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데, 싸서 불편한 차

아이오닉5를 13만 km 타고, BYD 씨라이언7으로 옮겨온 심리

by 펠라고스

아이오닉 5를 탔던 기간이 꽤 길었다. 정확히는 13만 킬로미터를 넘겼다. 전기차를 체험해본 수준이 아니라, 전기차로 일상을 살았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출퇴근은 물론이고, 장거리 이동, 차 안에서 일하는 시간, 가족과 이동하는 시간까지 대부분을 아이오닉 5와 함께 보냈다. 그래서 이 차에 대해서는 단순한 인상이 아니라, 축적된 경험이 있었다.

아이오닉 5는 좋은 차였다. 적어도 전기차라는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잘 만든 차였고, 한국 도로 환경에 잘 맞는 플랫폼이었다. 전기차 특유의 정숙함, 즉각적인 토크, 그리고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감되는 편안함도 분명했다. 다만 시간이 쌓일수록, 그리고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보이기 시작한 것들도 있었다. 공간 대비 체급의 한계, 하체에서 오는 아쉬움, 옵션과 가격 사이의 간극 같은 것들이다.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던 부분들이, 10만 킬로를 넘기면서 점점 또렷해졌다.


그 무렵부터였다. ‘다음 차’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조건은 명확했다. 전기차여야 했고, 공간은 더 넓어야 했고, 장거리 주행이 많으니 승차감과 안정감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연간 3만 킬로 가까이 타는 사용 패턴에서, 비용과 효율이 계속해서 납득되어야 했다. 보여주기 위한 차가 아니라, 타고 다니는 시간이 편해야 하는 차였다.


그 과정에서 BYD의 씨라이언 7을 보게 됐다.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반신반의였다. 중국 브랜드라는 점도 그랬고, 가격표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가격에 이 구성이 말이 되나?”였다. 의심이 먼저 들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봤다. 크기, 플랫폼, 서스펜션 구조, 배터리 구성, ADAS 사양을 하나씩 뜯어봤다.

차체 크기는 전기차 기준으로 보면 GV70 일렉트리파이드 급이었다. 실내 공간도 그에 준했다. 하체를 보면서 잠시 멈칫했다. 전륜 더블 위시본. 요즘 국산 전기차 중형급에서 쉽게 보기 힘든 구성이다. 멀티링크 후륜, 기본으로 깔린 주행 보조 시스템들, 그리고 배터리 용량과 전비까지. 스펙을 하나씩 놓고 보면, 이 차는 ‘대중 브랜드 중형 전기 SUV’라기보다는, 분명 한 체급 위를 향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비교가 됐다. 만약 이 차에 현대 로고를 붙이면 얼마일까. 아이오닉 5는 이 차보다 작고, 하체 구성도 단순하다. 그럼에도 옵션을 어느 정도 넣으면 6천만 원을 훌쩍 넘긴다. GV60은 더 작지만, 옵션을 맞추면 8천만 원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체급, 이 공간, 이 하체 구성에 GV70 일렉트리파이드라는 이름을 붙이면 가격은 어디로 갈까. 냉정하게 봐도 8천만 원 아래로 내려오기 어렵다. 독일 브랜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지점에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가성비가 좋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느낌이었다.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 차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가격이 잘못 책정된 것처럼 보인다”는 인상에 가까웠다. 이 차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던 가격과 브랜드에 대한 기준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타기 시작하면서 그 감정은 더 분명해졌다. 주행 질감은 아이오닉 5보다 한층 차분했고,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체급 차이를 숨기지 않았다.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간의 여유와 하체의 성향이 주는 편안함이 누적됐다. 전기차 특유의 즉각적인 반응은 유지되면서도, 과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타도,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해도 부담이 없었다.


이쯤 되니 생각이 하나로 모였다. 이 차는 분명히 ‘나에게 맞는 차’였다. 내가 원하는 사용 조건, 주행 패턴, 그리고 일상에 필요한 편안함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맞아떨어졌다. 아이오닉 5를 13만 킬로 타면서 알게 된 전기차의 장점과 한계를, 씨라이언 7은 한 단계 위에서 정리해 놓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이 차가 정말 문제라면, 그 문제는 차가 아니라 다른 데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차에 대한 만족도는 분명히 높았는데, 마음 한쪽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다. 불편함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지도 않은 감정이었다. 주행 성능 때문도 아니었고, 공간이나 옵션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탈수록 더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차가 아니라, 차를 둘러싼 어떤 공기 같은 것이었다.

한국에서 차는 여전히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차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설명해버리는 물건이다. 어디쯤 와 있는 사람인지, 어떤 선택을 해온 사람인지, 그리고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는지까지 은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무슨 차 타세요?”라는 질문은 사실 차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그 사람의 현재 위치를 묻는 질문에 가깝다.

아이오닉 5를 탈 때는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국산 전기차, 무난한 선택, 튀지 않는 차. 누가 봐도 설명이 필요 없는 선택이었다. 특별한 평가도, 특별한 해석도 붙지 않는다. 그냥 “전기차 타는 사람이구나” 정도에서 끝난다. 편했다.

그런데 씨라이언 7은 다르다. 이 차는 설명이 필요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한 번 더 쳐다보고, 아는 사람은 묻는다. “이거 중국차 아니야?”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 질문에는 호기심도 섞여 있고, 약간의 의심도 섞여 있다. 때로는 은근한 평가가 함께 묻어 있다. 이 차가 좋으냐 나쁘냐보다, “왜 이걸 선택했느냐”가 더 궁금해지는 차다.

여기서 묘한 인지부조화가 생긴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 차는 싸다기보다는 ‘비정상적으로 효율적’에 가깝다. 만약 이 구성 그대로 현대나 제네시스, 혹은 독일 브랜드 엠블럼을 달고 나왔다면 가격이 훨씬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가격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이 차를 한 단계 아래에서 보려는 경향을 보인다. 싼데 좋은 것은 여전히 불편한 조합이다.


이건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다. 꽤 오랫동안 학습된 집단적인 인식에 가깝다. 우리는 오랫동안 “비싸면 좋고, 싸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공식을 써왔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 공식이 꽤 잘 맞아떨어졌던 시기가 길었다. 선진국 제품은 비쌌고, 실제로 좋았다. 후발국 제품은 쌌고, 품질도 낮은 경우가 많았다. 이 경험이 축적되면서, 가격은 품질의 대리변수가 됐다.


문제는 기술과 제조 구조가 그 공식을 먼저 버렸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은 이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밀어붙인 나라다. 배터리, 전기차 플랫폼, 제조 자동화, 규모의 경제. 이 네 가지가 겹치면서, ‘싸지만 나쁘지 않은’ 단계를 지나 ‘싸고 좋은’ 영역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의 인식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서 불편해진다.

프랑스나 독일 브랜드는 지금도 비싸다. 비싸기 때문에 용서받는다. “그래도 명품이잖아”라는 말 한마디로 많은 것이 정리된다. 반면 중국 제품은 좋다고 해도 싸다. 싸기 때문에 의심받는다. 이 차이가 묘한 역설을 만든다. 좋은데 싸서 불편한 상태. 바로 그 지점에 씨라이언 7이 있다.


이 불편함은 사실 나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실속을 중시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회적 신호를 관리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 나는 타는 시간이 편한 차를 고르는 사람인가, 아니면 타고 내렸을 때의 해석까지 계산해야 하는 사람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과시하는 쪽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차를 고르는 성격도 아니다.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타고,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몸이 덜 피곤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연간 3만 킬로를 넘게 타는 입장에서, 주행 질감과 유지 비용이 중요한 건 너무 자연스럽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씨라이언 7은 꽤 명확한 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은 늘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시선 속에서 움직인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누군가의 한마디, 짧은 표정, 질문 하나에 괜히 생각이 이어질 때가 있다. “굳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기도 한다. 이건 후회라기보다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에 가깝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이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옅어진다는 점이다. 타면 탈수록, 이 차는 나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만족감은 쌓이고, 설명해야 할 필요성은 점점 줄어든다. 결국 매일 차를 타는 건 나 자신이고, 그 시간을 보내는 몸도 나 자신이다. 남의 시선은 잠깐이지만, 운전석에 앉아 있는 시간은 매일 반복된다.


이쯤 되면 생각이 정리된다. 이 차는 내 선택을 끊임없이 변호하게 만드는 차가 아니라, 내 기준을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차다. 그리고 어쩌면, 이 불편함 자체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의 징후인지도 모른다. 가격, 브랜드, 원산지로 세상을 나누던 방식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신호 말이다.

씨라이언 7은 좋은 차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차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제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차보다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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