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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ug 31. 2016

<토인비와의 대화> Toynbee, Arnold Jos

<토인비와의 대화> Toynbee, Arnold Joseph

                                     강 일 송

오늘은 영국의 역사가이자, 문명 평론가로서 현대의 가장 해박한 지식인이라고
불리우는 아놀드 J. 토인비(1889-1975)의 글을 한번 보겠습니다.
1899년 영국 런던의 전형적인 지식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조부가 의사였고
부친 역시 의사이자 자선사업가였습니다. 또한 그의 숙부인 아놀드 토인비는
“영국 산업혁명사”의 저자로 이름 높은 경제학자이자 사회개량가였다 합니다.

토인비가 역사학자로서 성장하게 된 것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역사 교과서를
집필한 역사가인 어머니로부터 밤마다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로마와 그리스의 고대사를 전공하고 런던대학
국제사 교수, 외무성 조사부장 등을 역임하고 런던 대학의 명예교수가 되었습니다.

오늘 책은 토인비가 일본 교토 산업대학의 와카이즈미 교수와 나눈 대화를
책으로 만든 것으로 1971년에 이루어진 대화의 내용입니다.
45년 전에 행해진 대화지만 인류의 대학자로서 그의 사상과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번 함께 들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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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같은 것을 생각하고 같이 느끼며, 공통되는 문제와 함께
맞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 인류는 어떠한 방식으로 미래를 살아갈
것인가”, 바꾸어 말하면 산업혁명 이래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 우리가 스스로 불러
들인 이 새로운 인위적인 환경에서 인간의 삶을 어떠한 식으로 영위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문명의 도래 이전부터 인간은 스스로 자연의 주인이 되기를 바래왔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은 현대에 이르러 어느 정도 달성이 되었는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우리가 정복하고 부분적으로 파괴한 자연환경에 비해 이 새로운 인위적 환경에서의
삶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인간은 깨닫게 됩니다.

◉ 삶의 목표와 보람

나는 인간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목표가 있다고 한다면, 사랑, 예지, 창조의 수행에
그것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은 이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모든 능력과
정열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치 있는 것은 대부분 어느 정도 자기 희생을 요구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모두 욕망이지만, 이 욕망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를 몰각(沒却)하여 타인이나 세계 혹은 우주의 배후에 있는 것에
자기 자신을 내맡기고자 하는 욕망이고, 또 하나는 우주를 빼앗아 자기 자신
속에 침몰시킨 다음 자기의 목표 추구에 사용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자기 자신을 몰각하여 다른 생명을, 타인을, 우주
를, 그리고 우주의 배후에 있는 것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며 모든 대상 중에서도 제일 먼저 자신과 동류인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리고 인간 이외의 모든 생명이 있는 것,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사랑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자연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 이 자연도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우주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이외의 것을 사랑한다는 마음은 서방세계보다는 인도나 동아시아 사람들
에게 있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서방세계에서 이러한 흔적을 찾는다면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태양, 바람, 공기, 구름, 불을 우리의 형제라 하고, 생존해 있는 모든 인간을
우리의 자매라 하면서 신을 찬미했습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형제이며 자매라는 의식이 매우 강했던
것입니다.

인간 이외의 생물을 인간의 목표 추구를 위한 도구로 삼거나, 소나 말처럼 마구
부리거나 혹은 도살하여 먹어치우는 것을 사랑과 양립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인간이나 가축, 곡물에 유해한 생물을 제거하는 도덕적 권리를 우리는
갖고 있을까요? 해충이나 잡초를 제거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을까요?

우리 인간들은 인간 이외의 생물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무의식적인 동기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고작 마음의 표면에서 감돌고 있을 뿐인 것, 그것이
인간의 이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인간성의 합리적인 면과 비합리적인 면과의 끊임없는 투쟁이 삶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들의 삶의 보람은 삶이 창조적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는데, 창조적이라
함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우주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말합니다.
가능한 한 이 우주에 나쁜 것이 아닌 좋은 것을 첨가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것의 시작은 우리들 눈에 보이는 우주가 분명히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럽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얼마나 많은 불완전이 이 우주에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생물이 있으며, 그들 생물 대부분은 서로를 잡아 먹고 있습니다. 어떤 동물을
막론하고 다른 동물을 잡아 먹거나 혹은 식물을 먹이로 취합니다.
생물은 물론이고 생명이 없는 자연까지도 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거나 관리를
소홀히 할 때에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주게
마련입니다.

◉ 자기중심주의의 극복

기아와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고 신체의 안전을 지키는 가운데 휴양을 즐기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본질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또 모든 개개의 생물도 역시 자기중심적입니다.
사회나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류나 늑대, 혹은 비버와 같은 사회적 종(種)
뿐 아니라 모성 본능이 강한 다른 종에서도 자기중심주의는 여전히 현저합니다.
사실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 바로 이 자기중심주의입니다.
따라서 자기중심주의란 살아 있다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좋을 것
입니다.

무릇 생물이란 무엇일까요? 생물이란 일종의 분리된 반세계(反世界)라는
형태로 자립하고 있는 우주의 작은 한 조각입니다. 이 우주의 작은 한 조각은
나머지 우주의 조각을 자기의 목적 달성에 봉사하게 함으로써 자기를 주축으로
하여 움직이게 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곧 자기중심주의의 의미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터무니없는 소망입니다. 모든 종의 생물은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극도의 슬픔에 빠졌을 때 비로소 자신이 갖고 있는 자기중심주의
의 아이러니를 자각합니다. 그리고 그 공허함에 직면하여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생물의 일종인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기중심주의적이지만, 인간은 의식적으로
어느 정도 자기중심주의와 싸울 수 있으며, 어느 정도는 극복도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이나 종교는 모두 최우선적으로 이러한 자기중심주의의 극복을
문제시해 왔습니다.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태교의 견해는, 얼핏 보기
에는 아주 판이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고찰해 본다면 모든 종교가 최우선적으로 개인의 심리 혹은
영혼에 작용하고 있으며, 인간의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도록 영혼을 설득하고
그 수단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어느 종교든 모두 같은 해결책을 발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종교는 이 자기중심주의는 사랑에 의해서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사랑, 다른 생물에 대한 사랑,
그밖에 인간을 초월한 것에 대한 사랑, 우주의 배후에 있는 궁극적, 정신적
존재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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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세기 가장 뛰어난 역사학자 중 한명인 아놀드 토인비에 관한 책을
같이 보았습니다.  <역사의 연구1-12권>라는 명저를 남긴 토인비는 인류의
뛰어난 지성 중 한명입니다.

1971년 이미 80세가 넘은 대학자가 이야기한 내용들을 보면 참으로 깊은 사유와
지성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삶의 목표를 사랑, 예지, 창조 라는 3가지 가치에 두어야 하고, 특히 사랑은
나를 잊는 몰아의 사랑, 인간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 심지어 자연까지도 깊이
사랑할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극복해야할 가장 큰 과제를 "자기중심주의"라고 하면서, 살아있음의
또 다른 표현이 자기중심주의라 할만큼 모든 생명체는 그 바탕에 자기중심주의가
있다고 합니다.  생물에 대한 그의 견해를 보면 참 독창적인데, 우주의 한 조각인
생명체가 나머지 우주가 자기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권력에의 의지"를  다르게 설명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의지를 가집니다.  이것은 자기중심주의,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야기한 Selfish(이기적)의 다른 표현이지요.

이러한 자기중심주의, Selfish를 극복하는 것이 철학, 종교, 도덕입니다.
종교, 철학의 가장 큰 역할이 모든 인간의 뿌리에 근거한 "자기중심주의"
를 극복할 이론을 제공하고 또한 그 수단까지 가르쳐주는 데 있을지 모릅니다.
대학자는 말하기를 이미 대부분의 종교는 그 답에 도달했는데, 자기를 잊은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 이외의 생명체에 대한 사랑, 인간을 초월한 우주의
배후 존재에 대한 사랑 등을 꼽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학자의 입을 통해 인간의 뿌리 깊은 곳의 "자기중심주의", "권력에의
의지" 등에 대한 고찰을 해보았습니다.
학문이 깊어지고 사유가 깊어지면 마치 종교적인 수행을 오래한 것과 같은
통찰이 생겨 그 마지막은 비슷해지는 것은 아닌지 오늘 토인비의 대화를 보니
그러한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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