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로 집부터 구햇수다

초보 경찰관의 제주도 정착기-3

by 임준형


“집과 차에 들어가는 돈을 아껴야 돈을 모을 수 있다.”


첫 발령지를 제주도로 결정하면서 주변 어른들과 부모님께 주야장천 들었던 얘기다. 나중에 결혼도 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20대 때 돈을 열심히 모아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집과 차에 들어가는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특히 집에 대해 강조하셨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부대에서 보내게 될 만큼 주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이상의 가치 추구는 사치라고 하셨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부분 옳은 말씀이었지만, 당시 늦은 사춘기를 겪던 나는 쉬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때쯤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두였던 ‘워라밸’이라는 키워드가 내게는 매우 중요하게 느껴졌다. 퇴근하고 피로한 몸을 이끌고 돌아가는 공간이, 단순히 목적 달성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길 바랐다. SNS에 있는 특색 있는 조명과 부드러운 러그로 방을 꾸미고 싶었고, 책장에는 멋진 피규어와 레고 모형들을 전시해 두고 싶었다. 자취생의 로망인 요리하는 삶을 위해 주방도 넓었으면 했고, 충분히 넓은 방에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기를 설치해 퇴근 후 지금까지 못해왔던 게임을 하다 잠드는 낭만을 꿈꿨다.


하지만 얇은 지갑과 보잘것없는 월급을 고려했을 때, 돈이 들지 않는 관사에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유튜브를 보면 구옥을 자신의 개성을 살려 보수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 무너질 것만 같은 외관과 달리 화려한 내부를 자랑하는 자취방 사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관사의 연식이 꽤 오래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지만, 나도 이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인 만큼 방에 어울리는 소품들만 잘 구매한다면 충분히 예쁘게 꾸밀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즉, 부모님의 바람처럼 월급을 아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할 것이다) 그래서 관사에 거주하겠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크게 고민하지 않고 기회를 승낙하였다.


에어비앤비 사장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려주신 곳에 위치한 ‘관사’라는 건물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낡은 외관을 자랑했다. 우선 위치부터 말하자면,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까지 도보로 20분 거리였고 주변은 아무 건물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3층짜리 낮은 빌라가 총 네 개 있었는데, 건물 외벽으로는 담쟁이가 정리되지 않은 채 끝없이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입구에 위치한 계단에는 언제 날아왔을지 모를 낙엽이 쌓여 있었고, 대부분의 창문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관사 거주 인원도 몇 되지 않아 보였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배정받은 방은 깨끗할 거라는 기대를 잔뜩 품고 비밀번호를 누른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배정받은 관사는 1층으로, 커다란 거실과 방 하나, 넓은 베란다, 그리고 주방과 화장실을 갖춘 15평 정도 되는 공간이었다. 입구에서 바라봤을 때는 생각보다 커다란 데다가 이전 세입자가 놔두고 간 옷장과 서랍장, 매트리스 등이 있었기에 매우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이 정도면 2년 간 충분히 멋있게 살 수 있을 거야.’라고 신발을 벗고 가까이서 방을 구경하자마자,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전혀 청소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화장실 문은 습기로 전부 썩어 있었고 타일이 깨진 곳도 여기저기 보였다. 주방에는 버려진 식기류와 몇 년은 묵힌 듯한 기름때로 가득 차 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웠었는지 벽지와 장판은 곳곳에 찢어진 흔적이 있었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구석구석 거미줄이 늘어져 있었다. 방문은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지 여닫을 때마다 ‘끼이익’ 하며 비명을 질러 댔고, 놔두고 간 줄로만 여겼던 옷장과 서랍장은 사실 나사가 빠져 있어 제대로 열리지 않는 하자 있는 제품들이었다.


「오늘의 집」에 등장할 만큼 멋있는 집으로 탈바꿈시키려던 나의 원대한 계획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사태는, 단순히 깨끗하게 청소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근무가 없는 날 천천히 청소만 해도 반년은 지나갈 것만 같았는데, 망가진 곳들을 수리까지 하다가는 ‘근무-집 정리’만 반복하다 2년이 흘러갈 것만 같았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냉정을 되찾았다. 어떻게든 이 집을 단기간에 살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시켜야 했다. 앱에는 올리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퇴근하면 돌아오고 싶은 공간 정도로는 만들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최고의 제주도 전문가이자 건축·하자 보수 분야 최고 전문가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알아서 집을 구한다고 했는데 죄송해요. 관사를 배정받아 왔는데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요. 청소나 보수 공수가 조금 필요할 것 같은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진 찍어서 보내봐라. 보고 연락할게.”


관사 이곳저곳을 빠짐없이 휴대전화로 촬영하여 아버지에게 전송하였고, 잠시 후 ‘내일 오전에 청소 업체, 오후에 장판·도배 업체에서 다녀갈 거다. 오늘만 지내봐.’라고 답장을 주셨다. 역시 아버지의 인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스펙터클할 내일을 위해서는 잠을 청해야 했기에, 간단히 짐을 푼 뒤 거실 바닥 먼지를 쓸고 닦아낸 후 미리 구매해 둔 얇은 이불을 깔았다. 택시를 타고 시내에 있는 다이소를 방문해 간단한 청소 도구와 생필품을 구매했고, 돌아오는 길에 이마트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도 함께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식사를 마친 후 미리 깔아 둔 얇은 이불에 누워 다시 이것저것 소품들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저쪽 방은 턴테이블을 구석에 놓고 책장을 설치해서 책방으로 쓸 테야. 거실 한쪽 벽면도 책장을 설치하고 그 앞에 책상을 놓아야지. 베란다에는 각종 식물을 놓고 키우면 될 것 같고……’. 이런 상상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잠들어 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말씀하신 대로 정말 청소 업체에서 집을 방문하셨다. 전문가 느낌 그득한 어머님들께서는, 잠시 집을 비워주면 새집처럼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셨다. 말씀대로 주변 공원을 산책하다 돌아와 보니, 어제 봤던 그 집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창틀이나 바닥의 먼지는 기본이고, 미세한 기름때마저도 정말 깔끔하게 청소해 주셨다. 화장실 타일 사이사이 피어 있던 곰팡이들도 전부 제거되어 있었고, 베란다 창문도 이제는 밖을 볼 수 있을 만큼 깨끗했다. 오후에는 전문가분들이 오셔서 도배도 전부 새로 해주셨고, 찍힌 장판도 완벽히 복구해 주셨다. 썩은 화장실 문은 여전했지만 깨진 타일은 완전히 복구되어 새 화장실처럼 느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을씨년스럽던 집이, 하루 만에 떠나기 싫은 아늑한 공간으로 변했다.


왠지 2년간 관사에서 잘 거주했고, 예쁜 소품들로 집을 가득 채워 어플에 예쁜 집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쉬는 날이면 작은 방에서 LP로 음악을 틀어 놓고 독서를 했다는 얘기로 끝맺음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정확히 일주일 뒤 나는 관사에서 나왔다. 새벽에 발견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미, 거주하는 사람이 몇 없어 괜히 으스스한 분위기, 제주도의 차가운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창문 따위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놀랍게도 집의 상태와는 전혀 상관없는, 교통편 때문이었다. 경찰서에서 버스로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배차 간격이 1시간을 넘어선다는 사실과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지역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당장 차를 살 계획이 없었기에, 두세 번 출근을 해본 끝에 관사에서 출퇴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미리 확인했어야 하는 내용인데, 마음만 앞서 나간 사회 초년생의 어리숙함 때문에 돈만 낭비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경찰서에서 도보 5분 거리의 위치에 집을 구했다. (정확히는 내가 근무하는 동안 아버지가 전부 알아봐 주셨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게 후회된다) 제주도는 ‘연세’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매월 월세를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 당시에 약 11개월치에 해당하는 연세를 선 납부하고 1년을 거주하는 개념이다. (제주도의 오랜 풍속 중 하나로 특정 기간에 집안의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 비는 기간에 이사를 하는 풍습 때문이라고 하나, 전해 들은 얘기로 정확하지 않다.) 새로 구한 집은 연세 550만 원으로, 4층 빌라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주방을 겸하는 넓은 거실과 화장실, 그리고 침대와 옷장 등이 구비된 작은 방 하나로 구성된 집이었다. 관사와 달리 깔끔했고, 정돈되어 있었고, 출근이 늦어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이제 나의 경찰 생활이 진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작은 10여 평의 1.5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