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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3. 2016

<독일사 산책> 닐 맥그리거

구텐베르크와 인쇄혁명


오늘은 독일의 역사에 관한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영국 박물관장인 닐 맥그리거는 BBC와 함께 공동 기획을 한 역사 프로젝트 <독일사 산책>을 엮어 냅니다.


지금은 세계 최부국 중 하나이지만, 독일은 프랑스나 스페인, 영국처럼 1871년 통일되기 전에는 수백 개의 작은 나라들이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느슨한 연합체로 같은 민족이라는 소속감이 적었던 그들은 통일 이후 세계대전을 2번이나 일으킬 만큼 유럽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저자는 그들의 업적과 상처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여 현대 독일을 이해할 수 있는 접근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오늘은 구텐베르크와 인쇄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인쇄 혁명


천년 동안 인류는 책을 만들려면 먼저 동물부터 죽여 양피지를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 양피지에 긴 시간 고되게 필사해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이 모든 작업을 독일이 변화시켰다. 550년 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1468)가 새로운 가동 활자와 평압 인쇄기를 발명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책이 탄생했다.


유럽에서 소수의 사람만이 지식을 습득하던 특권이 사라지고, 여러모로 근대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구텐베르크의 발명은 60년 후에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정치를 바꾸었다. 디지털 혁명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금도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는 주요 수단은 인쇄술이다. 정보통신이 진보한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구텐베르크의 후손이다.


독일에서 전 세계에 영향을 준 가장 위대한 제품은 누가 뭐래도 근대 평압 인쇄기이다. 구텐베르크 이전에도 유럽에 인쇄술은 있었지만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주로 목판을 새겨 한 장씩 인쇄했다. 목판을 양피지나 종이에 엎어 놓고 망치로 쳐서 인쇄했다. 인쇄품질도 아주 조악했다. 최고의 문제는 글자를 목판에 조각하는 것이었는데, 한 글자라도 실수하면 다른 목판에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해야 했다.


금속활자를 사용하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매 쪽마다 필요한 금속활자를 만드는 일은 정말 어려운 작업 공정이었지만 하나하나 떼어 옮길 수 있는 가동 활자를 만들어내자 오류가 발견되어도 올바른 철자로 하나만 바꾸어 끼우면 해결이 되었다. 포도주 주산지인 마인츠에 있었던 그는 포도주 압착기를 응용하여 각각의 글자가 동일한 압력으로 인쇄될 수 있게 하여 글자가 아주 선명하였다. 또한 이전에 사용하던 수성 잉크를 개량하여, 화가에게 도료 제조법을 배우는 등 노력 끝에 번지지 않는 적당한 도료를 발명을 한다.


구텐베르크와 기술자들이 성경 한 권을 인쇄하는 데 필요한 활자를 만들기까지 거의 2년이 소요되었는데, 일단 가동 활자가 만들어지자, 성경 한 권을 필사할 시간에 성경 180권을 인쇄할 수 있었다. 잘나가던 구텐베르크의 사업은 1460년 마인츠의 사회적 갈등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인쇄술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구텐베르크의 기술자들이 마인츠를 떠나 쾰른과 이탈리아에 기술을 전파한 것이다. 일례로 윌리엄 캑스턴은 쾰른에서 이 기술을 배운 뒤 1470년 무렵 잉글랜드로 돌아가 잉글랜드 최초의 인쇄소를 차렸다.



◉ 사업가 구텐베르크


구텐베르크는 부유한 편이었으나 재료를 구입하고 기술자에게 급여를 주기 위해 운영자금이 필요했다. 그는 마인츠에서 대출도 받고 동업자도 구했지만 늘 풍족하지는 않았다. 성경을 제작하던 구텐베르크는 현금이 필요했다. 가톨릭 교회는 면죄부를 발행하였는데, 구텐베르크는 면죄부를 인쇄하여 자금을 동원한다. 교회는 사람들을 고용해 면죄부를 필사할 필요가 없이 구텐베르크에게 수천 장의 면죄부를 인쇄해 달라고 하게 된다. 또한 교회 부속 학교에서 라틴어 교육에 집중하면서 당시 알프스 이북에서 가장 유명한 교재였던 도나투스의 “라틴어 문법”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 구텐베르크에게 황금알을 안겨 주었다.



◉ 인쇄 혁명이 독일에서 일어난 이유


독일의 마인츠는 인쇄기를 개발하기에 완벽한 환경이었고, 인쇄된 책이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마인츠의 대주교는 황제 바로 다음의 권력이 있었고, 마인 강과 라인 강의 합류 지점 근처에 자리 잡은 마인츠는 지리적으로 독일의 중심이었다. 독자적인 벌률 체계를 갖춘 부유한 도시들이 모여 클러스터를 이루고 매년 국제박람회가 열리는 이 지역은 한마디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고객이 모여 있는 준비된 인쇄 출판 시장이었다. 숙련된 기술자들이 경제 네트워크의 중심지들을 자유롭게 오갔다. 이러한 경제 네트워크는 오직 독일어권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이었고, 라인과 마인, 모젤, 넥타르 등 독일의 큰 강들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는 유통망을 제공했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을 통제할 중앙 정치권력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신성 로마제국의 정치적 분권은 놀라운 수준의 자유를 보장했다. 60년이 지나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반박문을 발표할 때, 프랑스나 잉글랜드 같은 중앙집권국과 달리 독일에는 반박문을 인쇄할 인쇄기는 물론 끊임없이 인쇄기를 돌릴 인쇄공들이 충분했다.




오늘은 “독일사 산책” 중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독일의 역사는 사실 1871년 통일 이전에는 소국들의 연합으로 별로 내세울만한 역사가 별로 없습니다. 독일은 통일 이후 진정한 강국으로 유럽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 갔지요. 유럽연합의 탄생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현대에도 그리스의 국가 부도사태와 시리아 난민 수용 등에서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켈트족이 주로 살던 현재의 프랑스땅의 갈리아 정벌 이후 게르만족의 땅은 춥기도 하고, 사나운 게르만족이 살기에 진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훈족의 침략으로 남하하기 시작한 그들은 로마의 용병으로 고용되기도 하고 로마의 변방을 침입하다가 결국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킵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도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루터보다 100년 먼저 종교개혁을 시도했던 체코의 “얀 후스(1372-1415)”는 실패하여 파문당하고 화형을 당하였지만, 루터의 성공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힘입은 바 큽니다.


성경내용의 독점, 지식의 독점 등으로 특권을 유지했던 기존 성직자들, 하지만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일반 대중까지도 성경을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읽게 되었고 루터의 주장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갑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던 “면죄부 발행”은 또한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널리 보급하게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수천 장의 면죄부를 구텐베르크는 인쇄하여 줌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벗어나 더욱 인쇄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독일에서 시작된 인쇄술은 결국 인문학의 보급을 일으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도록 하였습니다. 과거의 인문고전들이 번역 인쇄되어 대중화되면서 의식의 성장으로 근대 시민혁명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구요.


오늘은 독일의 역사 중,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급격히 바꾸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위주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독일사 중 다른 주제를 가지고 한 번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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