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연> 배철현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by 해헌 서재


오늘은 삶을 관조하고 깊은 사색이 담긴 인문학자의 성찰 에세이를 한 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배철현(1962~)교수는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 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등이 있습니다.


그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을 빌려 “매일 아침, 기꺼이 인생의 초보자가 되십시오.” 라고 이야기합니다. 자기의 마음속 깊은 곳을 성찰하기 위해 기꺼이 혼자만의 고독의 시간으로 걸어 들어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의 상태다. 흔들림 없는 고요한 마음, 그것이 곧 행복이다. 그러니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환경이 나의 행복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이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수련’이 따라야 한다. 이 때 필요한 도구가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는 ‘생각’이다. 육체의 훈련과 마찬가지로 정신도 꾸준히 훈련하다 보면 점점 더 높은 단계에 이를 수 있고, 얼마든지 자신만의 고유한 임무를 찾을 수 있다.


삶은 자신만의 임무를 발견하고 실천해나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 여정에는 늘 예상치 않은 ‘괴물’이 등장한다. 이 괴물을 극복할 수 있는 생각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열정’이다. 열정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이다. 열정은 결코 타인을 향한 부러움이나 흉내 내기가 아니다. 열정은 자신의 약점과 열등감을 낱낱이 들여다 보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열정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알게 모르게 자신을 얽매고 있는 수많은 구태의연 함과 과거로부터의 과감하게 결별하는 용기다. 이 열정은 내면 가장 깊숙한 곳, ‘심연’으로 가는 지표다.


나 역시 나를 둘러싼 환경에 휘둘려 소용돌이 속 지푸라기처럼 정신없이 흩날리던 때가 있었다. 당시 나는 권태에 익숙해져 있던 나 자신과 결별하기 위해 나만의 열정을 찾기로 했다. 그러고는 ‘달리기’와 ‘묵상’이라는 두 가지 수련 도구를 찾아 냈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면서 육체의 한계를 확장하고, 묵상을 통해 정신의 한계를 고양시켰다.이 수련의 시간은 나에게 특별했다.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생경한 시간이었다.

그러는 때, 한 신문사로부터 ‘자기 수련’에 관한 글을 연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이 ‘글쓰기’를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한 거룩한 여정으로 삼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여정은 나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배철현의 심연’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글쓰기를 통해 마음 깊은 곳으로 향하는 정신적 여행을 떠났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나를 향한 최선의 바람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자 하는 일종의 의례다. 나는 이 책이 자신만의 열정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거룩한 여행을 떠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작은 별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 고독 , 혼자만의 시간 갖기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 탈레스


눈을 뜨면 갓 뽑은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현생 인류가 태어난 장소가 케냐와 에티오피아라는데, 매일 아침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나를 잠에서 깨우는 것도 에티오피아산 커피다. 인간이 출현한 순간의 비밀이 이 커피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따뜻하던 커피는 이내 식어버린다. 나도 언젠가는 이처럼 식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안개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 지구도 50억 년이 지나면 자전할 힘을 잃고 멈출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우주의 원칙이 있다. 원칙이라기 보라든 차라리 괴물에 가깝다.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만물을 삼켜버리는 괴물.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괴물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과 세월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은 그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가버린 뒤, 결코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그 흐름의 시작과 끝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쏜살같이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시간,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 무방비 상태로 미래에 진입한다. 그 결과 우리에게 남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상뿐이며,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도 바로 시간의 흔적이다. 과거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20년 전이든, 20분 전이든 모두가 순간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씨줄과 공간이라는 날줄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시간과 공간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둘의 공통분모인 사이, 즉 ‘간(間)’을 포착해야 한다. 이것은 ‘순간(瞬間)’이라고 한다.


순간이란 봄의 약동으로 싹이 트고 꽃망울이 터지는 그 찰나의 시간이다. 봄이 약동하면 잎과 꽃망울은 모든 찰나에 과격하면서도 거칠게 제 모습을 바꾼다. 이렇듯 봄은 생명의 시작이자 찰나의 운동이다. 고성능의 현미경으로 나무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나무 속 섬유질이 매순간 빅뱅처럼 팽창하고 수축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인식하는 순간을 영어로 ‘모멘트(moment)’라고 한다. 모멘트는 정지의 시간이 아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이다. ‘모멘트’는 라틴어 ‘모멘텀(momentum)’에서 유래했다. 모멘텀은 ‘움직임/움직이는 힘/변화’ 또는 ‘순간’이라는 의미다.

생명의 움직임을 이루는 한 동작 한 동작은 거의 눈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부지불식간에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눈 깜짝할 사이’는 시간적인 경험이자 찰나의 시간을 이르는 표현이다. 눈을 떴다 감는 그 사이, 우리는 본다는 행위를 통해 순간적으로 사물을 인식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을 그리스어로 ‘크로노스(chronos)’라고 한다. 반대로 영원한 질적인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다. 카이로스는 신이 개입하는 질적인 시간,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시간이다.


플라톤은 과거와 단절해 새로운 시작을 여는 동력을 고대 그리스어로 ‘엑사이프네스(exaiphnes)‘라고 했다. 엑사이프네스는 ’갑자기/한순간에‘로 변역된다. 이런 자기변화는 모멘텀, 바로 이 순간을 포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혹시라도 지금 귀하고 소중한 순간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면, 고통이 따르더라도 이 순간에 집중해 자신만의 빛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 결정적인 순간이 삶을 좀 더 진실에 가깝게 해 줄 것이다.




오늘은 우리 시대 내공있는 인문학자이자 철학자인 배철현 교수의 글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는 진지합니다. 성실합니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글을 접하다 보면 그가 느껴집니다.


그는 새벽에 자신을 만나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고독의 ‘심연’에 떨어뜨려, 그 곳에서 맨 얼굴의 자신과 조우하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인생 뭐 있어’ 이런 태도로 살지만 그는 깊은 사색을 통해 단 한번이라도 자기를 찾아 보는 여행을 떠나라고 합니다.


배교수의 행복에 대한 정의도 조금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이란 잘먹고 잘살고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쾌락’이 포함되기 마련입니다만, 그는 ‘흔들림 없는 고요함’이 행복이라고 합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시간의 흐름으로 변화하는 것이 기본 속성입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는 세상에서 , 흔들림 없는 고요한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련’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육체의 근력을 키우듯, 마음의 근력도 훈련하고 수련하면 키워진다고 합니다.


인류가 출발했다고 하는 ‘에티오피아’산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깨우는 그는 ‘순간’과 ‘찰나’의 시간에 주목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가졌다고 하는 괴물같은 ‘시간’을 잘 인식하고 다룸이 인생에서 중요하겠지요. 시간을 구분할 때, 흔히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냥 흘러가버리는 양적인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하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질적인 시간, 신이 개입하는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살다보면 ‘크로노스’적인 시간에만 몸을 맡기게 됩니다.

진정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면 운명적인 ‘카이로스’를 만나야 합니다. 이때는 진정 혼자가 되어야 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마음 깊은 심연을 찾아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과거의 나와 결별할 각오와 새로운 나를 맞이할 설렘을 가지고 기꺼이 그 시간 속에 나를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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