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VS 정착민
<인문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2. 이경덕
-- 유목민 VS 정착민
강 일 송
오늘은 인문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편입니다.
1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필연적으로 기후와 지형 등에
따라서 다름이 생길 수밖에 없고, 서로 다르기에 충돌하면서
다투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인류 문화의 변화 과정을 이야기라는 수단을 통해서
풀어놓고 있는데, 지난 번은 헬레니즘이 동진하여 석굴암에 영향을
준 내용이었습니다. 오늘은 인류를 나누는 이분법 중의 하나인
유목민이냐 정착민이냐는 주제로 한 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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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여러 형태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농경민과 유목민
의 분류이다. 정착해서 사는 농경민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은 각각
문화적, 사회적 특징이 뚜렷이 다르다.
정착과 이동, 고정점과 변화, 중심주의와 다원주의가 이들을 나누는 특징
이다.
근대가 농경적 셩격이 강한 사회였다면, 현대는 유목적 성격이 강한 시대
로 볼 수 있다.
유목민들은 오랫동안 문자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역사를 기록
으로 남기지 못했다. 이들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기록 문화를 가진
정주민들과 접촉 후 그 일에 대해 정주민들이 기록했을 때뿐이었다.
유목민에 대한 첫 기록은 서양에서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헤르도토스
(BC480-420)가 쓴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페르시아제국과 그리스를 비롯해 고대 중근동에서 일어났던 역사를
편향되지 않은 시선으로 기록해 놓은 역사서이다.
여기에서 처음 나온 유목민은 스키타이(Scythai)였다. 스키타이는 최초의 기마
유목으로 유명한 민족이다. 스키타이가 세계의 역사에 등장한 것은 당시
최강의 힘을 자랑하던 페르시아제국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당시 페르시아제국은 이집트를 정복한 후 그리스를 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아나톨리아반도 위 넓은 지역에 있던 스키타이가 협공할까봐 먼저
정벌하기로 하고 나섰으나 신출귀몰한 스키타이의 기병에 다리우스 황제는
8만이나 병사를 잃고 패퇴하였다.
이후 다시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도 북방 원정군을 보냈는데
스키타이에 패하였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8-7세기경 볼가강 주위에서 살다가 중앙아시아쪽으로
남하한 것으로 추정되는 민족이다.
전 세계의 가장 강한 제국 페르시아와 알렉산드로스의 공격을 연달아 막아낸
그들은 뛰어난 기마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기마술은 동쪽으로 전해져 당시 중국의 패권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당시 서쪽의 패자는 페르시아였고 동쪽의 패자는 중국이었다. 당연히 실크로드
의 양쪽 끝도 두 나라였다.
당시 중국은 전국시대(BC 403-221) 였는데, 이 때 북쪽의 조나라가 강성해
졌다. 조나라의 군대가 강성해진 이유는 기마에 있었다. 북쪽에 있었기에
중앙아시아에서 동아시아로 전해진 기마술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이다.
기마기술과 함께 복장도 바뀌어야 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입는 바지도 말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한편 조나라의 약진을 지켜본 나라가 있었는데, 바로 진나라였다.
진 역시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유목민과의 접촉이 잦았는데, 진나라는
재빠르게 강한 기마군단을 육성하기 시작했고 그 힘으로 전국시대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진시황은 중국에서 최초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누구보다 기마군단
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기에 북쪽의 흉노를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고
군현제를 실시하였다. 만리장성과 군현제는 흉노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진나라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진시황의 둘째 아들인 두 번째 황제 호해까지
불과 2대만에 몰락하였다. 이후 유방과 항우의 결전이 벌어졌고
유방이 기원전 202년 한나라를 세우게 된다.
동양의 역사의 아버지는 사마천이었다. 그의 사기에서 <흉노열전>이 있는데
이 책으로 인해 흉노가 후대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한고조 유방은 32만의 군대를 이끌고 흉노를 치러 갔으나 오히려 백등산에
갇히게 된다. 선우의 부인에게 막대한 재물을 보내 화해를 청하게 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돌아온다.
이후 한나라는 흉노에 막대한 재물과 왕가의 공주를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
보내서 화친을 꾀하게 된다. 흉노는 군사력이 강했지만 경제력이 약했고
한나라는 경제력이 뛰어났지만 군사력이 약하였다. 그 이후 역사를 거치면서
이 관계는 변화를 겪기도 했지만 대체로 남쪽의 농경국가는 경제력을
제공하고 북쪽의 유목국가는 군사력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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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류의 분류 중 큰 축인 유목민과 정주민(농경민)과의 관계에 대한
글을 한 번 보았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의 유목민은 스키타이입니다. 그들은 뛰어난
기마술로 세계 최강의 페르시아와,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를 격파합니다.
그들의 기마술은 동으로 전해져, 진시황이 최초의 중국 통일과 최초의 황제
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흉노, 훈족, 몽골 등등 세계를 호령한 유목민들과 정착민들과의
교류와 갈등은 역사의 큰 줄기를 만들어냅니다.
훈족은 아틸라왕의 맹활약으로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
게르만족이 대이동을 하게 되고, 로마가 무너집니다. 훈족을 피해 바다로
들어간 베네치아는 후에 대단한 부의 국가를 이룩하지요.
흉노와 중국중원의 국가와는 늘 긴장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
만리장성이 생겼고, 남하한 그들이 중국을 지배한 정권도 여럿 됩니다.
다만 유목민들은 문자가 없었기에 그들의 반대편에 선 적군에 의해 역사가
기록이 됩니다. 절대 좋은 일들이 기록될 리가 만무하지요.
현대에 와서 다시 그들의 문화는 살아났습니다. 정보화와 세계화,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온 세상은 유목적인 마인드로 무장한 사회가 지배하는 곳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 곳에 머무르고 정착하면서 살아온 과거에서 인식의 대전환을
이루어 언제, 어디든지 옮겨 다닐 수 있고, 고착된 마인드가 아니라
유연하고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목적 마인드, 즉 노마드(nomad)의
정신으로 무장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