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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19. 2016

<중국인, 천의 얼굴>

강성현

<중국인, 천의 얼굴>  강성현


                       강 일 송


오늘은 중국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중국은 고대로부터 세계사의 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중국과 접경을 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중국의 영향력

에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천 년 동안 중국은 우리에겐 요즘 말로 “넘사벽”이었지요.

새로운 문화를 얻는 선진국이었고, 사대를 하는 종주국이었으며, 때론

군대를 파견해주는 사이였기도 합니다.


근래에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하여 G2 로 커나가고 있지만 최근

경기하락과 주가폭락 등으로 주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상당히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구요.


저자는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산시성 웨이난 사범

대학교 교수로 재직한 적이 있는 중국통입니다.

이 책에서 중국의 인물 25명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저는 그 중

두 명의 이야기를 선별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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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태조 주원장과 토사구팽의 비극


명나라의 초대 황제인 주원장(1328-1398)의 초상화는 두 종류가 전한다.

사실에 기초한 초상화를 보면 심한 주걱턱에다 수염이 별로 없고 주근깨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눈썹과 눈꼬리가 올라갔으며 눈매 또한 매섭다.

 

소작인 주오사의 늦둥이로 태어난 중팔(원장의 아명)은 어린 시절 잔병을

앓아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가 자란 어린 시절은 몽고관리의

착취와 수탈, 기근,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민심이 흉흉했다.


주원장은 안휘성 평양 사람이다.  서달, 탕화, 주덕홍 등과 소꼴을 먹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부터 그는 사람을 부릴 줄 알았다.

말수가 적었고, 지혜로웠으며, 의리있고 책임감이 강해서 모두들 그를 믿고

잘 따랐다.


황각사의 행자, 떠돌이 탁발승으로 초근목피하던 그는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홍건군이 도처에서 봉기하자 이 대열에 뛰어들었다.

과묵함, 탁월한 통솔력, 겸양과 지모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천하

를 놓고 혈투를 벌이는 군웅 가운데 한 사람이 됐다.


지식은 일천하였지만 독서와 학문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배우고 또 익혔다.

유기나 송렴 같은 현자를 초빙하여 경청하고 부하들의 건의에도 귀를 기울

였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다.


홍무 원년인 1368년, 만 40세의 나이로 주걱턱 주중팔이 황제로 등극했다.

원장은 황제가 된 후 초심을 완전히 잃었다.   독단, 아집, 시기, 의심, 분노,

잔인, 비열 등은 이 시대 주원장의 성정을 적절히 표현한 단어이다.


그의 앞에는 6국공, 28후 등 개국공신들이 제각기 위엄을 뽐냈다. 이들은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어릴 적 동무, 서달, 탕화, 주덕홍

등도 불멸의 전공을 세우고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어느덧 자신을 도와 천하를 쟁취했던 공신들이 눈엣가시가 되었다.


주원장은 특무조직인 검교, 금의위 등을 두고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했다. 서슬퍼런 특무조직의 감시망을 피해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죄목은 대부분, 역모, 부정부패, 수뢰, 횡령 등이었다.

혈족이나 공신을 가리지 않고 눈에 거슬리면 제거했다.


개국의 맹장들이 스러져갔다. 연좌되어 죽은 자가 20만 명이 넘었다한다.

후계자인 아들 주표에게 “가시 돋친 지팡이”를 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가시 돋친 지팡이를 손으로 잡기 어렵듯이, 신하가 스스로를 대단히 여기고

오만하면 다스리기 어렵다. 내가 개국공신들을 일일이 죽인 이유는 너를

찌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만 장차 네가 신하들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원장은 30년을 집권했다. 그는 “주씨 천하”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재위

내내 피의 향연을 벌였다.  주원장 시대에 되풀이 된 토사구팽의 비극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권력의 비정함을 일깨워준다.   권력의 늪에 빠져

죽지 않으려면 권력을 멀리 하는 수밖에 없다.



◉ 꽌시의 달인, 호설암의 영광과 몰락


“이윤을 좇는 것은 상인의 본능이다. 이득이 된다면 칼날에 묻은 피도 기꺼이

핥아야 한다.“  전설적인 거상 호설암(1823-1885)이 즐겨 사용한 말인데,

상인의 비정함이 느껴진다.  그는 상신(商神) 또는 상성(商聖)이라 불렸다.

“벼슬을 하려거든 증국번(1811-1872)에게 배우고, 장사를 하려거든 호설암

에게 배워라“  중국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유명한 말이다.


호설암은 안휘성 후이저우시 지시현 출신이다.  후이저우시 상인은 우리의

개성상인만큼이나 유명하다.  처음에 전장(사설금융기관)의 점원으로 출발을

하였고, 두뇌회전이 비상하여 금융,회계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각 성의 20여 곳에 전장을 운영하며 주요 지역의 상권을 지배했다.

전장 외에 전당포, 생사, 관군의 곡물 운송, 관금 유치 등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 들였다.


호설암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영방법이나 안목, 그릇의 크기, 교류의

폭 등을 비춰봐야 한다.  그 중에서도 그의 인맥관리, 즉 “꽌시”를 떠나서

그를 제대로 조명하기란 쉽지 않다.

“꽌시”는 중국식 인맥관리라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라 하기도

하는데, 우리말의 “관계”와 중국의 “꽌시”는 어감상 많은 차이가 난다.

술을 몇 번 사고 뇌물을 주었다고 해서 “꽌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국에서 한국식의 “빽”을 쓰다가는 호되게 망신당한다. “꽌시”의 핵심

은 “신뢰” 다.


꽌시의 특성은 의무감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꽌시가 맺어지면, 쌍방이

각기 자신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공통된 인식이 형성된다.

꽌시란 상호간 신의를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인간

관계라 할 수 있다.  호설암은 진정한 의미에서 꽌시의 달인이었다.


호설암은 전도가 밝은 인물을 물색하여 도왔는데, 그가 바로 왕유령이었다.

서른이 넘도록 돈이 없어 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그에게 은 500냥을 선뜻

내어 주어 왕유령을 도왔는데, 이것을 계기로 크게 성공하게 된다.

관직에 나가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한 그의 집안을 호설암은 경제적으로

보살폈다.   왕유령은 승승장구하여 호설암을 밀어주고 당겨주게 된다.


호설암은 인맥관리 외에 여러 면에서 비범함을 갖췄다. 배포와 뚝심, 비상

한 두뇌회전, 인재를 판별하는 안목, 상세 흐름을 읽은 능력, 대범함과

관대함, 과감한 승부수, 능수능란한 처세술 등 그의 장점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다.


그의 경영철학인 상도(商道) 열 가지를 간추려 본다면


. 이름을 알리는 것이 돈 버는 것보다 중요하다.

. 정세와 상세의 흐름을 파악하라.

. 속이지 마라.

. 검은 돈, 원한을 살 돈과 데일 돈을 취하지 마라

. 남에게 활로를 열어주면 자신에게 재로(財路)가 생긴다

. 넓은 가슴으로 인재를 끌어 모으라

. 상호 이익을 취할 방법을 배워라

.  성실과 신용, 신의를 바탕으로 일하라

.  돈을 쓰는 것이 돈을 낳는 것이다.

.  아랫사람을 믿고 맡겨라


그는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약업계에서도 성공을 했는데, 그 가게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약업은 생명에 관계되는 것으로 결코 속여서는 안 된다. 조악한 물건으로

이익을 남기려고 하지 마라. 조제를 세심하게 하며, 자신과 남을 속이는

일을 하지 마라.  다듬고 빼고 더하는 것을 비록 보는 사람은 없지만

그 마음을 하늘이 안다“


그는 약제의 품질을 가장 우선시한 것이다. 이러한 조제과정을 손님들에게

공개하여 모두 진품이라는 것을 믿게 했다. 그리고 철저한 정찰가로 운영

했다. 직원이 은퇴하면 퇴직연금을 죽을 때까지 줬으며, 직원이 죽으면

가족에게 위로금을 지불했다.

그의 타고난 상인 기질은 일시적인 이익을 취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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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중국의 정치와 경제적인 면에서 두 인물을 살펴보았습니다.


정치란 비정한 것입니다.  토사구팽이 중국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의 건국이후에 태종 이방원이 개국공신 정도전을 제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요.

하지만 명나라 주원장의 공신제거는 도에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좌제를 적용하여 20만 명이나 제거를 했다니, 아무리 정권의 안정

과 주씨 왕조의 미래를 위해서라지만 피의 제왕이라 할 만 합니다.

권력은 부모형제 간에도 양보가 없습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다하고

모든 것을 바쳐서 충성한 공신들이 정권을 잡자 그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 되어 버리지요. 비정함의 극치입니다.


두 번째 인물은 장사의 신인 호설암에 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중국의 그 유명한 “꽌시”의 달인이기도 하고, 정세와 상세를 읽는

정확한 눈과, 대범함, 관대함, 능수능란함 등 상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다 갖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상도 10가지는 지금 읽어도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약업을 할 때도 철저한 약재 관리를 하는 대신 정찰제로 확실하게

이익을 구현하는 그의 처신은 지극히 현명합니다.


“남에게 활로를 열어주면 나의 재로(財路)가 생긴다”는 말은 대단한

명언입니다.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선견지명은 현대의 금융계에 종사하

는 분들이 읽어도 어김이 없겠지요.


중국문명이 역사이래 가장 오래도록 이어온 하나의 문명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선조들의 지혜가 이어져 온 결과이겠지요.

성공과 실패 모두에서 교훈을 얻고, 하나의 문자아래 수천 년을 이어온

그들의 저력!


이제껏 역사상 중국과의 관계는 항상 한반도의 안위에 중요한 영향을

주어 왔고, 지금도 미국, 중국, 북한, 일본 등과의 치열한 전략적 수싸움

을 해야 하는 이 시기, 또 한 번 중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중국인, 그들의 속성을 잘 연구하고 이해하여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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