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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2. 2016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시오노 나나미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시오노 나나미


오늘은 <로마인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1937~)는 도쿄에서 태어나 가쿠슈인 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혼자서 공부를 합니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현장에서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역작들을 만들어 냅니다. 뛰어난 필력과 소설적 상상력으로 로마의 이야기들을 생산한 그는 오늘 로마 멸망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로마 멸망 이후는 거대한 권력의 공백으로 엄청난 혼란의 세월을 겪습니다. 마치 우리 역사에서 왜구와 같은, 북아프리카의 사라센인들의 해적질과 침략으로 엄청난 고통의 역사를 겪게 됩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이슬람의 대두


서기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을 하였고 지배자가 된 북방 민족들로부터 다시 이탈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를 탈환한 사람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였다. 서기 565년에 그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이탈리아반도에는 랑고바르드족이 남하해 왔고 더 이상 동로마 제국은 이를 막을 여력이 없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죽은 지 5년 뒤 서기 570년에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났다. 그가 포교를 시작한 것은 613년이고, 죽은 것은 632년이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은 뒤, 후계자가 된 칼리프가 통솔하는 시대에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코란”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아라비아 반도를 완전히 제패하고, 팔레스타인, 시리아를 정복했으며 동쪽으로 메소포타미아 지방, 서쪽으로 소아시아 깊숙이 진격했고, 남쪽으로는 이집트를 이슬람화했다. 이후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까지 이슬람화한다.


역사 연구가들은 이야기한다. 이슬람이 이렇게 급속히 확대된 요인은 “신흥 종교가 항상 갖는 돌파력과 아랍 민족의 정복욕이 합쳐진 결과이다.” 하지만 이 무렵 지배자였던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힘이 약해져 있는 것이 큰 요인이었다. 기독교는 교리 논쟁으로 분열하여, 교회 내부에서 서로 반목하고 있었고,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무거운 세금으로 비잔티움 제국의 많은 기독교도들이 이슬람으로 전환하였다. 이슬람교도가 되기만 하면 이제까지 비잔티움 제국에 내던 무거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 사라센인의 등장


사라센인라는 말은 원래 아랍 민족 가운데 사막에 사는 베두인족을 지칭하는 이름이었지만, 이슬람교가 북아프리카를 지배한 후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이슬람교를 믿는 이슬람교도들을 통틀어 “사라센인”이라고 기독교 세계 주민들은 불렀다. 즉 아랍인만 칭하는 것이 아니라, 아랍인에게 정복되어 이슬람 교도가 된 베르베르인과 무어인까지 포함하여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인 8세기에 북아프리카를 완전 제압한 사라센인들의 눈앞에 펼쳐진 햇빛이 쏟아지는 눈부신 지중해는 그들에게 앞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길’이었다. 바다에 나가서 생활의 양식을 얻으려고 생각하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교역”이나 “해적”이다. 보존 방법이 건조나 소금절임밖에 없었던 시절 어업은 미약했다. 로마시대 곡창지대였기에 농업이 주가 되었지만 농업에 가장 중요한 평화와 안전보장이 이 시기에는 보장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손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해적질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새 종교는 이교도들을 해치는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 해적


이슬람 해적이 기독교 세계를 처음 습격한 것은 서기 652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출발한 이슬람 선박이 시칠리아섬의 가장 큰 도시인 시라쿠사를 습격하여 파괴하고 약탈하고 800명이나 되는 남녀를 납치하여 알렉산드리아의 노예시장에서 팔아버린 것이 그후 1천 년이 넘도록 지중해를 휩쓸고 다닌 사라센 해적의 시초였다고 한다.


북아프리카에 사는 이슬람교도, 즉 사라센인은 기독교권에 사는 사람들을 ‘루미’(rumi)라고 불렀는데, 이는 ‘로마인’이라는 뜻이다. 당시 로마인은 모두 기독교도였기 때문에, 이슬람교도에게 ‘루미’는 곧 기독교도이고 불신앙의 무리였다. 사라센 해적의 공격이 뜸할 때는 이슬람화를 한 아랍인과 그들에게 정복당하여 이슬람 교도가 된 북아프리카 원주민인 무어인이나 베르베르인의 사이가 험악해진 때였다. 그리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에스파냐를 정복하는 데 집중했던 시기에도 해적의 활동이 뜸하였다.


기독교권에서 납치되어 온 사람이 남자라면 다음과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1) 해적선을 비롯한 이슬람 선박에서 노를 젓는 노예

2) 성전이 진행되고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군대에 참가

3) 노예시장에서 팔려, 주인 밑에서 노예로 평생 보내기

4) ‘목욕장’이라고 불리는 강제 수용소에서 온종일 중노동하기

만일 납치된 자가 여자라면, 대부분 노예시장에서 팔렸다.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개종을 강요당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슬람교에서는 이교도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표적이 된 수도원


중세의 수도원은 그 지방의 주교와 영주도 손을 댈 수 없는, 오직 로마 교황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사실상 독립한 종교 조직이었다. 수도원은 도시의 성벽 밖에 세워지는 것이 보통이었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기부한 재산이나 토지로 넓은 경작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종교 조직이라는 이유로 세금도 면제되어 있었다. 종교 조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가 흘러들어가는 곳이다. 사라센해적인 가장 효율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들 수도원이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건은 서기 882년 가을 ‘볼투르노의 성 빈센초 수도원’을 습격한 것인데 이전에 다른 수도원에서는 여러 번 돈과 물건을 주고 약탈과 파괴를 면하였지만 이 수도원은 해적의 요구를 무시했다. 그들은 젊고 건장한 수도사들이 천 명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사라센 해적의 끈질긴 공격으로 결국 함락이 되었는데, 수도사의 절반은 전사했고, 나머지도 모두 해적앞에 끌려나와, 한 사람씩 손과 발을 묶고, 물살이 빠른 볼투르노 강으로 던져졌다. 그리고 수도원은 철저히 파괴하고 불태웠다.



◉ 지중해의 안정


오늘날에는 지중해에 해적이 출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지중해에서 해적이 사라졌는가. 서기 1830년에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은 뒤부터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이 북아프리카 일대를 식민지로 삼은 뒤에야 비로소 지중해는 해적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오늘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에 대한 책을 한번 보았습니다.  로마가 동서로 나뉘고, 서로마는 일찌감치 역사의 장에서 내려옵니다.  동로마 즉, 비잔틴제국은 서로마보다 무려 1000년 이상 지속하다가 오스만제국에 의해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 책은 서로마가 멸망 후, 이탈리아 반도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이 힘의 공백에 의해 엄청난 혼란의 세월을 보낸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고 결국 이베리아 반도, 즉 에스파니아까지 이슬람화된 후 북아프리카 원주민인 무어인과 베르베르인은 마치 동아시아의 왜구처럼 지중해를 해적의 세계로 만들어 버립니다.


시칠리아 섬을 점령하고, 이탈리아 반도 곳곳에 침략을 했으며, 프랑스 남부도 안전하질 못했습니다.  로마교황은 같은 기독교 국가인 프랑크왕국과 비잔틴제국에 도움의 요청을 했지만 내부의 안정에 급급했던 그들은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않습니다. 지중해 지역이 해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된 시기는 무려 1000년도 훌쩍 지난 1800년대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이후라고 합니다.


역사는 돌고 돕니다. 한니발의 카르타고가 로마에 철저하게 멸망당한 후 그의 후손들은 이슬람화하여 1000년 이상 이탈리아를 괴롭힙니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다시 삼은 후, 안정이 된 듯 보였던 지중해 세계는 며칠 전 프랑스 니스에서 북아프리카 튀니지 출신의 이슬람교도에 의해 엄청난 테러를 당한 것처럼 다시 이슬람 세력에 의한 불안정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된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는 여전히 반목하고 대립하며 역사의 중요한 이슈와 동력을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이제는 마음 놓고 다닐 안전한 곳이 사라진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역사의 이러한 고리는 언제쯤, 누구에 의해 풀려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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