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를 만나는 기쁨”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김태관
-- “장자(莊子)를 만나는 기쁨”
강 일 송
오늘은 동양의 현자 “장자(莊子)”에 관한 책을 한번 보도록 하겠
습니다.
저자인 김태관(1955~)은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언론계
에 투신하여 경항신문 종합편집장 및 논설위원을 역임하였습니다.
현재는 고전의 바다에서 사물의 본질을 구하는 저술을 계속하고
있으며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곁에 두고 읽는 장자”,
“늙은 철학자가 전하는 마지막 말”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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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길이
<장자> 칙양편에서는 인간사를 달팽이 뿔 위의 전쟁으로 비유하는
글이 나온다.
“달팽이 머리 위에 작은 뿔이 두 개 나 있는데 각각 촉나라와 만이
라는 나라였다. 이들 두 나라는 땅을 빼앗으려고 수시로 전쟁을 했다.”
촉만지쟁, 혹은 와각지쟁 이라 불리는 우화다. 두 나라의 싸움은 처절
하고 절박하지만, 기껏해야 달팽이 뿔 위의 아귀다툼에 불과하니
하찮기 짝이 없다. 장자는 묻고 있다.
“무한한 우주에 비할 때 인간 세상의 전쟁이나 달팽이 뿔 위의 전쟁
이나 뭐가 다른가?”
하늘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본다면 인간들의 다툼이란 티끌 속에서 자웅
을 겨루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장자에 따르면 우주의 시간 속에서
백 년의 장수나 십 세의 요절이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도 안 된다.
나아가 생명의 흐름은 부단하여 생과 사는 낮과 밤이 바뀌는 것과 같다.
그러니 지구를 70바퀴 도는 인생길에서 뭐 좀 잘나간다고 으스댈 것은
없다. 아무리 큰 고난이라 해도 따지고 보면 모기 눈썹 위의 티끌에
불과하다. 태산 같은 부를 쌓았다고 우쭐거릴 일도 못 된다.
하늘에서 보면 조그만 개미 둑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얼마를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이다.
얼마만큼 이뤘는가보다 어떤 일을 이뤘는지가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
준다.
장자는 우리 눈에 비친 크고 작은 것은 진실로 크고 작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가 천 일처럼 보람차고, 천 일이 하루처럼 한결같다.
하루를 천 일처럼 살 것인가, 천 일을 빈 하루로 흘려버릴 것인가.
인생을 길이로 잴 것인가, 의미로 잴 것인가.
그대의 척도가 그대의 인생을 결정한다.
★ 나비의 꿈
-- “그대 속에 있는 것은 호랑이인가, 나비인가”
당나라 때의 기담소설인 “인호전”을 바탕으로 일본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
가 쓴 <산월기>에서의 이야기다. 당나라 때 이징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모난 성격을 가진 그는 빈궁한 생활에 말직에 나갔다가 상관이 된 옛
동료에게 복종해야 하자 자존심에 상처가 나 더욱 거칠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발광을 하고 말았는데 한밤중에 깨어보니 몸에
힘이 솟고 털이 났다. 호랑이로 이징은 변한 것이다.
맹호로 변한 이징은 점점 자신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어갔다.
처음에는 호랑이로 변한 것을 상심해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이전에 인간
이었다는 게 더 이상하게 여겨졌다.
이징은 맹호를 품고 살았지만, 장자의 마음에는 나비가 들어 있었다.
“어느 날 장주(莊周)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가 되어 유쾌
하게 날아다니다 보니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자 틀림없이 다시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장자>에서 가장 유명한 ‘호접몽’이다.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장자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이것과 저것, 나와 사물의 분별
도 엎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것인지
를 물었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물었다.
장자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을 뒤집고, 뒤집힌 것을 다시 뒤집어
버렸다.
호접몽의 나비 날개가 일으킨 바람은 시공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그것은 불교의 선(禪)으로 이어지고, 철학의 존재론으로
흘러간다. 시뮬라시옹(simulation),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사이버스페이스, 아바타 등 21세기 디지털
세계의 용어들도 장자의 호접몽과 맥이 닿아 있다.
나도, 세상도 내 마음이 빚어낸 것이다. 내 눈에 비쳐진 모든 것들에는
내 마음이 투영돼 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을 바꾸면 내가 바라보는 세
상도 바뀐다. 깨닫는다는 것은 내 마음을 미혹하는 망상에서 깨어난다
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마음의 조화다. 마음속에 호랑이가 들어 있었던 <산월기>의
이징은 결국 호랑이가 되었다. 마음속에 나비가 들어 있었던 장자는
나비가 되어 꿈과 현실을 넘나들었다.
그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 곧 그 사람인 것이다.
그대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호랑이인가, 나비인가.
그대는 누구이고 싶은가? 그대가 바라는 것이 곧 그대의 미래가 된다.
지금 그대의 날개가 일으킨 바람은 머지않아 거대한 폭풍이 되어
세상을 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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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도가(道家)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장자와 노자에 대한 책을 몇 권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반복되는 부분도 있고 겹치지 않는 내용도 있네요.
장자는 대체로 엄청 스케일이 큽니다. 대장부 스타일이지요.
2500년전에 이미 우주를 뛰어 넘는 스케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두 나라의 전쟁을 달팽이의 조그만 뿔 2개가 싸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주의 긴 시간 속에서 100세 장수나 십세 요절이나 머리카락 한 올
의 차이도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큰 고난이라도 눈썹 위의 티끌이고, 천하의 부를 가져도 조그만
개미둑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 마음의 스케일이면 세상사의 등락에 크게 마음이 요동할 일이
없겠지요?
다음은 우리가 익히 아는 "호접몽"에 대한 이야기와 잘 모르는 "인호전"
이야기인데요, 마음에 맹호와 같은 마음을 품자 호랑이로 변한 이징은
자기가 예전에 사람이었는지 호랑이였는지 조차도 혼돈스러워집니다.
꿈속의 나비도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헷갈리지요.
이러한 관념은 불교의 선, 존재론, 시뮬라시옹, 가상현실에까지 이르러
현대인들은 인터넷 상의 가상 세계나 게임에 몰입하여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혼돈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장자는 말합니다. 나도 세상도 마음의 조화이고, 내가 만들어 낸 상이
라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사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바뀌고, 나의 주위 환경도 따라서 함께
변화를 한다는 말이겠지요.
이제 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주말 행복하게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