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며칠 사이 두 분의 대학 교수님(이하 교수)들의 모습을 보며,그래도 '아직 교육자라 부를 수 있는 분들이 대학에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뭉클한 적이 있다. 언론을 통해 대학 교수의 갑질 기사에 워낙에 익숙한 지라, 우리가 흔히 바라고 원하던 교육자로서의 모습을 지닌 두 분을 보며 솔직히 생경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A교수는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교수'다. 소속 학교에서도 주요 보직을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요한 정책사업을 선도할 만큼 기획력과 추진력에서 손꼽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A교수는 대학원 저녁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논문에 쓰이게 될 연구방법을 가르치는데 한 명, 한 명의 페이퍼들을 꼼꼼히 봐주다 보니 늘 강의시간보다 초과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15명 전후되는 인원이 개인 페이퍼들을 검토받고 질문하다 보니 늘 밤 10시 가까이까지 수업은 계속되었다. A교수는 먼저 지도받은 학생들은 돌려보내고 혼자 고군분투하며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물론 분주하리만큼 바쁜 일정으로 인하여 A교수는 매시간 쌩쌩한 컨디션으로 지도해줄 만큼 체력이 넉넉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의무적으로 부여된 강의시간을 초과하고, 주말 등 별도로 다른 시간까지 잡아서라도 지도해주려 했던 것은 학생 한 명이라도 소외받지 않고 지도해주고 싶은 A교수 나름의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B교수는 어는 날 한 학생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다른 전공의 청강생이었는데 직장과 병행하는 학생이라 향후 3주간 회의 일정과 수업시간이 겹쳐 온전히 강의를 들을 수없게 되어 혹시 다른 방법으로라도 강의를 들을 수는 없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청강생임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대한 학생의 절실한 마음을 느끼게 된 B교수는 학생에게 듣지 못한 내용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강을 해주겠다고 말하였다. B교수에게 다른 전공의 청강생을 위해 수업 시간 외 개인을 위한 보강을 해줄 의무가 없었고, 이를 해주지 않더라도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비난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시간을 기꺼이 내주어 한 명의 학생을 위하여 정규수업이 마친 후 리뷰해주었다. B교수의 교육자로서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대학교육의 목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청강생은 B교수와의 보강을 통해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죽은 법이라고 느껴졌던 “국가와 인류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광범하고 정치(精緻)한 응용방법을 교수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것”이라는 대학교육의 본질과 목적의 실현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사실 코로나19의 여파로 대학가가 침체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신입생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저런 시절이 있었지'하며 덩달아 미소 짓게 되던 신학기도, 중간 기말시험에 쩔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퀭한 학생들을 지켜볼 수 있는 시즌들도 이제는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느낄 수 없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오직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만 강의하며 물리적으로 개인 시간을 더 알차게 쓸 수 있음에 더 기뻐하는 교수도 있고, 지도학생들의 이메일과 전화 연락에 회신이 더뎠던 교수들이 더 깊고 깊은 동굴에 들어간 사례도 보게 된다. 등록금 반환 투쟁이 왜 시작되었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앞선 A, B 교수들의 사례에서 우리는 제한적이라고만 느꼈던 코로나19의 상황이 오히려 진짜와 가짜를 구분 짓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시간 온라인 강의는 가르치고 듣는 자 모두에게 오가는 교통시간 없이 편한 곳에서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물리적 여건을 허용하였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끼게 된 시간만큼 나의 것, 나의 시간, 나의 취미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였다. 반면, 어떤 이들에게는 아끼게 된 시간만큼 다른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실천하게 하였다. 이 둘의 명확한 차이는 바로 그저 기능인으로서 내가 가진 직업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전문가로서 내가 가진 역량을 소명의식에 따라 사회에 환원하는 자가 될 것인지와도 관련 있다.사실 이 둘은 애매하여 쉽사리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어찌보면 코로나19는 진짜에게는 더 많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였고, 가짜에게는 더 많이 피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