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문 인류

<어떻게 인문학은 만들어 지는가 >3.

정화와 콜럼버스를 통해 본 동서양의 세계관

by 해헌 서재

<어떻게 인문학은 만들어 지는가 >3. 이경덕

-- 정화와 콜럼버스를 통해 본 동서양의 세계관


강 일 송


오늘은 “어떻게 인문학은 만들어 지는가” 3편입니다.

워낙 다양한 이야기가 다른 시각으로 전개되어 나누어서 말씀드리는

중입니다.


“알렉산드로스와 석굴암”, “유목민과 정착민”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했었구요, 오늘은 정화와 콜럼버스, 항해하는 두 인물을 비교해 보겠

습니다. 두 인물을 통해 동서양의 관념과 철학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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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1451-1500) 라는 이름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우리의 조상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사람도

아니지만 왜 우리가 알고 있을까?


그 이유를 콜럼버스보다 약간 시대적으로 앞서지만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중국인 정화(1371-1433)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정화는 콜럼버스보다 더 많은 항해를 했고 항해의 목적도 더 고귀한 것이

었다. 두 사람의 행적을 통해 동서양의 문명이 지닌 관점 차이를 보자.


동서양은 서로 유사한 단계를 거치면서 또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변화

해왔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크라테스(BC469-399)와 동양철학

의 태두로 불리는 공자(BC551-479)가 비슷한 시기를 살았고 인간 지식이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소피스트(BC5-4)의 시대와 제자백가(BC8-5)의 시대

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에 보듯이 동양과 서양이 차이를 보이게 된 분수령은 15세기

였다. 이 시기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때이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바다에

뛰어든 시대였다.


그 토대는 “몽골의 세계 지배”와 “아라비아의 과학”이었다. 13세기 초부터

세계사에 휘몰아친 몽골의 위세는 진정한 세계화를 통해서 유라시아 세계

를 하나로 연결했고 역시 아라비아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뛰어난 과학이

유럽으로 흘러들었다.


여기에 유럽에서는 한동안 그들을 지배했던 헤브라이즘(기독교)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서양 문명의 한 축인 헬레니즘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

했다. 동양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부하지 못했던 환경이 탐구와 모험정신을

부추겨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대항해 시대의 막을 연 대표적인 인물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콜럼버스

였다. 즉 서양이 그들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세계로의 도약을 상징하는

인물이 콜럼버스였다. 따라서 서양의 역사에서는 콜럼버스가 매우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콜럼버스는 서양을 대표하는 인물답게 집요하고 의지가 굳은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항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황금의 땅으로 알려진 인도로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여러 차례 항해를 지원해 줄 후원자를 찾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그에게 후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에스파냐의

이사벨여왕이었다.


이사벨 여왕과 산타페협약을 맺었는데, 그는 항해를 통해 발견한 땅의

부왕(副王)이 되고 그 이익의 10분의 1을 챙길 수 있는 특권을 후손까지

부여받기로 한다. 과거의 죄를 사면해준다는 조건으로 선원들을 모집

하였고 선박 2척과 핀손이라는 선장이 자기 소유의 산타마리아호를

같이 참가시켜 출발을 하였다.


1492년 8월 3일 땅과 재물에 대한 부푼 욕망과 죄의 사면을 위해 바다

로 향했고 10월 12일에 바하마제도에 있는 섬에 도착하였으며 쿠바와

아이티에 상륙해서 식민지를 건설했다.


우리는 흔히 콜럼버스가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엄연히 그곳

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먼 옛날 베링해가 얼었을 때 유라시아

에서 건너간 사람들이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사람

들을 인류로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 즉 “서양 중심주의”를 말해준다.

그들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곳의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식민지를 건설한 것이다.


콜럼버스의 성공은 두 번째 항해로 이어져 열일곱 척의 배와 1,5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선단으로 격상된다. 황금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 항해에서 만족할 만큼의 황금을 얻지 못하자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게 된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도착했던 땅이 여전히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라고

믿으며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콜럼버스의 항해는 많은 것을 남겼는데, 가장 큰 것은 인디언들이 차지

하고 있던 아메리카가 유럽인들의 식민지로 변했고 대학살 등 엄청난

고통을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첫 만남은 황금에 대한 욕망이 개입하면서

불행으로 얼룩졌다. 유럽은 아메리카를 자기들과 동일한 인류가 사는

곳이 아닌 황금의 땅으로 소외시키고 대상화했으며 그것은 엄청난 비극

을 낳게 했다.


이번에는 중국 명나라의 인물 정화를 보자.

몽골이 세운 원나라를 무너뜨린 명(1368-1644)은 세 번째 황제인 영락제

에 이르러 대규모 해외 항해를 계획한다.

이 함대의 책임자로 정화를 임명했는데, 그는 환관이었다.

정화는 서역에서 온 이슬람 집안에서 태어나 윈남성 쿤밍에 살고 있었는데

원나라 잔존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쿤밍은 영락제의 공격을 받고 성인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소년들은 거세를 당하였다.

그 가운데 정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그는 궁궐로 들어가 충심으로 일하며 신임을 얻어 환관 가운데 서열 2위

인 내관태감까지 올랐다. 중국은 그 당시 중화사상을 갖고 있었기에 그에

어울리는 위세가 필요했다. 정화의 항해도 이러한 측면이 강하였다.


정화의 대선단은 콜럼버스의 선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2만 7,000명에 이르는 선원과 62척의 대형 선박이 동원되었고, 배의 크기 또한

콜럼버스 배의 약 30배에 이르렀다.

정화의 항해단은 찾아간 곳을 공격하여 식민지로 삼거나 착취하지 않았고

자신들을 적대하는 곳은 싸웠지만 땅을 빼앗거나 자국의 종교나 언어 등을

강요하지 않았다. 또한 대립하고 있던 사람들을 화해시키기도 하고 선물을

나누어 주고 명나라 황제에 대해 소개했다.


정화의 항해는 일곱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고 인도, 아라비아 반도 등을 거쳐

케냐의 뭄바사까지 찾아갔다. 이후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신하들

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되었고 정치적인 이유로 재개되지는 못하였다.


역사에서 가정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만약 중국이 유럽과 같은 생각을 했다면

콜럼버스보다 훨씬 배도 크고 무기도 월등했으며 인원도 많았던 그들은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유럽은 폭력과 약탈을 사용해 물질적인 착취를 사용했고, 중국은 물질을

나누어주면서 정신적인 복속이라는 방법을 선호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에서 담배와 고추, 옥수수, 토마토, 감자 등을 들여오고

매독, 폭력과 같은 것을 전했다. 한편 정화가 가져온 것은 좀 달랐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가져온 기린이 상징하듯 문화적으로 이국적이고

기이한 것들이었다.

중국이 위세를 위한 항해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지리상의 발견을 위해

세계로 눈을 돌렸다면 세계사는 크게 변했겠지만 중국은 중화사상을

토대로 한 위세 쌓기를 선택했다.


누군가는 중국의 이런 선택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도 세계의 역사는 진행형이고 이러한 선택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빚어낼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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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과 식민지화, 정화의 명분과 위세 쌓기

의 항해 등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두 항해는 동양과 서양의 기본적인 철학과 사고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둘 다 자기 중심주의를 가졌습니다.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관점을 가졌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아주 달랐습니다.


서양은 기본적으로 모든 자연과 동물을 지배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성경에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이 있듯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그들의 눈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사람이

아니었고 동물에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양, 특히 중국은 이미 그 시기에 세계 최고의 부를 가지고 있었고, 과학

기술이나 모든 면에서 월등했기에 다른 곳을 찾아 식민지로 삼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두 문명의 운명은 갈라집니다. 명나라의 월등했던 항해기술과

선박 제조기술은 정치적인 이유로 철저히 폐기됩니다. 선박 건조 도면까지

다 없애버려 완벽한 퇴보를 한 것이지요.

점차 세계로 뻗어나가 세계사를 주도한 유럽과는 달리 그들은 스스로

안으로 안으로 움츠려듭니다.


황금에 대한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 찼던 항해였지만 유럽인들은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호주, 아시아 등에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역사의 주도세력

이 됩니다.


역사에는 아이러니가 참 많습니다. 항해를 통해 그들의 위엄을 알리고

선물을 주며, 분쟁지역에서 화해까지 시키면서 평화적으로 임했던 정화의

함대는 아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아메리카를 인도로 알았던 그 콜럼버스는 지금도

아메리카 대륙에 수많은 흔적을 남깁니다.

콜럼비아라는 나라명도 콜럼버스에서 유래했으며, 뉴욕의 명문대인

콜럼비아대학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도 District of Columbia의 약자

입니다.


역사는 돌고 돌며, 처음과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와 열매를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도 역사는 진행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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