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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훈 Dec 07. 2022

한자(漢字)가 의사소통을 막고 있다?

청년 농부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 교육생이 질문을 했다.

“강사님. 토양혼화가 무슨 뜻인가요?”

“토양과 함께 섞어주라는 뜻입니다. 밑거름 용 비료는 반드시 토양혼화가 필요하죠”

그러자 교육생이 불만이라는 투로 나지막이 말했다.

“굳이 이렇게 어려운 단어를 써야 하나? ‘토양과 함께 섞으세요’라고 하면 될 텐데…”

평상 시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인데,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단어가 그렇게 어려운 단어였던가?’


 강연을 다니다 보면 갈수록 앳때보이는 젊은 농부들이 종종 보인다. 나 또한 청년의 범주에 속하지만 앞자리가 3에서 4로 바뀌고 난 뒤 20대의 청년들을 볼 때마다, 응원하는 삼촌 같은 마음이 조금씩 자리 잡는 중이다. 스스로가 삼촌이라 정의한 이유는 나이라는 명백한 생물학적 증거가 가장 크지만 의식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는 행동학적 증거, 바로 대화에서의 차이가 격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좋분카 : 좋은 분위기의 카페’ ‘갑통알 :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를 해야 할 것 같다’과 같은 줄임말을 들을 때면 ‘같은 한국인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언어 사용의 다름에서 나오는 갈등이 비단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말로써 1980~2010년대에 출생한 이들을 칭함)와의 대화뿐만은 아니었다. 



 한자(漢字)가 의사소통을 가로막다.


 농업에 종사하다보면 간혹 두세 번 생각해야 하는 단어들이 있다. 바로 한자로 된 단어들이다. 가령 경엽(莖葉), 입제(粒劑)와 같은 단어는 농촌에서 흔하게 쓰이는 단어다. 참고로 경엽은 줄기와 잎을 통틀어 뜻하는 말이고, 입제는 작은 알갱이로 된 형태를 뜻한다. 문제는 젊은 귀농인들이 해당 단어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귀농인이 농촌에서 사용하는 단어에 이질감을 느끼고 있고, 이로 인해 크고 작은 불(不) 소통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더 이상 한자 교육이 의무가 아닌 데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문화역사적인 이유로 한자를 병용했고 영어가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제1 외국어 문자를 담당했다. 실제 필자는 MZ에 아슬아슬하게 끼이는 83년생임에도, 중고등학교 시절 본인 이름은 물론 부모님 이름 정도는 한자로 쓸 줄 알아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유식하지 못한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언제 한자를 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생각해보니 도시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이 말은, 농촌에서는 한자를 꽤 빈번하게 쓴다는 뜻이다. 농촌은 도시와 인구 구성비 자체가 다르다. 대부분 농촌은 젊은 층보다는 중년, 나아가 노년층이 대부분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자를 많이 알고 쓰는 것이 지식인의 소양이라 여겨졌던 시대를 거쳐왔다. 때문에 자연스레 한자를 쓰고 관공서에서 한자로 된 공문이 날아와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새로 유입되는 청년층이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청년층이 귀농해야 한다는 이유로 기존의 언어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한자 사용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그에 맞게 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언급했지만 나와 같은 80년대 초반대는 한자를 쓰지 못하더라도 한자 단어는 이해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 그럼에도 한자 사용에 개선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가속화되는 언어 갈등


 세종 청사에서 진행된 농업 정책 세미나의 청년 대표로 참석했을 때였다. 보조 자료에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생산성이 저하된 포장의 효율성을 높기 위해…’

나를 비롯한 7명의 청년 대표들 대부분이 포장이라는 단어를 포장(물건을 싸서 꾸미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문맥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고, 발언자가 발언을 끝낸 후에야 단어의 뜻을 물어봤다. 의도치 않게 단어 순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로 인해 안건과 관계없는 대화로 10여분을 소진했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포장’ ‘경엽’과 같은 단어가 빈번하게 쓰이지는 않는다. 주로 많이 보는 현장은 공문서와 같은 공적인 현장이다. 물론 관공서를 언어순화의 방해꾼으로 손가락질해서는 안된다. 청년들 입장에서야 불편한 단어지만 여전히 고령층에서는 널리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자 사용과 거리가 먼 귀농인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 이내 농촌의 인구 구성비가 변경될 것이다. 이로 인한 한자어 사용에 따른 언어 갈등이 예상되며 국가적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언어 순화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말은 사람을 이어주고, 각각의 개인이 사회 구성원이 된다. 때문에 갈등 없는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도록 사회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즉 안 쓰거나 불편한 말은 다듬거나 교체해줘야 한다. 물론 그 기준은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만해야 함은 당연하다. 현재 한글문화연대에서 진행하는 농업 용어 개선 사업이 그러하다.


 언어는 생명체와 같다. ‘좋분카’와 같이 근본조차 모르는 단어라도 사람들이 사용하면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처럼 ‘포장’ ‘경엽’ ‘입제’도 ‘재배지’ ‘잎줄기’ ‘알갱이 농약’와 같은 단어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모든 연령층이 고루 쓰는 단어가 아니라면 한 번쯤 고려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간이 걸리고 때론 반발도 나오겠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이 농촌의 세대 간 언어 갈등을 개선해줄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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