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과학 자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헌 서재 May 28. 2020

<생명의 파동, 엔트로피, 결>

“뉴턴의 아틀리에”中

<생명의 파동, 엔트로피, 결>
“뉴턴의 아틀리에”中

                               해 헌 (海 軒)

오늘은 과학과 예술 사이를 이어주는, 예술을 사랑하는 과학자와 과학을 이해하고 있는
예술가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책에서 네 번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김상욱(1970~)교수는 카이스트에서 물리학으로 학사,석사,박사를 한 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연구원, 도쿄대학교와 인스부르크대학교 방문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부산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예술을 사랑하고 미술관을 즐겨 찾는 ‘다정한 물리학자’로 불리고
방송 <알쓸신잡>, <금요일 금요일밤에> 등에 출연하여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과학자
입니다.

두 번째 저자인 유지원은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독일 국제학술교류처
예술 장학생으로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했습니다.
국제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에서 큐레이터를, 홍익대학교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저서로는 <글자풍경>이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

★ 결, 겹겹이 쌓인 생명의 흐름

건강한 생명들은 결이 고르다. 살결도 머릿결도 숨결도. 건강한 정신은 결이 고르다.
마음결도 말결도 글결도. 순우리말 ‘결’은 ‘겹’에서 온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은 우주의 생명 현상 속에서 구성 성분들이 반복하는 패턴을 형성해서 ‘겹’을
이룬다고 직관으로 통찰한 모양이다. 그 생명의 자국으로 남은 무늬가 ‘결’이다.

순리(順理), 이치(理)에 맞고 결이 흐르는 방향에 맞을 때, 우리는 그것을 순(順)하다고
한다. ‘理’는 가로 세로 겹겹의 결을 이루는 모습 그대로 ‘가지런하다’는 뜻을 가졌다.
‘理’자가 생성된 근원으로 거슬러 가면 결국 ‘나뭇결’의 무늬에서 왔다고 한다.
‘理’는 곧, 내적인 흐름이 겉으로 드러난 무늬이고 결이다.

흐름을 일으키려면 에너지인 ‘기(氣)’가 필요하다. ‘氣’는 생김새부터 기운생동하며 동적
(動的)이다. ‘理’는 ‘氣’를 운동하게 하는 법칙이자, 그 존재의 근거다.
氣가 理를 따라 움직이면, 결이 순하고 고운 건강한 생명의 질서가 만들어진다.
결이란 생명 현상에 새겨진 물리 현상으로, ‘동적인 흐름’과 ‘주기적인 질서’의 흔적이다.
그런데 에너지는 무슨 조화로 ‘질서’를 만들까?

★ 엔트로피의 법칙

우주에서 에너지의 양은 보존되지만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흐르며 그 질(質)은 떨어진다.
전자를 ‘에너지 보존법칙’, 후자를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한다.
그리고 질서의 반대편에 있는 무질서의 정도를 ‘엔트로피’라고 한다.
그러니까, 생명이란 우주만물의 이치인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슬러 질서를 생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원자 하나하나의 운동은 무작위적이다. 그런데 원자가 엄청난 수에 이르면 통계와 확률에
따라 그 움직임에는 평균적인 일정한 경향이 나타난다.
열운동은 불규칙한데 생명 현상은 어째서 예외일까? 그 이유에 대해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통계물리학적인 개념으로 접근했다.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원자는 그토록 작은데
우리 신체는 왜 이렇게 커야만 할까?’ 신체가 충분히 커야 신체를 구성하는 원자의 수가
충분히 확보되니, 그래야만 일정한 경향의 질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있지 않은 계에서는 여러 종류의 마찰이 있어 그 안의 운동은 결국 멈춘다. 그 계는
이렇게 영원에 도달한다. 이것을 ‘열역학적 평형상태’, 또는 ‘열적 평형’이라고 부른다.

죽어 있는 평형 상태가 ‘열적 평형’이라면, 살아 있는 평형 상태는 ‘동적 평형’이다.
생물학자 루돌프 쇤하이머는 ‘동적 평형’이라는 개념으로 생명이 질서를 창출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살아 있는 유기체는 대사를 한다.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섭취하고 재료를 교환해서 변화해 간다.
생명체는 ‘동적’이라는 표현 그대로 다이내믹한 흐름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흡수한 에너지는
그대로 쌓여 있는 듯 보이지만 생체의 조직 구석구석으로 확산되어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구성 성분을 교체해 간다. 이 동적인 흐름이 ‘살아 있는’ 상태이다.
생명체는 이렇듯 열역학 제2법칙을 뚫고 태어난다.

그리고 죽음을 뜻하는 ‘열적 평형’을 지연시키는 ‘동적 평형’ 상태로 생명을 ‘유지’한다.
생명의 복잡한 구성 성분들은 때로는 고체처럼 단단하게 때로는 유체처럼 느슨하게 결합
한다. 가령 단백질은 서로 붙들려 있지 않고 접촉했다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이런 주기성이 일정한 리듬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며 진동을 한다. 이 질서정연한 생명의
흐름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가시화한 자국이 곧 ‘결’이 아닐까?

★ 결과 파동

결은 무늬다. 같은 결이라도 머릿결은 시각, 비단결은 촉각을 일깨운다.
물결같이 흐르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욕심은 한결같다. 마음이 비단결이라도 결이 다르
다면 같이 일하기는 쉽지 않다. 이처럼 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선이 하나 그러 있을 때 ‘결’이라 부르지 않는다. 여러 개의 선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을 때 ‘결’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결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은 이미 대상에 모종의
규칙이 있을 가능성을 내포하며, 실제 그런 규칙이 있을 때 결이 맞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옳다. 이처럼 결은 대상의 특정 부분이 아니라 대상이 가진 총체적 성질을
지칭하게 된다.

물결은 파동이다. 파동은 물질이 아니라 형상이다. 물이 아래위로 진동하는 그 행위의
산물이 파동이다.
파동은 시간과 공간을 모두 평등하게 사용한다. 물결의 파동을 사진 찍어 보면 위치에 따라
주기적으로 물의 높낮이가 진동하는 사인함수의 형태가 나타난다. 파동은 시공간
모두에서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

소리는 파동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연주되고 있을 때 그 음악은 공기의 밀도
파동으로 자신을 시공간에 아로새긴다. 음악은 공간을 가로질러 사람의 귀에 도달한다.
귀의 고막은 물결 위의 나뭇잎처럼 좌우로 진동하며 음악을 시간의 파동으로 바꾼다.
이것은 시간으로 느껴지는 음악의 형상이다. 이렇게 시공간을 진행하던 음악은 우리의 귀에
부딪혀서 시간의 예술이 된다.

★ 칸딘스키와 양자역학

바실리 칸딘스키는 음악을 회화로 표현하려 했던 화가였다. ‘즉흥’이나 ‘구성’같은 제목은
음악을 염두에 둔 것이다. 칸딘스키는 그림의 색과 형태가 진동하며 소리를 낸다고 생각
했다. 또한 그는 누구부도 현대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화가였다. 원자가 방사능을 가지고
붕괴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는 원자가 변치 않는 최소의 단위라는
‘고대 원자론’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칸딘스키를 추상으로 이끈 현대 원자론, 즉 양자역학에서는 결맞음이 중심 개념이다.
양자역학에서는 ‘본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원자는 우리의 직관이나
상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원자는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우리의 경험에 근거하여 이해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막상 원자가 어디 있는지 ‘보면’, 원자는 분명 한 장소에만 존재한다.
본다는 행위가 원자의 상태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양자역학에서는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하는 원자를 ‘결맞은’상태, 보아서 한 장소에
있게 된 상태를 ‘결어긋난’상태라고 부른다.

‘본다’는 행위를 설명하는데 난데없이 ‘결’이 튀어나오는 것은 원자의 기이한 행동이
파동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원자는 단단한 입자이면서 동시에 소리와 같은 파동이기도
하다. 결이 맞은 파동이 시공간을 조화롭게 진행하듯이 원자도 소리와 같이 시공간에
펼쳐져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본다는 행위는 파동의 결을 흐트러트려 한 장소에 고정
시켜 버린다. 마치 결이 어긋난 음악이 불협화음이 되어 귀에 걸려 넘어지듯이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면 정상이다. 양자역학은 원래 이상하다.

칸딘스키는 음악을 보여 주려 했다. 음악은 결맞는 파동이다. 결맞는 파동은 양자역학이
가지는 기이함의 근원이다. 양자역학에서는 파동을 보면 결이 어긋난다.
소리를 보기 위해서도 결이 어긋나야 할까? 칸딘스키가 보여 준 음악은 결이
어긋나며 의미조차 상실해 버린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음악은 추상을 통해
그림이 되었다.

========================================================

오늘도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와 예술가 유지원 교수를 통해서 과학과 예술의
접점을 찾고 그 풍성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주제는 결, 파동, 에너지 등이었는데, 어려운 주제이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하
고 있습니다.  먼저 "결"을 보면, 자연에서 생명력에 의해서 생성되는 반복되는
패턴이 남긴 자국이 "결"이었고, 이는 "겹"에서 왔다고 하지요.
결이 들어가는 우리말은 숨결, 살결, 머릿결 등 굉장히 아름다운 말들이었습니다.

다음은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의 법칙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는데, 모든
우주의 만물은 시간이 흐르면 무질서쪽으로 흘러간다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생명 현상은 이에 반대되는 현상인데, 어떻게 우주의 계안에서 절대법칙을 거스
르는 현상이 생길 수 있는 지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즉, 원자도 그렇고 수가 적을 때는 무작위의 예측 못할 행동을 보이지만, 그 수가
엄청 늘어나면 통계학적으로 일정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고, 그래서 인간
을 비롯한 생명체의 크기가 커진 원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연결되어 이어진 양자역학은 역시나 이해가 어려운 학문이었지만, 김교수의 말을
자주 듣다보면 그냥 머리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게 되더군요.
한 원자는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할 수 있는데, 보는 사람이 '보는' 순간부터 한 곳에
머무르게 되고, 본다는 자체가 파동을 흔들어 고정시켜 버린다고 하지요.
이는 물리학적으로 '안 맞는 결'을 가지는 것이고 '결맞은'상태에서는 원자가
두 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각각의 사람 안에는 각자의 개성있는 '결'이 있을 것 같고, 자기와
맞는 결을 가진 사람, 또는 파동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이런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편안하고 즐거울 것입니다.
내 마음 속의 결은 숨결 같고 비단결 같은 결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