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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 새 것은 없다
Dec 13. 2019
청소년을 만나는 일과 직업
상담자로서의 마음가짐
일시 쉼터는 석사를 졸업하고 상담 자격증을 취득한 뒤 취업을 위하여 방문한 적이 있었던 장소이다. 개인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취약 청소년들에 대한 비전이었기에 나는 한 때 일시 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돌보아주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막연한 열정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면접을 위하여 기관에 방문하고 잠시 화장실에 들르려고 할 때 직원 분이 종이 시트 같은 것을 건네며 “변기에 앉으실 때 이거 이용하세요. 아이들에게 성병이 옮을 수도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막연한 열정은 현실에서의 불안과 두려움으로 변했다. 집에 돌아온 뒤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너무나 무서워서 그저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돌보아주고 이들의 삶이 더 많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의 내면을 잘 탐색하여 적절하게 개입할 수 있는 전문지식일까? 아니면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뜨거운 열정일까? 본질이 되는 무조건으로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인 걸까?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나는 무엇이 무서워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후 나는 서울시가 아닌, 경기도 한 지역의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나의 첫 직장이던 그곳은 지금의 내가 조직에서 월급을 받고 일할 때 배울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모두 경험하게 해 주었다. 상담기관에서 일할 때 업무회의는 집단상담과 유사한 복잡한 역동이 일어나게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상담을 하러 왔는데 나는 행정만 또는 사업만 진행하고 있다며 한탄하며 느꼈던 좌절감을, 기관을 관리‧감독하는 시도 담당 공무원과의 불편한 구조적 관계에서의 답답함을, 상담하러 온 위기학생을 두고 국회에서 내려온 요구사항에 응대할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을..
그때는 처음 마주하는 현실이라 너무나 혼란스럽고 힘들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치열한 처음 시작이 있었기에 여전히 내가 관련 분야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본다. ‘상담을 하러 왔는데 행정을 왜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청상복뿐 아니라 학교 현장의 상담자들의 입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행정을 위하여 행정을 하는 것이라면 업무의 부당함에 대하여 맞서야겠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 학생을 상담하고 돕는 일에 대하여 타당화하고 타인에게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일의 일부라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 불필요해 보이는 일을 해나가는 과정 가운데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들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