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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

<아침 미술관> 이명옥

한 조각의 상상력, 감성을 더하는 모닝 아트

by 해헌 서재

<아침 미술관> 이명옥
- 한 조각의 상상력, 감성을 더하는 모닝 아트

강 일 송

오늘은 미술에 대한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요즘은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드높은 시절입니다. 미술관을 가보면 유치원
어린이들이 단체로 방문하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연세드신 분들도 열심히 적고 듣고 감상하는 모습이 흔히 보입니다.
저자는 미처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이들은 위해서 매일 미술작품 한 점씩을 감상하게
도와준다는 컨셉으로 181점의 그림과 함께 흥미로운 해설을 곁들여 책을 발간하
였습니다.

저자인 이명옥(1955~)씨는 미술계의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림 읽는 CEO>,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명화 경제 토크>,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등, 수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인상 깊은 그림 몇 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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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걸음마>, 1858 -- 첫 감동의 순간
-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

부모라면 자식이 난생 처음 걸음마를 떼던 순간의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하겠지요.
프랑스의 농민화가로 불리는 밀레의 그림은 그런 부모의 심정을 너무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기가 엄마 품을 떠나 생애 첫발을 내딛습니다. 아빠는 한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두 팔을 벌립니다. 무릎을 굽힌 것은 자식에게 헌신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지요.
그러나 아빠와 아기 사이에는 빈 공간이 놓여 있습니다. 이 공간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꼭 필요한 거리입니다. 아기가 홀로 걸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 하지만
자식이 넘어지면 한달음에 달려가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만큼의 거리,
바로 사랑의 공간입니다.


◉ <첫 걸음마> 1890 -- 멘토를 찾아서
-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세상에, 그림도 제목도 똑같네요. 더욱 놀라운 점은 짝퉁 그림을 그린 화가가 그
유명한 고흐라는 것입니다. 천재 화가의 대명사인 고흐가 다른 화가의 그림을
베꼈을 줄 누가 감히 상상인들 했을까요. 물론 고흐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
습니다. 밀레는 고흐의 영원한 우상이었거든요.
고흐는 밀레의 친구 상시에가 쓴 밀레 전기를 읽고 그의 철학, 농민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술과 인생의 스승을 만난 고흐는
밀레의 복제 판화들을 구입했고, 급기야 선배의 그림을 모방하기에 이르렀어요.
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색채와 기법이 약간 다릅니다. 밀레는 종이에
파스텔로, 고흐는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거든요.


◉ <추수하는 사람들>, 1566 – 잠시 쉬어도 좋습니다.
- 피테르 브뢰헬 1세 (1525-1569)

밀 수확기인 6월 하순을 맞아 농부들이 땀 흘려 농사지은 곡식을 부지런히 거둡
니다. 농부들이 커다란 낫으로 밀을 베면 아낙네들은 밀단을 묶어 세운 다음
햇볕에 말립니다. 무더운 여름날 땡볕에서 힘들게 일하다 보면 배가 출출해지지요.
허기진 일꾼들은 잠시 일손을 놓은 채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모여서 새참을
먹습니다. 들일에 지친 농부 한 사람은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두 팔을
벌린 채 단잠에 빠졌어요. 비록 빵과 우유만의 조촐한 음식이지만 허기진 농민들
에겐 꿀맛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할 정도로 바쁜 사람은 공구를 손질할 시간이 없는
기술자와 같다.“ 스페인의 속담입니다.


◉ <스냅 더 휩>, 1872 – 어린이날
- 윈슬로우 호머(1839-1910)

산골 마을의 어린이들이 ‘스냅 더 휩’이라는 미국의 전통 놀이를 합니다.
소년들은 친구들의 손을 꼭 붙잡고 신나게 초원을 가로지릅니다. 두 다리를 벌리고
힘껏 달리는 아이, 급히 달리다가 균형을 잃고 쓰러진 아이, 풀밭에 넘어진 친구를
살피느라 한눈을 파는 아이, 친구가 달려가지 못하도록 가슴을 뒤로 잡아 당기는
아이 등 화가는 사랑이 가득 담긴 눈길로 소년들의 다양한 자세와 동작을 그림에
묘사했어요. 미국 화가 호머는 외딴 산골 마을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어린이들이 바로 미국의 희망이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담한 산언덕 아래 빨간색으로 칠해진 작은 학교가 보이세요?
비록 학생들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 소년들은 학교생활에 대만족입니다.
대자연 속에서 신발을 벗어 던진 채 즐겁게 놀면서 공부하는 친환경 학교니깐요.


◉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 1852 - 각오의 의미
포드 매독스 브라운(1821-1893)

낯선 나라로 이민을 가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런 당찬 마음을 19세기 영국 화가 브라운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의 친구인 토머스 울너 부부입니다. 조각가인 울너는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조국을 떠나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 가기로 합니다.
당시 브라운도 가난으로 고통받는 동병상련의 처지였기에 이민을 가는 친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지요.
울너 부부가 탄 배의 이름은 이상향을 뜻하는 “엘도라도”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을
하기도 전에 시련이 닥쳐왔군요. 두 사람이 자리한 비좁은 배의 갑판에 차가운
겨울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산은 벗겨지고 부인의 목을 감싼 머플러는 거세게 요동
칩니다. 하지만 굳게 마음을 다지고 출발한 이민 길입니다. 아내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다짐인 듯 남편의 손을 꼭 붙잡습니다. 그런 한편 망토 속에 있는
아기의 작은 손을 따뜻하게 쥐어줍니다.
부부는 새로운 세상에서 자식이 행복하게 살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이민을 떠나는
것이겠지요.
두 사람의 당찬 눈을 한 번 보세요.


◉ <빵을 다오>, 1924 – 밥이 하늘이다.
- 캐테 콜비츠(1867-1945)

세상에는 음식을 주체하지 못해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음식이 부족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독일 판화가 캐테 콜비츠는 인간에게 굶주림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그림을 통해
보여줍니다.
허기에 지친 두 아이가 엄마의 팔과 옷자락을 붙잡고 먹을 것을 달라고 떼를 씁
니다. 아이들은 간절히 원하지만 엄마는 자식의 주린 배를 채울 방법이 없습니다.
무력감에 사로잡힌 엄마는 울부짖는 아이들을 쳐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오열합니다. 기아에 허덕이는 빈민을 묘사한 그림의 배경은 1924년 독일입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경제 사정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난이 겹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의 고통에 떨어야했지요.
콜비츠는 전쟁을 일으킨 인간들에 대한 분노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그림에 투영한 것입니다.
김지하 시인은 “밥이 하늘이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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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술 그림을 보았습니다.
저자는 그림을 편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미술 작품 감상이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고 상상력을 선사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림은 그냥 바라만 보는 순간에 이미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고, 많은 것을
소리없이 전해줍니다.

밀레와 고흐의 아빠와 아기를 보십시오. 말이 필요없습니다. 그냥 아빠의 사랑이
전해지지요?
브뢰헬의 추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네 농촌의 일꾼들과 너무나 많이 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논과 밀밭의 차이 말고는 새참도 먹고 낮잠도 자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까지도 보입니다.
미국의 호머 작품을 보면, 옛날이나 현대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아이들은 참 똑
같습니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아야 진정한 교육의 출발점이 될 터인데,
1800년대의 미국 아이들을 보다보니 우리네 아이들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짠해집니다.
이민가는 부부의 그림도 한번 보십시오. 젊은 부부의 두 눈이 당차고 각오가 서려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눈 안에 들어 있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서려있습니다. 살짝 보이는 애기 손이 포인트입니다.
마지막 그림은 지금은 최부국인 독일이 불과 90년전에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경제적으로 국민들이 고통받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수치를 들이대거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흑백의 스케치 한 점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배가 고파 매달리는 아이의 눈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오열하는 엄마의 등이
그 인생의 고달픔을 표현해 줍니다.
“밥이 하늘이다”라는 말이 저절로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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