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가 나를 자꾸 뒤쫓아오는 거지.
나는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평을 자주 듣는 편이다. 패션이나 음악 취향 이런 걸 제외하고 말이다. 사람들에게 얼리어답터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내가 스스로 생각해 봐도 나에게 뭔가 앞으로의 유행과 트렌드를 잘 맞추는 능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트렌드를 잘 쫓아다니는 게 득이 될 때도 있었고, 실이 될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확률은 반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누군가의 ’그럼 주식을 해보시면 어때요? 미래를 잘 예측하면 큰돈 벌 수 있는 게 주식인데.‘라는 말에 홀려 주식에 큰돈을 넣었다 크게 망했던 것으로 보아 생각만큼 큰 도움이 되는 능력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내 능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거나.
대학 선택을 할 때도 나는 트렌드를 쫓았다. 나는 앞으로 교사/공무원의 인기가 높아질 것을 확신했다. 아버지가 당시 나름 안정적인 대기업이었던 제철소에서 해고되는 걸 보고 느낀 생각이었다. 그때가 직업 패러다임이 대기업에서 공무원으로 변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내가 입학한 해는 아니었지만 그다음 해에 우리 과는 전국 최고 경쟁률을 찍었다. 버스의 라디오에서 입시 결과를 말해줄 때 우리 과의 이름이 나와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덕분에 임용시험의 경쟁률도 하늘을 뚫었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경쟁률 앞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느꼈는지.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혼자서 연구하던 것이 유튜브였다. 생각해 보면 교사가 하는 일이 유튜버랑 무슨 차이가 있겠나 싶었다. 애들 25명 교실에 모아놓고 우스갯소리 하는 거나, 실시간 방송에 사람 모아놓고 우스갯소리 하는 거나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았다. 유명 BJ들이 웃긴 이야기 하나 할 때마다 별풍선이 펑펑 터지는 것처럼 우리도 애들 한번 웃길 때마다 돈을 벌었으면 벌써 큰 부자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쉽게 고백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지만 진짜로 유튜브 채널도 하나 만들었다. 나름 수업하는 영상도 몇 개 편집해서 올려봤는데 조회수 25 정도에서 그냥 영상 지우고 채널을 내렸다. 생각해 보니 유튜브에 나보다 웃긴 사람들이 넘쳐나는 데다가 학교 수업을 유튜브까지 와서 들을 리가 없지. 그럴 시간이면 차라리 EBS 인강을 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였다. 정확한 판단이었고 쓸데없는 허튼짓으로 흑역사로 남을 일을 코로나19가 살렸다. 어쩌다 보니 코로나19가 되어 원격수업이 필요해졌고 나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전혀 의미가 없었을 원격 수업의 장비 세팅, 유튜브 채널 개설 등을 경험해 본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코로나19 시절 고생은 꽤 했지만 나름 트렌드를 잘 쫓아가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꽤나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보니 나는 또 트렌드를 쫓아가고 있다. 내 교직 생활에 큰 문제가 있어서 일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기간제교사라서 그만둘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교사 그만두고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한 해에 교육에 큰 이슈가 여럿 발생하고 나니 내가 왜 학교를 그만두게 됐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잘 생각했다거나 너에게 잘 어울린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본의 아니게 얼리어답터 취급을 받게 된 일이 여럿이었다. 아이폰을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제일 처음 개통한 것도, 혼자 술 마시기를 좋아해서 집에서 별의별 술을 홀짝이다가 위스키에 빠지게 된 것도 그렇다. 아이폰이야 그 당시에도 새 제품을 바로바로 구하기 힘들었지만 요즘은 기본 대기가 몇 주일 이상씩 걸린다. 내가 옛날에 싸게 마시던 위스키들은 이미 가격이 너무 올라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을 피트한 위스키만 주로 마시고 있다. 출퇴근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전기차를 알아보던 중 테슬라가 압도적인 할인을 하는 바람에 모델 3을 구입하게 된 것도 그렇다. 취미로 시작한 캠핑도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늘어 텐트값이 해마다 최고가를 너무 쉽게 경신하고 있다. 지금은 웬만한 새 텐트는 1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마저도 품절이다.
특별히 트렌드를 쫓을 생각으로 한 일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게 자꾸 유행이 되고 유행이 되니 사람이 늘어 오히려 나 같은 사람들이 힘들다. 나는 꽤나 마이너한 취미와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지금 꿈꾸는 건 전원주택이다. 시골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덜 혼잡한 곳에 내 취향의 집을 짓고 이층엔 내 서재와 벽난로를 넣고 싶다. 2층은 유리창 넓게 해서 일하는 중에 자연 풍경을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차고도 하나 지어서 캠핑 짐들을 다 거기에 넣어놓고 훌쩍 짐 실어서 어디론가 쉽게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 꿈도 또다시 트렌드가 돼버리면 어쩌지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중이다. 땅 더 비싸지기 전에 시도를 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