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스

딸의 행복을 빌었다

by 빽언니


" 너 안 입는 빤스 하나 줘라~"

설이 지나고 나서 엄마는 또 연초 신수점을 보고 오신 것 같다. 올해는 딸인 내 운세가 비교적 재수 없고 중풍에 걸릴 위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오신 거다. 점쟁이가 시키는 대로 뭔가 비방을 하시려는 듯하다.

" 엄마 또 그러네... 그런 거 좀 이제 그만 해~ "
"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거야 이년아~
" 나 이제 엄마한테 용돈 안 줄래. 쓸데없는 곳에 돈 쓰면서 부적이나 사 오고!"

앙칼지게 말대꾸도 해 보지만 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에 혹해서 정성을 들이고 싶으신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고맙기도 하면서 얼토당토않은 미신에 진심으로 여전히 휘둘리고 있는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내가 뭐라고 말해도 듣지 않을 것을 알기에 헛웃음만 나온다.

그런데 인간의 운세와 '빤스'는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
팬티라고 말하기보다는 주술 행사에서는 '빤쓰'라고 불려야 뭔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것 같은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왜 하필 그 많은 물건 중에 빤스인가 말이다.

나의 팬티를 가져다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몇 년 전에도 내 팬티를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여태까지 내가 별 큰 탈 없이 잘 지내는 건 ' 빤스'기도를 비롯한 엄마의 치성 덕분이라 생각해야 하나? 마음은 알겠지만 감사하게 여기자니 왠지 짜증이 난다. 노인네에게 자꾸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뭐하고 참 아이러니해서 투덜거리며 동조하지 않았더니 엄마는 슬그머니 내 옷장을 열고 그중에서 가장 낡아 보이는 '빤스'를 슬쩍 가져갔다.

이모의 딸인 사촌 여동생이 해 준 얘기는 더 황당했다. 사촌 여동생의 엄마는 나의 이모이고, 내 엄마의 여동생이다.

" 고등학교 때 엄마가 하루는 밤에 자고 있는 나를 깨우더라고.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가리면서 눈을 뜨지 말라고 하면서 마시라고 뭔가를 강제로 먹이더라고"
" 눈을 감고 뭘 마시라고?"
" 왜 엄마? 하면서 다 마셨어. 내가 엄마 없을 때는 사고 쳐도 엄마 앞에서는 말 잘 듣잖아. 물이긴 한데 뭔가 건더기가 있더라고. 어둠 속에서 한 컵 마시고 그냥 자라더라고"
" 그게 뭐였어?"
"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입 주위에 시커멓게 묻어서 남아있는 것들이 있어서 보니까 재였어"
" 재? 뭐를 태운 재를 물에 타서 마시게 한 거야? "
" 어... 빤스를 태웠대. 딸아이의 빤스를 태워서 그걸 물에 타서 마시게 하면 딸이 속 안 썩인다고 점쟁이가 시켰다는 거야 "

" 푸하하하. 와~이모는 강적인데. 우리 엄마랑 이모는 정말 친자매 맞긴 맞네 ㅋㅋㅋ"
" 발암물질을 먹고 딸이 죽어버리면 더 이상 속을 안 썩인다는 점쟁이의 계획에 말려든 건 아니었을까? "
"우리가 그나마 이렇게라도 잘 먹고 잘 사는 건 다 그 '빤스' 덕분이네 ㅋㅋㅋㅋ"

우리는 '빤스'로 얘기꽃을 피우며 눈물이 쏙 빠지게 웃었다. 50여 년 전 찍은 눈부시게 예쁘던 엄마와 이모가 바닷가에서 수영복을 입고 탐스럽게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던 흑백사진을 보고 우리는 함께 자랐지만, 다 커서 중년이 된 사촌지간에 '빤스'를 매개로 이다지도 재미있는 공통 추억이 생길 줄은 몰랐다.

" 야 우리도 엄마들의 '빤스' 좀 가져다가 이제 뭐 좀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너무 받아만 먹었잖아"
" 그러게 말이야. 볶아줄까?"
" 빤스 채 썰어서 소고기랑?ㅋㅋㅋ"

웃고 떠들고 농담을 계속 주고받으면서도 우리는 알아채고 있었다.
엄마들의 기도를 비웃고 있지만, 사실 우리 딸들은 한 번도 엄마들을 위한 간절함을 기도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

오래간만에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와 항상 싸웠다 화해했다를 반복하는 이모지만 누구보다도 하나뿐인 언니(내 엄마)를 항상 생각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모뿐이라는 걸 나는 안다. 내 엄마에게 서운하고 화나는 일이 너무 많은 이모는 야속한 언니를 언급하며 열변을 토하신다. 그리고 손녀딸들이 서로 외할머니랑 자겠다고 저녁마다 싸우는 게 무척이나 사랑스럽다고, 죽을 때 다 돼가는 데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나 싶어서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자식에게 잘못을 많이 해서 미안한 마음을 손녀딸들을 돌보면서 사죄하고 산다고 하셨다.

뭘 그리 잘 못하셨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렇지 않다고 , 어려운 형편에 이모도 사느라고 많이 애쓰셨다고, 이모가 사랑받는 할머니로 행복하게 사시는 것도 이모가 딸자식 잘 되라고 열심히 사랑하고 기도를 하신 덕분이라고 알려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 이모 다음 주쯤에 찾아뵐게요"
" 그래 나도 너 보고 싶다"

칠순이 넘기신 이모를 빨리 뵈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