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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an 27. 2018

<에고(Ego)라는 적>

<에고(Ego)라는 적>

“지나친 자의식을 경계하라”


                                 강 일 송


오늘은 "에고,Ego"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프로이트로 인해

에고란 말을 접하게 되는데, 오늘 저자는 프로이트적인 에고가 아닌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자의식’이라는 개념에서 에고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라이언 홀리데이(1987~)는 아주 젊은 미디어 전략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19세에 대학교를 자퇴하고 <권력의 법칙>의 저자인 로버트 그린의 제자가 되었으며

아메리칸 어패럴의 이사, 구글, 테이저, 콤플렉스 등에 자문을 하였습니다.


성공한 삶을 방해하는 에고 이야기를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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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전환점에서 버려야할 한 가지, 에고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세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무언가 이루기를 열망하는 단계이다.

체중을 감량하거나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 담당 프로젝트의 성공과 승진, 개인의

회사 설립과 성장, 사회 정의의 실현 등등.

두 번째 단계로 저마다 크고 작은 성공을 이루지만 그 성공은 쉽게 유지되지 않고 누구든

세 번째 단계로 실패를 경험한다. 이 열망과 성공, 실패라는 세 단계는 인생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나는 이것이 당신 스스로 가장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믿는 잘못된 믿음, 당신의 에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풀려질 때 에고는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왜곡하기 시작한다. 전설적인 미식축구 감독 빌 월쉬는 그런 순간을

‘자신감이 거만함으로 바뀌고 단호함이 완고함으로 바뀌고, 또 자기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완전히 제멋대로 굴 때’라는 말로 설명했다.

1930년대의 비평가 시릴 코널리도 ‘에고는 중력의 법칙처럼 우리를 휘감아 침몰시킨다.’

라는 말로 에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 에고의 조절은 끊임없는 배움에서

-- “배움,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는 것”


우리는 흔히 칭기즈 칸을 피에 굶주린 야만인 정복자로 묘사하고 문명사회를 공포의 늪으로

몰아넣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서 드러나지 않은 진실 하나는 그가 역사상 그

어떤 사람보다도 위대한 장수였을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성실한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그처럼 놀라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정복한 사회의 최고의 기술과

제도, 혁신적인 면들을 빠르게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로운 적과 맞부딪쳐 전투를 할 때마다 새로운 문명을 학습하였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그는 정복한 모든 나라와 도시에서 자기 군대나 통치 시스템에 필요하고 또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두루 등용했다.

그 덕분에 몽골인들 중에는 없었던 천문학자, 의사, 기록관 등이 그의 제국에 포진할 수

있었다. 다른 제국이나 부족을 정복하러 나설 때는 이런 인재 등용을 위해 반드시

해당 지역의 전문가와 통역을 대동했다. 무엇보다 칭기즈 칸은 이런 습관을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았다.


지금까지 당신이 무엇을 이루었든 간에 앞으로도 여전히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 만일 지금 당신이 배우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그리고 모든 사물과 상황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당신에게 패배한 사람에게서,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심지어 당신이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배워야 한다. 인생의 모든 단계와 걸음걸음마다 배움의 기회는 늘

존재한다.


★ 에고를 누르고 성취를 이룬 사람


남북전쟁 당시에 업적을 세웠던 윌리엄 테굼세 셔면 장군, 워싱턴포스트와 뉴스위크지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 등등 수많은

인물들을 보면, 이들은 철저하게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며, 용의주도했고 또

거침없을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이들은 위대했지만 겸손했다. 물론 모두가 다 에고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에고를 억누르는 방법과 에고의 물꼬를 돌리는

방법, 그리고 필요한 경우 에고를 포섭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에고를 대체하는 덕목은 바위처럼 단단한 겸손함과 자신감이다. 에고가 인위적인 것이라면

자신감과 겸손함은 아무리 무거운 것이라도 든든하게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실제적인

것이며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다. 에고는 자기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추켜세우지만 그래

봐야 그럴듯한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시련을 겪고도 어떤 사람들은 겸손함을 배우고 어떤 사람들은 에고를 선택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운명의 장난에 준비를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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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삶은 영위하는데 방해가 되고 과하게 되면 삶을 그르치게 만드는 ‘에고’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보았습니다.


본래 서양에서 ‘에고,Ego'란 프로이트의 ’이드,id', '에고,ego', '수퍼에고,superego'의

분류에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본능적인 이드를 누르는 자아의 기능을 에고가 하는데, 오늘 저자의

에고는 ‘과한 자의식, 과도한 자신감, 거만함’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였습니다.


오늘 저자는 인생을 살다보면 첫 번째 단계로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가지는 단계가 오고

두 번째는 크든 작든 성공을 경험하는 단계, 세 번째는 성공 이후의 실패의 단계를 맞이

한다고 합니다. 어떤 인생이든 이 세 단계를 오르내리는데, 이렇게 되는 원인이 과한 자의식

즉, 에고의 존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과연 이러한 과도한 자의식의 에고가 없는 사람은 계속적인 성공의

길만 걷고 실패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자만감에 가까운 에고가 분명 큰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것을 좌우하는 요인은 아닐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끊임없는 배움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공감이 되는데요, 대제국을

이룬 몽골의 칭기즈 칸의 배움에 대한 태도는 정말 받아들이고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칭기즈 칸이 대제국을 이룬 가장 큰 원동력은 “학습”과 “관용”의 큰 두 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제대로 된 문자도 없는 조그만 부족국가에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이룩한 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와 새로운

문화와 종교를 인정해주는 관용의 자세가 필수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서,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이러한

“배움”의 자세와,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열린 “관용”의 자세가 생존과 발전에 있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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