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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무엇인가>

한병철

by 해헌 서재

<권력이란 무엇인가> 한병철

강 일 송

오늘은 재독 한인 철학자 한병철교수의 책 한 권을 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그의 저서 중, “시간의 향기”, “피로사회”, “아름다움의 구원”
등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자인 한병철교수는 특이한 이력의 학자입니다. 한국에서 고려대학교
금속공학과를 나온 뒤 독일로 유학하여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
등을 공부하였고,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지금은 카를스루 조형예술
대학에서 철학과 미디어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합니다.

오늘은 권력에 대한 그의 철학적 고찰을 들어 보려고 합니다.
권력은 언제나 인간의 삶에 존재하지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권력의 냉철한 속성을 잘 말해주고 있었고, 그 외에는 수많은 사람들
이 권력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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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인과적 관계로 이해되고 있다.
에고(Ego)가 권력에 근거하여, 타자(Alter)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특정 행동을 하도록 영향을 미친다.
권력은 에고에게 타자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결정을 관철하는 능력을
준다. 따라서 에고의 권력은 타자의 자유를 제한하며, 타자는 자신
에게 낯선 에고의 의지를 참고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이런 이해는 권력이 갖는 복잡성을 다 설명해 주지
못한다. 권력은 반드시 강제라는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권력자에 대한 대립적인 의지가 생겨나 그에 맞서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그 권력이 약해졌다는 증거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권력은 이미 약화된 권력이다.

권력은 “의지의 중성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권력에 복종하는
자는 권력자의 의지에 자신을 내맡기기 때문에 스스로 의지를 형성
하는 일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의 중성화”를 넘어서는 권력 형태들도 있다.

권력에 복종하는 자가 스스로 권력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려고 하고,
권력자의 의지를 마치 자신의 의지처럼, 심지어 미리 알아서
따르려고 하는 것. 이것은 더욱 강력한 권력의 지표다.
이때 권력에 복종하는 자는 권력자의 의지 내용을 안 그래도 자기
가 하려던 것이라고 내세우고, 권력자에게 공감하는 “네”를 통해
그것을 수행한다.
이때 권력은 자신이 하려는 것으로 긍정되거나 내면화되는 것이다.
“내가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내가 할 것이다”라는 말에 더 강한
권력이 작용하고 있다.

매개 수준이 높은 권력은 타자가 하려는 행동에 맞서는 권력이
아니라 그 타자로부터 솟아나 작용하는 권력이다.
더 강한 권력은 타자의 미래를 봉쇄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형성해준다.
이를 통해 아무런 폭력 행사 없이 에고는 타자의 영혼 안에
자리를 잡는다.

권력은 권력자에게 더 넓은 자아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이는
권력의 상실이 어째서 절대적인 공간의 상실로 체험되는가를 설명
해준다. 세계 전체를 꽉 채우고 있던 권력자의 몸이 보잘것없는
한 조각 육체로 줄어든다. 권력을 상실하는 순간 왕은 작고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로 환원되어버리는 것이다. 권력의 상실이
일종의 죽음으로 체험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권력이 금지나 파괴 같은 방식으로만 작용한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권력은 커뮤니케이션 매체이며 커뮤니케이션이 특정한
방향으로 원활히 흘러가게 한다. 권력에 복종하는 자는 권력자의
결정을, 곧 그의 행위 선택을 받아들이도록 유도된다.

권력자가 더 다양하고 많은 결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의 권력
은 커진다. 나아가 권력자가 더 많고 다양한 종류의 대안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 맞서 자신의 결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권력은
더 크다. 예를 들어 한 사회 안에서 권력은 그 사회가 대안을
만들어내는 정도에 비례해 증가한다.

또한 서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들 사이에는 아무
권력도 생겨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물리적 강함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중 한명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혹은 상대방
물리적 강함을 예견해서 스스로 상대에게 복속할 때 비로소
권력이 생겨난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이끄는 투쟁이 아니라,
그 투쟁의 부재가 비로소 원래적 의미에서의 권력을 구성하는
것이다.

권력은 폭력보다 “더 넓은 공간을 갖는다.” 폭력이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되면 권력이 된다. 이런 점에서 권력은 더 많은
공간과 시간에 근거하고 있다.
폭력이 권력을 생겨나게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력이
폭력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은 점(點)적으로 일어나고
스스로를 공간화하지 못한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결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 아렌트는 이러한 권력의 공간성을 잘 알고 있다.
좁은 총구로는 어떤 공간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한 개인이 힘이나 강제력을 소유할 수는 있지만 혼자서는
결코 권력을 산출해내지 못한다. 아렌트는 권력이 “함께 있음”
(Mitsein) 그 자체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권력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공동으로 행동할 때 생겨난다.”

또한 “권력은 사이에서 나온다.”
권력은 행동하거나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서로 관계를 맺고 그들과의 합의 속에서
행동할 수 있는 인간 능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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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권력"이란 무엇이며, 권력의 속성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철학자의 시선에서 철학자의 용어로 들어 보았습니다.
한인 철학자지만 독일어로 쓴 책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을 한 특이한
책이었지요.
철학의 용어들은 참 어렵습니다. 개념과 관계된 용어가 많고 독일어로
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이 있었기에 이해가 만만치 않습
니다.

먼저 권력이란 무엇인지 한번 보면, 타인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행동을 하도록 하는 무언가의 힘을 말합니다.
그런데 권력자에 대한 대립의지가 있다면 이미 그 권력은 약화된 권력
이라고 말합니다.
더 큰 권력은 의지를 중성화시켜 스스로 의지를 가지지 않게 하고,
이보다 더 큰 권력은 자신의 의지를 권력자의 의지에 동화하고, 아예
자기가 처음부터 원한 것이라고 여기게 합니다.

그리고 아예 극도의 힘의 차이로 인해 "투쟁의 부재 " 현상이 일어나는
데 투쟁이 있다면 압도적인 권력이 아닌 것이지요.
또한 권력은 더 넓은 공간과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합니다.
보통 그룹 회장실이나 사장실은 접견실도 있고 넓은 사무실을 가지고
있지요. 절대 권력의 왕이 권좌를 잃으면 작고 초라한 육체의 공간만
지니게 된다고 말합니다.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던 한나 아렌트도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한 개인의 힘과 폭력은 권력이 되지를
못하는데, 권력은 "함께 있음"과 "사이"에서 나온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한자 그대로 "人間" 사람과 사람의 사이 를 말합니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 그 사이의 공간에서 권력이 창출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간 뿐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권력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하고, 타자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하고, 남의 영양분이나 환경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가져오려고 의도합니다.

결국은 생명체의 본질은, "생존과 번성"의 코드에서 보면 알수가 있고
"권력의지"가 "생존과 번성"의 확률을 높여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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