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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5. 2016

<지도로 먹는 세계사 이야기>中 1.

독일을 “Germany”라고 부르는 이유는

<지도로 먹는 세계사 이야기>中 ➊ 후쿠다 토모히로

                                강 일 송

오늘은 세계사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사건이나 인물위주의 역사서술
에 우리는 익숙합니다만, 오늘은 지리, 지명, 지도의 수수께끼로 세계사를 파헤쳐
보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저자는 도쿄도립대학교에서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 고전
문학과 관련된 집필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세계사의 다양한 상식을 흥미롭게 전개해 풀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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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을 “Germany”라고 부르는 이유는

독일인들은 자기 나라를 ‘도이칠란트(Deutschland)’라고 부른다.
영어의 Germany는 ‘게르만인(Germans)’에서 유래한 단어로, 원래는 ‘이방인’
‘전사’라는 의미를 가진다. 600년 전의 역사가 현재의 이러한 부분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인상적인 나라 이름이다.

⁕ 유럽으로 이주한 ‘숲의 백성’
알프스 대능선을 넘어 동서로 뻗어가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유럽의 풍경은
‘숲’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숲의 은혜를 입으며 숲에서 살고, 숲을 두려워
하며 살아왔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잠자는 숲의 공주>, <빨간 망토> 등 숲을
무대로 하는 유럽 동화들이 많다. ‘아돌프’ ‘루돌프’ 등 늑대에서 유래한 이름
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산림지대의 서쪽, 지금의 프랑스 주변에는 켈트인들이 살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갈리아’라고 불렀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갈리아인’이라고
했다. 켈트인들은 카이사르의 원정으로 인해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산림의 동쪽에서는 발트 해 연안을 근거지로 하는 게르만인들이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로마 제국과 인접하여 때때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고, 용병
이나 소작인이 되어 로마 제국으로 이주하는 게르만인들도 있었다.

⁕ 게르만인의 대이동과 유럽
유럽의 산림지대는 일정하지 않았다. 동쪽과 북쪽으로 갈수록 대기는 건조했고
기후는 냉랭했다. 따라서 유럽 민족의 이동은 대체로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진행되었다.
4세기 후반, 흑해의 북쪽 연안에서 훈족이라 불리는 아시아계 기마 유목민들이
침입해 왔다. 중국 북방을 위협하던 흉노족의 일부라는 견해가 많다.
훈족의 압박을 받은 동고트족, 서고트족, 프랑크족, 앵글로 색슨족 등
게르만 유목민족들은 서남쪽으로 이동하여 로마 제국내로 이주한다.
게르만인들의 대이동은 약 200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세력이 약해져 가던 로마제국은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큰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용병대장으로 로마 제국 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게르만인
‘오도아케르’는 로마황제를 추방하고 서로마제국을 멸망시켰다.
게르만인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약 100년 후인 476년에 일어난 일이다.
유럽은 게르만인들에 의해 변화가 나타났고, 그들은 각지에 왕국을 건설해갔다.


◉ 독일 주변에 ‘~부르크’라는 지명이 많은 이유는?

⁕ 작은 성으로 이루어진 독일
지도를 보다 보면 독일 주변에 ‘~부르크’라는 지명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함부르크, 브란덴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룩셈부르크, 마그데부르크 등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다. 왜 이렇게 많은 ‘~부르크’가 존재하는 것일까?
‘부르크’에는 ‘성채(城砦)도시’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마을’과 비슷한 뜻이다. 과거에는 성에 영주가 살면서
주변 지역을 다스렸다. 제후의 성곽과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한 성채 도시의
자취가 ‘~부르크’라는 지명이 된 것이다.
역으로 이러한 지명과 성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독일에 많은 영주가 존재했다는
증거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나타나는데, 프랑스의 ‘~부르’, 영국의 ‘~바라,
~베리‘, 러시아의 ’~그라드‘ 도 부르크와 비슷한 지명 접미사이다.

⁕ 프랑크왕국의 분열
로마제국 분열 이후 프랑크왕국은 서유럽에서 강한 세력을 드러내었다.
특히 카롤루스 대제가 영토를 넓히고 로마 교황으로부터 제관을 받은 후에는
마치 서로마 제국이 부활한 듯했다. 그러나 영광은 길게 지속되지 못했다.
그의 아들 루트비히 1세에 이르러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 격렬한 대립이 생깁
니다. 그가 사망하자 서프랑크, 동프랑크, 중프랑크로 나뉘고, 이후 현재의
국경에 가까운 서프랑크왕국(프랑스), 이탈리아, 동프랑크왕국(독일) 3개국으로
분리된 것이다.


◉ 중동, 근동, 극동의 기준이 되는 곳은?

⁕ 세계를 석권한 서구 세계
‘중동,근동,극동’은 어느 곳을 기준으로 가깝거나 먼 곳을 나타내는 것일까?
정답은 유럽 중에서도 영국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유럽, 특히 영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런 이유로 세계 공동 시각이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삼은 것처럼 지명과 지역의
기준이 영국이 된 경우가 많다.
‘근동’은 유럽에 가까운 터키와 이집트 등의 지역을, ‘중동’은 그보다 조금 먼
아라비아반도와 이란을 가리킨다. ‘극동’은 한반도와 일본, 중국 동부를 가리킨다.
참고로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특별히 가리키는 용어는 없다.

⁕ 먼저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
18세기 중반이후 영국에서 최초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왜 영국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났을까? 영국은 이미 18세기 초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날 자질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프렌치,인디언 전쟁 등에서 승리하여 해외에 많은 시장을 확보하였다.
즉 수공업 제품의 판로를 가지게 된 것이다. 또한 식량 부족에 대비하기 위하여
정부의 장려로 대지주가 대규모의 농지를 확보하는 ‘인클로저enclosure’가 활발
하였다.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노동자로 전락하여 농장과 공장에서 노동력을
팔아야 했다.
그 외에도 영국의 모직물 사업에서 자본가가 공장을 설립하고 노동자를 모아
분업에 의해 생산하는 ‘공장제 수공업’이 빠르게 정착했다.
즉, 영국에는 산업혁명의 기본 자질인 공장과 직조기술, 노동자, 생산품의 판로가
이미 갖춰져 있었다.
제임스 와트가 효율적인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특허를 받았다.
사람과 동물의 힘, 수력 외에 화석 연료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증기 기관은
증기 기관차와 증기선에도 이용되면서 세계가 급격히 좁아지는 교통 혁명을
경험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은 1830년대에 다른 국가와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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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도를 바탕으로 세계사의 이야기를 연결연결하여 이야기를 하는 책을
보았습니다.
먼저 독일을 Germany라고 부르는 유래를 보았습니다. ‘이방인, 전사’의 의미가
있었네요. 유럽에서 유난히 숲에 대한 동화나 전설이 많은 이유도 이들에게는
숲이 삶의 터전이요, 성스러움의 장소이고 두려움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흉노족의 후예라 알려진 ‘훈족’의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이들이 두려워 그렇게
사나웠던 게르만족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남서진합니다.
이들에 의해 서로마는 무너지고 맙니다. 유럽의 역사가 바뀌게 된 것이지요.
훈족이 두려워 바다로 밀려난 이들이 “베네치아”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독특한
해상국가도 만들게 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부르크’라는 도시의 유래입니다. 독일은 부르크가 붙은
도시가 참 많습니다. ‘성(城)’을 의미하기에 독일은 오랫동안 통일된 국가보다
독립된 작은 영주들의 소규모 국가였다는 것이 이름에서도 드러납니다.
나뉘어져 있었던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독일도 통일은 아주 뒤늦게 이루어
지고 그래서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발전이 더디었지요.
이들의 선조인 프랑크왕국이 분리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나아간 이야기
도 잠깐 나왔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가 흔히 책이나 기사, 방송에서 접하는, 근동,
중동, 극동의 이야기입니다. 모두 우리가 역사의 중심이 되지 못하였기에
강자를 중심으로 규정지어진 용어들입니다. 미국에서 보는 세계지도는 우리가
흔히 놓고 보는 세계지도와 다릅니다. 정말 우리는 동쪽 끝에 존재하고 있지요.
지금도 ‘극동건설’, ‘극동방송’ 등 극동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이고 있는 것을
보고, 중동건설, 중동이민, 중동사태 등등 중동이라는 말은 이슬람세계의 혼란
과 더불어 방송기사에서 무수히 접하게 됩니다.

산업혁명으로 가장 먼저 앞서간 영국이 전 세계에 해가지지 않을 정도의
식민지를 건설하고 세계 제국으로 자리매김했기에 세계의 기준이 되었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나봅니다. 요즈음 가장 지구상에 핫한
뉴스거리가 영국의 브렉시트니깐요. 국민투표 후의 후폭풍으로 영국을 온통
혼란과 분열, 패닉에 빠져있습니다.

다음에 다른 주제로 세계사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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