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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Nov 25. 2016

<오스만제국>

<오스만 제국> 진원숙

-- 지중해의 세 번째 패자(覇者)


                           강 일 송


오늘은 1453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 제국을

정복한 오스만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스만제국은 발칸 반도의 대부분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하고 서지중

해의 유럽 및 일부 해안을 제외한 지중해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로마제국과 이슬람제국에 이은 지중해 세계의 세 번째 패자였던 것입니다.


오늘 저자인 진원숙교수는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명예교수입니다.

서양사 전공으로 “마키아벨리와 국가 이성”, “서양사 산책”, “손에 잡히는

서양사 이야기”, “문명의 충돌”등 수많은 저서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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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만 투르크족의 발흥


소아시아는 동양과 서양을 이어 주는 경계 지점인 데다 동지중해와 흑해를

끼고 있어서 민족의 이동이 잦았으며, 또한 경쟁하는 세력들 사이에 충돌이

끊이질 않았다. 11세기 이후만 하더라도 소아시아는 셀주크 투르크족,

십자군 운동으로 대변되는 유럽의 기독교 세력, 몽골족, 오스만 투르크족

등이 세력을 떨치고 서로 충돌하는 매우 혼란한 지역이었다.


성지 예루살렘을 점령해 기독교도를 박해하고 성지순례를 방해해 유럽

기독교 세계에 십자군 전쟁을 일으킬 빌미를 제공한 셀주크 투르크족은

십자군 전쟁 이후 쇠퇴했다. 하지만 십자군 원정은 그들을 멸망시킬

정도로 타격을 주지는 못했고, 오히려 셀주크 투르크를 몰락으로 이끈

것은 내분과 몽골족의 침입이었다.


셀주크 투르크족은 1239년에 대규모 반란을 겪은 후, 1242년에 아제르

바이잔에서 침공해온 몽골족과의 싸움에서 대패했다.(킈세다으전투)

1256년에 다시 몽골군에 진 셀주크 투르크족은 결국 몽골에 예속되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 13세기 말 무렵부터 소아시아와 그 주변 지역은 투르크족과 소

부족들의 할거지가 되었다. 오스만제국의 창시자로 인정받는 오스만가의

오스만(오트만) 1세가 지배한 오스만 투르크족도 그중 하나였다.

‘오스만’이란 이름은 오스만1세에서 유래했다. 이즈닉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북서 소아시아의 작은 도시 수구트가 당시 그들의 근거지였다.


◉ 오스만제국의 성장


현명한 지배자로 알려진 오스만 1세(재위 1299-1326)는 북서 소아시아의

비잔틴제국령을 침탈해 영역을 확대했다. 거기다 오스만은 융화 정책을

펴서 많은 비무슬림계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오스만 제국은 국력을 점차 신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중앙 집권국으로

변모해 갔다.


오스만제국이 성장하게 된 것은 비잔틴제국이 십자군의 침공을 받아 수도가

함락되는 등 힘이 약해진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나중에 발칸반도, 중동지역, 북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주로 ‘가자’와 ‘성전 의식’이었다.


'가자(ghaza)'는 소아시아에서 활동한 투르크족의 약탈 원정대를 가리키고

가지스(ghazis)는 그 원정대의 전사를 뜻하는 말이다.

오스만 투르크족이 대제국을 건설하고 보전할 수 있게 만든 또 하나의

자원은 성전의식이었다. 알라를 위한 것이라면 전쟁도 가리지 않았던

무슬림들에게 ‘알라를 위한 전쟁’은 곧 성전(jihad)이었다.


◉ 오스만제국의 비잔틴제국 정복


오스만제국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천여 년을 버티어 온 비잔틴

제국을 정복했다.

13세에 술탄이 되었지만 술수와 영도력을 겸비한 메흐메드 2세(재위

1444-1481)는 친위대 예니체리를 지휘해 반란 세력을 진압한 뒤 비잔틴

제국으로 눈을 돌렸다.

메흐메드는 1453년 4월 5일에 사절을 보내 항복을 요구했고, 거절되자

대포 공격을 포함한 전면 공격을 감행했다. 5월 29일에 드디어 비잔티움을

함락했다. 이때 콘스탄티노스 11게는 전사했고, 일부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들은 피살되거나 항복했다.


젊은 정복자 메흐메드 2세는 성소피아 성당에 들어와 알라에게 감사드린

뒤 성당의 제단을 파괴했다. 투르크군은 전통 관례대로 비잔티움을 3일간

약탈했다. 그리고 나서 메흐메드는 자신이 기독교 교회의 보호자임을 선언

하고 그리스인 대교구장을 임명했다. 비잔티움을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고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 이집트 정복과 유럽 진출


셀림 1세(재위 1512-1520)은 페르시아로 진격해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

또한 시리아와 이집트를 병합함으로써 이슬람 세계의 정치와 종교에서 최고

통치자인 칼리파가 되었다.

셀림 1세의 외아들 술래이만 1세(재위 1520-1566)은 유럽쪽의 영토를 확장

하는 데 집중했다. 1526년 헝가리를 공격했고 헝가리군을 완파했다.

이후 오스만제국은 도나우강 이남의 발칸반도 대부분을 지배했다.

발칸 반도의 기독교도들은 점차 투르크족과 공생하며 이슬람교도로 개종하기

도 했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땅 발칸반도에 이슬람교 사원과 무슬림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발칸반도가 1차 세계대전의 발원지가 된 것은 오스만 제국이 발칸반도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게르만계, 슬라브계, 투르크계 등의 복잡한

인종 구성과 가톨릭교, 프로테스탄트, 동방정교, 이슬람교 등 복잡한 종교

내지 종파 때문에 인종과 종파 사이에서 질시와 대립이 생겼기 때문이다.


◉ 술래이만 대제 이후 오스만제국


승승장구하던 오스만제국은 술래이만 1세를 이은 셀림 2세 치세 중에 심각

한 위기에 처했다. 유럽 기독교 세계의 신성동맹과 벌인 레판토해전에서

크게 패했기 때문이다.

1571년 5월 교황청, 베네치아, 스페인은 방어와 공격 동맹인 신성동맹을

결성했다. 그해 10월 7일 레판토에서 오스만제국과 신성동맹은 해전을 벌였

다. 이 전쟁은 지중해 역사상 가장 큰 해전이었으면 노 추진 함선이 동원된

최후이자 최대의 해전에서 기독교 세계에 크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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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현재 터키 지역에서 위세를 떨쳤던 오스만제국의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예로부터 터키지역을 소아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나 로마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동쪽인 이 지역이 아시아를 의미했기 때문이지요.


이 지역은 동방과 서방의 경계에 위치해서 많은 인종의 이동과 전쟁의 위험성이

늘 내포되어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이 오랫동안

버티고 있었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이 철옹성의 제국도 결국은 함락이 됩니다.


셀주크 투르크가 십자군의 원정과 몽골의 침략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권력의 중심인 오스만투르크족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발칸반도를 접수하고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까지 정복하면서 지중해의 패권자로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서유럽으로 진출을 시도하여 헝가리군을 궤멸시키고

오스트리아 의 빈을 공략합니다.

하지만 오랜 전투 끝에 보급 물량의 한계에 부딪치고, 날씨까지 추워져

슐레이만1세는 물러나지만, 합스부르크의 칼 5세는 오스만제국에 공납을

바치게 됩니다.


물론 세월이 흘러 레판토해전에서 신성동맹에 대패하여 위세가 예전같지

않았지만 터키공화국이 설립될 때까지 오스만제국은 1299년부터 1922년까지 오랜 시간동안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지금 발칸반도의 여러 분쟁의 씨앗이 오스만제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뿌려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터키공화국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은

역사에 있어서 다양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나라입니다.

요즘은 관광대국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고, 기독교의 초기

성지로서의 위상도 높습니다.


역사를 볼 땐, 몇 번의 이정표가 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오스만제국의 빈 공략이 무위로 돌아간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만일 이때 빈이 공략이 되어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무너졌다면 지금은 서유럽은 지금과 아주 다른 모습이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건강 조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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