어낸
이들은 바로 “브루넬렐스키”와 그를 따르던 무리였다.
브루넬레스키(1377-1446), 도나텔로(1386-1466), 마사초(1401-1428), 알베르티(1404-1472)
가 그들인데, 리더는 브루넬레스키였다.
브루넬레스키는 촉망받던 조각가였는데, 그는 아홉 살 후배 도나텔로와 함께 조각을 그만두고
건축을 배우기 위해 로마로 떠난다.
그 당시 건축유학은 당연히 파리로 가서 국제 고딕 양식을 배우는 것이어야 했는데, 이들은
학교도 선생도 없고 지금의 포로 로마노처럼 폐허에 가까웠던 로마로 떠났다.
중세 천년을 지나면서 로마의 유물과 유적들은 이교도의 것이라 하여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런 로마로 간다는 것은 건축을 독학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가 피렌체와 로마를 왕래하며 자기 힘으로 건축을 공부한 시간은
무려 17년에 이른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 건축이 추진된 것은 1287년, 즉 13세기말이다. 피렌체가 상업도시로
성장하면서 무역을 통해 많은 황금이 유입되었고 길드도 활성화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도시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대성당 건축에 착수하게 되었다.
피렌체라는 도시 이름이 꽃에서 왔으니 성전 이름도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 될 것
이었다.
하지만 의욕과는 달리 우여곡절이 많았다. 추진 주체가 여러번 바뀌고,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었으며, 흑사병으로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공사는 한없이 지연되었다.
게다가 앙숙이자 경쟁 도시인 시에나가 더 큰 성당을 짓는다고 하자 이에 발끈한 시민들은
더 큰 성당을 지으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파산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성당의 가운데 지붕이 덮이고 1차로
마무리된 시기는 1380년경이다. 그런데 이 때 피렌체 당국은 당혹스러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최종 설계도대로 커다란 돔을 만드는 것이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뛰어난 건축가들을 불러 대책을 세우려고 했지만 하나같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 4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고,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설계안을 공모하는데
그 해가 1417년 이었다.
부르넬레스키는 어릴 적부터 두오모 성당의 쿠폴라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00년이 넘도록 지어져 이제 모양을 제법 갖추었지만 돔을 올리지 못해 언제나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건물. 피렌체의 자부심으로 추진되었지만, 이젠 모든 시민의 자괴감이 되어버린
건물. 어릴 때부터 이것을 보아온 그는 조각을 포기하고 건축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로마에 남아 있던 가장 큰 돔인 판테온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이유도 당연히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에 대해서는 경력이 없었던 심사진들은 3년에 걸친 심사 끝에 결국 브루넬레
스키에게 작업을 맡긴다.
브루넬레스키는 기술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각종 간섭과 모함, 방해 등을 무릅쓰고, 난공사
에 필요한 기발한 기계장치들을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어려움을 하나하나 해결했고, 점차
주위의 신뢰를 얻어갔다. 돔을 정말 지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시민들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이 예상되자 반대파의 간섭도 심해져, 길드 회비를 체납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해 공사 중에 전격 체포되기도 했다. 이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렇게 16년의
세월이 지나고 사람의 힘으로 지을 수 없다던 거대한 돔이 마침내 만천하에 자태를
드러냈다.
성당을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한 지 무려 150년만의 일이었고, 무명의 건축가였던 브루
넬레스키는 일약 피렌체 최고의 건축가로 인정을 받았다.
브루넬레스키는 “도전”을 선택한 것이다.
남들처럼 편하게 그 당시 건축의 중심지인 파리나, 브뤼셀로 가서 건축을 배웠다면,
대세를 따르는 셈이 되었겠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답이 로마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인들은 거대한 돔을 아주 쉽게
만들었고 판테온 신전이 그랬다. 하지만 그것을 짓는 노하우나 방법이 다 사라진
상태이고 가르쳐 줄 이도 하나 없지만 자기 힘으로 하나에서 열까지 도전으로 돌파했
던 것이다.
창조는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없던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일이니 익숙한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생각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브루넬레스키는 창조성의 가장 첫 단계가 다름아닌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 생각대로 해보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만나야 한다.
주위의 몰이해와 선입견도 장벽이 된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선구자들이 걸어간 길은 예전에 있던 길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길이었다. 이들은 도전했고 어려움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묵묵히 갔다.
그러자 길이 없던 곳에 새로운 길이 생겼다.
길이 보이지 않는 시대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점검해보자.
우리의 태도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레 안된다고 물러서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도전하자. 이 시대엔 브르넬레스키와 같은 도전자가 정말 많이 필요하다.
길을 만들어줄 사람은 하늘에서 툭 떨어지지 않는다.
바로 우리 스스로가 길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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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르네상스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오늘 첵 제목이 아트+인문학+여행 인데, 저자는 이 셋의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건 우리를 성장시켜 현실을 낯설게 보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여행은 떠남이고,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보고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온다는 것이며, 예술은 예술가의 눈을 빌어 자연이 숨겨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체험이라 합니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폭넓고 진지한 통찰을 배우는 것이구요.
낯설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익숙한 것들 속에 숨어 있던 새로움을 발견하고
창조의 문을 열 수 있다 합니다.
브루넬레스키처럼, 익숙한 길을 찾지 말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용기와
안목을 가질 때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현재의 어려움과 위기를 이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트, 인문학, 여행 , 이 세 가지를 앞으로 좀 더 가까이 하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