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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Feb 16. 2017

<역사의 시대 구분과 동서양의 차이>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 中 <1>

<역사의 시대 구분과 동서양의 차이> 우야마 다쿠에이
-- “너무 재밌어서 잠 못드는 세계사” 中 <1>

                              강 일 송

오늘은 세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보려고 합니다.
어렵고 딱딱한 각종 연표와 용어를 배제하고 알기 쉽게 핵심을 저술한
책입니다.

저자인 우야마 다쿠에이(1973~)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게이오기주쿠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3대 입시학원으로 꼽히는 요요기 세미나에서
세계사를 가르치고 있다 합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듣고
매력에 흠뻑 빠져 그를 최고의 강사로 꼽습니다.

그중 오늘은 총론에 가까운 내용으로 역사를 5시기로 나눈 구분과 함께
동양과 서양의 역사 차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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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시대 변화

역사를 다섯 시대로 구분을 해보면,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서양사에서 다섯 시대는 지배 계급의 변동을 기준으로
나눕니다.

“고대”는 그리스, 로마 시대입니다. 서로마 제국이 476년에 멸망한 것을
계기로 중세 시대로 옮겨갑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보급되고, 종교지도자인 교황이 강한 권력을
갖게 됩니다. 교황은 종교계뿐 아니라 속계에도 강한 영향력이 생기면서
국왕, 황제와 대립하게 됩니다.
거기에 지방의 호족 세력, 귀족 등 제후로 불리는 세력도 얽혀 있습니다.
‘교황’, ‘국왕,황제’, ‘제후’라는 세 부류의 세력이 대립하면서 복잡한
항쟁이 전개되는 혼돈의 기간이 1천 년이나 지속됩니다.
이 시기를 중세라고 부릅니다. 중세는 일반적으로 암흑 시대라는 이미지
가 있습니다.

세 부류의 세력 중 근세로 발돋움한 것이 국왕입니다. 국왕은 절대주의
라는 거대한 관료, 군사기구를 토대로 중앙집권제를 구축했습니다.
“짐은 국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루이 14세는 이 시대 국왕이었지요.
강력한 왕권을 무기로 국가, 국민을 통치했습니다.
국왕의 거대 관료기구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준 세력이 새롭게 등장한
신흥시민 즉, 부르주아(부르주아지)입니다. 부르주아는 근대 화폐경제
의 발전, 시장 확대와 더불어 출현한 비즈니스맨입니다.
비즈니스맨 중에는 부를 축적한 사장도 있거니와 평사원도 있습니다.
어쨌든 부르주아는 비즈니스맨이었고, 지금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공업
에 종사하는 시민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함으로써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중세는 칼을 휘두르는 기사(騎士)를 통솔하는 제후 세력이 여기저기
자신의 영지를 구축하면서 당연히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시대에 새롭게 대두한 비즈니스맨이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문화적인
사회도 형성되었습니다.

신흥세력인 부르주아는 절대주의 왕정을 지원하고, 국내 시장을 통일하
려고 애썼습니다. 또한 법체계를 정비하고, 상거래 규칙을 정하는
한편, 화폐, 금융 정책을 안정시키고 행정기능에 대해 관료에 대해
요구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 시장이 형성되었고, 부르주아는 자본가 계
급으로 사회를 이끌어갑니다. 부르주아는 거액의 세금 부담을 적극적
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강력한 발언권을 얻어냅니다.
국왕의 권력은 재정 부담자인 부르주아 세력에 의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국왕의 권력과 부르주아 세력은 나란히 어깨를 하며 사이좋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근세의 커다란 특징인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이
눈부셨지요.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이 부르주아를 시민계급으로 확장시켰
습니다. 그러자 시장의 이권 관계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시민혁명이 촉발되었습니다.
이미 절대주의 체제는 연이은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극도의 재정난을
불러일으키면서 궁지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절대주의 체제하에서 식민지 경영이나 무역에 손을 뻗어 이익을 취한
그룹은 일부 특권 상인이나 귀족뿐이었습니다.
특권 세력이 왕권과 유착하여 각종 이권을 독점했지요.

유착 구조를 타파하고 시민에게도 활짝 열린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
해야 한다며 부르주아 시민 세력은 왕권을 타도하자는 시민혁명을
유럽 각지에서 주도했습니다. 그 결과 부르주아 세력 단독의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이처럼 새롭게 열린 시대를 근대라고 부릅니다.

근대와 현대의 구별은 여러 관점이 있습니다. 본서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18년을 분기점으로 이전을 근대, 그 이후를 현대라고
하겠습니다.

★ 중국 왕조의 흥망

중국의 왕조는 흥망성쇠가 빈번했습니다. 수십 년도 안 돼 망하는
왕조도 있었고, 수백 년을 버틴 왕조도 있었습니다. 여하튼 다른 나라에
비하면 중국의 왕조는 자주 바뀌었습니다.

중국 영토는 광활하기에 그것을 하나로 묶어서 통치하기에는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지닌 황제라도 힘들었습니다. 지방 어디선가 중앙 정권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세력이 반드시 있었지요. 처음에는 지방의 반란이
싹틀 시기라서 알아채지 못하다가 어느새 불쑥 성장하면서 큰 세력을
이루게 되면 이미 손쓰기가 늦은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지방 세력이 힘을 키워 중앙정권에 반기를 들고, 그 결과 왕조가 붕괴
되는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러한 반란과 혼란의 틈을 타서 북방 이민족이 중국을 침략하고, 혼란에
박차를 가하면서 왕조 붕괴를 촉진하는 현상도 있었습니다.
혼란이 혼란을 불러들이는 현상은 대륙이라는 광활한 땅에 위치하면서
여러 민족에 둘러싸인 중국만의 현저한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왕조의 초창기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정권이 통치하면서 식량 공급을
향상시켜 민심이 안정되고 인구도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인구
를 끌어안은 왕조가 기후 변동 따위로 흉년이라도 오면 안정된 민심이
무너집니다. 식량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고 인플레가 생기면서 경제가
파탄이 나지요. 민심, 경제가 피폐한 상황에서는 반란이 생기고 그
결과 왕조의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왕조의 흥망은 인구와 식량 공급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구의 증가는 경제와 국가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반면, 그 늘어난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이 모자라기 시작하면, 곧잘
사회 불안을 야기해 왕조는 구심력을 잃고 붕괴됩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식량이 너무 남아돌아도 왕조는 구심력을 잃습
니다. 식량의 과잉은 지방호족, 호농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면서
힘을 축적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강력해진 호족, 호농은 반드시 중앙정권에 반기를 듭니다.
식량이 모자라도, 남아돌아도 중앙정권은 위태로워집니다.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을 늘 안고 있는 거대한
중국 왕조는 국가 경영에 부단히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 한계는
늦든 빠르든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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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사책을 한번 보았습니다.
저자는 특이하게 일본 최고의 학원 강사입니다.  최고의 유명 강사
답게 그는 연표나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이야기식으로 전체의 역사흐름
을 파악할 수 있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역사의 시대구분을 하고 있는데, 시대 구분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자는 역사의 구분을 지배계급의 변천, 그리고 경제 주체의 변천
을 가지고 나누고 있네요.
역사 이전 선사시대를 지나, 그리스 로마 시대를 지나고 중세로 접어듭
니다. 이때는 교황의 권위가 왕이나 황제를 압도하지요. 이후 두 세력은
경쟁하다가 근세에 와서 루이 14세를 정점으로 국왕에게로 모든 권력은
집중이 됩니다.
다음에는 부르주아가 등장하고 그들은 자본주의를 태동시키고
시민혁명도 관여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중국의 역사의 변천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왕조의 변화가 심했는데, 이는 지리적인 영향이 커서
광활한 대륙이다보니 지방의 호족이나 세력들이 끊임없이 정권을 바꾸
었습니다.  북방의 유목민들은 항상 큰 위협이 되었기에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별무소용이었지요.  결국 북방민족에 의한 정권도 여러 번
등장을 하였고 특히 청나라에 이르러 가장 광활한 중국 영토와 문화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다른 역사책과는 달리 저자는 왕조의 변화를 "인구" 와 "식량공급"의
측면에서 재미있게 설명을 하네요.
인구가 증가하면 경제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반면 식량 공급이
많이 필요하고, 식량 공급이 부족하면 민심이 나빠지면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식량이 남아돌아도 지방호족
들의 힘이 커져 사병을 키우고 중앙정부에 반드시 반기를 든다고
하네요.

이에 반해 우리 한반도의 역사에서는 왕조가 중국이나 유럽에 비해
훨씬 긴 편에 속합니다. 조선왕조 500년, 신라는 통일신라까지 한다
면 1000년에 이릅니다. 고려도 오래 지속이 되었지요.
아무래도 지형, 지리적인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반도는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기가 쉬운 좁은 영역이기에 지방의 호족들이
힘을 키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음 편에는 오리엔트와 알렉산드로스대왕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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