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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융합>

김경집

by 해헌 서재

<생각의 융합> 김경집 저

강 일 송

오늘은 통섭(統攝)과 같은 개념인 융합(融合)에 대해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자인 김경집교수는 서강대영문과, 동 대학원 철학과 졸업하고 가톨릭대에서
가르침을 펼치다가 25년을 끝으로 강단을 떠나 대중을 향한 저술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인문학자입니다.

그는 지식의 취득에 대한 관심, 즉 위키피디아식 지식보다는 어떻게 그것들을
연결하고 융합하느냐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융합하는 인문학”
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고 편집하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책 내용 중, 시공간을 초월해서 역사를 연결하여 보는 것으로, 콜럼버스와
이순신에 대한 내용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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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동서양을 연결하는 최초의 연결고리인 “실크로드”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1905)이라 합니다. 그는 유럽과
중국이 무역을 할 때 내륙을 관통하던 경로를 지칭하였습니다.

기원전 4세기에 이미 도나우 상류지역의 켈트족의 거대한 토총에서 중국의
원단이 발견되었다고 하였고, 로마시대에는 비단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
했는데, 귀족들에게 비단은 그들의 신분을 과시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합니다.
중국에서는 비단, 칠기, 도자기, 양잠법, 화약 제조기술, 제지 기술 등이
서역으로 건너갔고, 특히 제지술은 중세유럽의 암흑기를 밝혀 인쇄술발달과
지식 보급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후 마르코 폴로(1254-1324)의 동방견문록이 유럽을 풍미하게 됩니다.
베니스 출신의 상인인 그가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여행한 17년의 기록인데
쿠빌라이 칸이 지배하던 원나라까지 갔다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베니스로
돌아오게 되고, 복귀 후 이 책을 기록하게 됩니다.

특히 아시아에는 금은보화가 엄청나게 있다는 내용이 있는 이 책 한권이
당시 유럽인들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고 합니다. 이는 훗날 서구제국주의와
이어진다는 점을 주의 깊게 보아야합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에 함락되자, 아시아로 가는 길이
막히게 됩니다. 이후 육로가 막히자,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메오디아스가
희망봉을 도는 데 성공하고, 1498년에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양 항로를
발견하는 등 이제 실크로드는 해로에 역할을 내어 주지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나, 잉카제국을 정복하고 잔인한 학살을
자행한 피사로의 동기도 바로 “금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에스파냐 팔로스항을 떠나 육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콜럼버스가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려고 했던 것은 인도를 가고자
했기 때문이고, 자기가 발견한 그 곳을 죽을때까지 인도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중국과 인도에서 생산되는 비단과 향료는 매우 귀한
상품이었지요.

남미에서 약탈한 은을 가지고 중국에 와서 엄청난 양의 “도자기,비단”을
구매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항해시대에 에스파냐와 경쟁하던 포르투갈은 아메리카 대륙을 포기하고
다른 인도항로를 개척하다가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에 진출하고 중국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중국의 마카오를 점령한 포르투갈은 아시아 지역과
밀무역을 벌였으며 당시 동아시아 해역에서 활동하던 왜구와도 무역을
하게 됩니다.

1543년 중국 해적선 한 척이 명나라 닝보로 가던 도중 폭풍우를 만나
큐슈의 남단 다네가시마(種子島)에 닿게 되고, 이 배에 탔던 포르투갈인
은 일본에 온 최초의 유럽인이었습니다.
영주인 다네가시마 도키타카는 배안의 명나라 사람과 필담을 나누다가
포르투갈인이 갖고 있던 총(철포)에 관심을 갖고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억엔의 거금인 2,000냥을 주고 두 자루의 총을 입수합니다.

그는 곧 스기노보라는 장인에게 총의 기능과 제작법을 익혀 양산하게
하는데, 50년이 지난 다음 조총제작기술은 유럽수준을 능가할 정도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전국의 다이묘들은 일본의 패자가 되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종래의 기마 중심 전법에서 조총으로 하는
전투로 전략이 바꾸어지게 됩니다.

마침내 1573년 오다 노부나가는 무로막치 막부를 멸망시키고 일본을
통일하게 됩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사후 그의 계승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후 일본 내부의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하여 조선을 침략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임진왜란(1592-1598)입니다.
조선은 놀라운 신무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데, 불과 20일만에
도성이 함락되고 임금은 도성을 버리고 도망을 칩니다.

하지만 조선의 수군은 예상보다 강했습니다. 사실 이순신만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고려 이래로 수군의 편제와 전술은
왜구 방어 위주였고, 각도에 수영(水營)이 있어서 거점을 가지고
방어를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가진 대포와 일본의 조총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이 전쟁은, 육상에 비해 방어적 개념이 더 강한 해상
전투에서 화포, 특히 대포의 위력이 조총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합니다.

콜럼버스와 이순신, 1492년과 1592년, 100년이라는 시간의 격차,
동양과 서양이라는 공간적 차이를 뛰어넘은 조우는, 그 사이 이루어진
수많은 사건과 변화를 거쳐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입체적 사고력
의 단면을 맛보게 해줄 수 있겠습니다.

그 중심에는 “은과 총”이 있었습니다. 동양에 전해진 총 한자루는
동아시아의 판도와 역사를 바꿔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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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전개하다보니 제법 길게 쓰여졌습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수많은 요소들이 군데군데에서 이어지고 합쳐지고 전개되어 이루어진
연속선상의 사고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연결한 “사고의 비약”(?) 이라고도 평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엔 수많은 생각할 점들이
많음을 부정하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명나라때 환관 정화(1371-1435)가 3대 황제 영락제의 명을 받아
서역으로 원정을 나서는데, 1405년 첫 원정대의 규모가
대함선 62척, 선원, 학자, 군인, 통역사, 의사 등 2만 7800명 으로
캄보디아, 태국, 자바섬, 수마트라섬, 실론, 인도의 캘리컷, 페르시아의
호르무즈, 아라비아의 아덴,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케냐의 몸바사에
이르는 엄청난 항해를 합니다.

정화의 배들의 규모는 당시 유럽의 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는데, 길이가 137미터, 너비가 56미터로 1500톤짜리
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4대황제 홍희제는 아무 소용없는 일에 국고를 낭비한다는
유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선단을 해체하고 원정기록을 폐기하였
으며 배의 설계도까지 다 불살라 버리는 일을 시행하여 스스로
해양강국의 지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고려의 인쇄술은 고종 21년(1234년) 금속활자로 인쇄를 했다는 기록
이 있고, 1377년 찍은 “직지심체요절”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라 합니다.
그에 비해 구텐베르크는 1455년에야 마인츠에서 찍은 “42행 성서”가
시작이었고, 급속하게 퍼진 책의 출간으로 지식의 독점이 무너져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보자면, 누가 먼저 만들었느냐 보다는
어떻게 운용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전해진 총기도 중국에 먼저 전해졌던 것이고
이를 먼저 활용했더라면 또 다른 역사가 전개되었겠지요.

역사적 사실을 단편적인 지식이나 한가지 사고의 틀로 이해하지
말고, 여러 단면으로 자르고 융합해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본다면
역사가 역사로서 머물지 않고, 우리 삶에도 적용이 되는 도구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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