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경찰관의 제주도 정착기-1⌋
“여러분을 제주까지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비행기의 작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기장님의 따뜻한 목소리도 나의 경계심을 풀어 놓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금요일 저녁 제주도로 향하는 김포공항발 비행기 속 왁자지껄함은 설렘을 품고 있었다. 옆 좌석 커플은 2박 3일 짧은 여행을 하는 듯하였다. 태블릿 PC로 지도와 계획표까지 봐가며 얘기를 나누는 탓에, 그들이 공항 근처에 숙소를 잡았으며 방문해야 할 카페들과 식당까지 이미 다 정해뒀다는 사실을 엿듣는 꼴이 되고 말았다. 바로 앞 좌석의 동년배로 보이는 한 남성은, 커다란 헤드셋을 끼고 주변에서 다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걸그룹 음악을 듣고 있었다. 헤드셋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빠른 비트 소리에 어깨가 절로 위아래로 움직일 것만 같았다. 적어도 평소 같았더라면 말이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양쪽 귀에 차례대로 꽂았다. 플레이리스트를 뒤적거리며 어떤 노래를 들을지 고민하던 찰나,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눈에 들어왔던 뮤직비디오가 생각났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 ‘태연 삼다수’라고 검색하자, ‘제주도의 푸른 밤’이라는 노래가 가장 상단에 떴다. 두려운 감정은 잠시 잠시 내려놓고 노래 가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침 비행기도 승객들의 탑승이 끝났는지 활주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앞으로 살 집도 구하지 않았고, 무슨 짐을 챙겨야 할지 몰라 28인치 캐리어 하나만 챙긴 채 시작한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바다가 보이는 네모난 창문 앞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순간적으로, 제주도를 선택한 스스로를 칭찬할 뻔했다.
비행기가 점점 속력을 높이더니 이내 이륙하여 공중에 붕 떴다. 순간, 유난히 가벼웠던 캐리어가 괜스레 마음에 걸려 캐리어에 뭘 챙겼는지 복기했다. 아뿔싸. 이틀 뒤면 제주경찰청장님 앞에서 발령 신고가 예정되어 있는데, 정복에 부착해야 할 명찰을 챙겨 오지 않았다.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톰 크루즈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 높이에서는 뛰어내리지 못하겠지. 큰일이다..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 떠나요 제주도 푸르메가 살고 있는 곳 /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갑작스레 제주행을 결심한 건 2주 전쯤이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실습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이자, 경찰관으로서의 첫 근무지를 선택해 지원하는 날이었다. 그날 충동적으로 제주도 발령을 결정한 탓에, 섬으로 향하는 금요일 저녁 항공권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캐리어가 없어 쿠팡 검색 상단에 노출된 저렴한 녀석으로 하나 구매하였고, 인재개발원에서 바로 출발하느라 옷 몇 벌과 정복, 정모, 단화, 그리고 애정하는 책 몇 권 외에는 짐도 없었다. 숙소는 가서 구해도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3일 정도 지낼 수 있는 방을 에어비앤비로 급히 구했다. 그렇게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나는 도망치듯 떠나왔다.
원래 나의 계획은, 서울이나 울산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울산은 나의 고향이자 가장 친숙한 곳이기에 좋은 출발이 보장되는 곳이지만, 괜스레 집에서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에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은 나의 애매한 성적 탓에 비선호 지역으로 발령이 날 것이 뻔했는데, 그럼에도 서울에서 근무해야 향후 경찰청에서 근무도 해보고 승진도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다행히 발령지를 결정하기 전, 나 같은 우유부단한 신입 경찰관들을 위해 2주간 서울 소재 기동단에서 실습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경찰 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에, 실습에서 느끼는 바를 토대로 첫 근무지를 정해야겠다고 내심 다짐했다.
기동대 근무 환경은 생각보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서먹서먹했던 의경 대원들과도, 또래라 그런지 함께 땀을 흘리며 훈련하고 근무하다 보니 금방 가까워졌다. 알아듣기 힘든 무전 용어들도 점차 익숙해졌고, 야간 당직 근무도 체력적으로 버틸 만했다. 무엇보다 휴무일에 즐긴 서울 구경이 너무 즐거웠다. 처음 받아본 월급으로 닌텐도 스위치 게임기도 구매했고, 평소 느껴보지 못했던 시끌벅적한 서울의 활기가 좋아 충분히 즐기려 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는, 비선호 부대라 하더라도 서울에서 근무해야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실습 마지막 날이었던 2018년 4월 7일, 새벽부터 기동 버스에 탑승해 서울역 인근 경비 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전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등 혐의에 대하여 1심에서 징역 24년이 선고된 터라, 보수 정당 지지자들의 거센 집회가 예고되어 있었다. 다른 분들은 이미 집회가 익숙한 듯 현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잠을 청했지만, 아직 실습생인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예상했던 대로 수많은 인파가 우리를 마주했지만, 다행히 걱정했던 수준의 소요 사태는 없었다. 집회는 꽤나 시끄러웠지만 과거에 비해 훨씬 민주적이었고, 경비 업무 중인 경찰과 대치하는 인원도 보기 어려웠다. 그렇게 대기와 경비 업무를 몇 시간 동안 반복하다 보니 집회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고, 시위대는 서울역에서 광화문까지 행진을 시작하였다. 행렬의 선두 그룹 관리를 맡은 우리 부대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마지막 한 시간만 잘 버티자고 서로 격려하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날카로우면서도 차분했던 시위대의 기류는,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천막의 유가족들 및 관계자들(이하 ‘천막 측’)과 마주하며 급박하게 바뀌었다.
갑작스레 흥분하기 시작한 시위대와 천막 측은, 처음에는 욕설과 고함을 외치더니 급기야 서로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우왕좌왕하는 나를 의경 대원으로 오인한 한 경찰관의 밀침과 지시 탓에, 나는 간부 모자를 쓰고서는 보호 장구 하나 없이 의경 대원들과 함께 양측의 중간에서 상황을 중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누군가 휘두른 지팡이에 두 차례 머리를 가격 당하였다. 눈물이 핑 돌고 통증이 느껴졌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진정시키느라 나를 돌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채증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가해자는 혼란을 틈타 사라졌고, 경찰관이었던 피해자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나중에 상황이 다 끝나고 보니 머리에는 건드리기만 해도 아픈 커다란 혹이 나 있었고, 팔 곳곳에는 사람들의 거친 손길에 의해 생긴 멍 자국이 영광의 상처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충격이 컸다. 내가 상상했던 경찰관은 이렇지 않았고, 꿈꾸던 서울에서의 삶은 더더욱 아니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익명의 가해자에게 맞아가면서까지 경찰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로 나는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가장 일이 적은 기동대가 어딘지 물어봤고, 차로 도달할 수 없는 제주도에서 근무하면 서울로 지원 나올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평화의 섬 제주도라면 집회도 있을 리 만무하였다. 인재개발원에 돌아간 후, 나는 모두가 난색을 표하던 제주도 근무를 선택하였고, 그렇게 나는 경찰 인생은 시작부터 도전 대신 도망으로 기록되었다.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착륙했고,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오니 커다란 야자나무만 나를 반겨줬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무작정 정차된 택시를 탔다. 기사님께 나의 발령지인 제주동부경찰서로 가달라고 부탁드리고는 창문 밖을 구경해 보았다. 나만 빼놓고는 다들 다가오는 여정에 기대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부러워서, 현실에서 도망 나온 스스로가 한심해서 눈을 꼭 감고 목적지로 향했다. 눈을 감은 채로 사실 후회하고 있었다. 벌써 외로웠고, 말로만 듣던 제주도의 텃새가 느껴지는 듯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택시에서 하차해 제주동부경찰서 방범순찰대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점호 준비를 하고 있는 듯, 의경 대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청소 도구를 들고 분주히 건물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생각보다 낡은 건물의 외관에 실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감이 갈 것만 같아 안도하였다. 그러다 문득 낡은 경찰서 건물과 그 뒤에 위치한 2층 높이의 오래된 기동대 건물이, 사실은 얼마나 오랫동안 환하게 빛나며 제주도를 지키고 있었을지 새삼 실감 났다. 그리고 그곳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심지어 주차된 차량 밑에 숨은 고양이와 매섭게 몰아치는 바닷바람마저 조화롭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나는 유일한 낯선 이방인이었다.
⌈초보 경찰관의 제주도 정착기⌋ 시리즈는 첫 발령지로 제주도를 택했던 저의 2년을 추억하는 에세이입니다.
글은 매주 화요일, 금요일에 업로드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