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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요정 Feb 09. 2021

썸의 시작은 콩트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개팅

겨울이 끝나고 조금은 차가운 봄이 시작될 무렵,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우리의 썸은 시작되었다.


지금은 집에서 주문해서 먹는 '서가 앤 쿡'이라는 곳을 처음 가 본 날이었다.

어디서 볼까, 뭘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파스타나 리소토를 좋아하니까 한 번 가보자고 했다. 한 음식이 2인분 이상 나오는 줄도 모르고.. 치킨 필라프였던 것 같다. 음식 하나 시켜놓고 양이 많다며 놀라고는 모히토를 마셨다. 그날따라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거의 커플이었다.

둘이 어색한 척 "뭐 좋아하세요?"라고 소개팅 흉내를 내다가 결국 못하겠다며 내가 두 손, 두 발 들었다.


우리가 처음 알게 된 건 내가 아주 풋풋했던 대학교 시절이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고 그는 복학생으로 3학년이었다. 실습이 있는 과목에서 만나 우연히 같은 조가 되어 알게 되었다. 원래 같은 과도 아니고 복수전공으로 우리 과 수업을 듣고 있다고 소개한 그의 첫인상은 그냥 'So Simple'이었다.

당시 나는 2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가 있는 상태였고, 그는 연인은 없었지만 나를 아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었다. 나 역시 그저 아는 오빠가 한 명 늘어났다고 여겼다. 복수전공이고 학년이 같아서인지 겹치는 수업이 많았고 수업에 들어가면 마주치는 일이 잦아져서 조금 더 친해졌던 것 같다. 한 번은 학교 내에 있는 보드게임 카페에 가서 음료를 시켜놓고 보드게임을 하면서 두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남들은 데이트 아니냐며 그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야 물었다. 정작 우리 둘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나 자신, 내 남자 친구 이 정도를 빼놓고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역시도 사람 관계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이어서 여사친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썸녀는 한 명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채 2년 동안 친한 오빠, 친한 동생으로 지냈고 그 상태로 졸업을 했다.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나는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는 취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4학년 2학기 마지막 학기로 대부분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 취업을 준비했었다. 나는 대학원을 진학할 예정이어서 부족했던 학과 수업을 더 듣고 싶어서 학점을 꽉꽉 채우면서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말이다. 준비하는 것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레 연락은 뜸해지다가 끊겼다. 어쩌다 연락을 하게 되었을 때도 학교에 그가 와서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같이 포켓볼을 치며 하루를 보냈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단순했던 관계만큼 반응도 단순했기에 그저 하루 신나게 놀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딱 그 정도였다.


단순하기 그지없던 우리의 관계가 변한 건 그에게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되면서부터였다.

나는 대학원을 그만두고 인턴, 계약직으로 일을 하다가 건강 상의 문제로 본가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사는 게 더 익숙했던 탓에 본가에서의 생활이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이 점점 커졌다. 이럴 때에 나는 거의 매번이라고 할 정도로 여행을 선택했다. 집에는 수능을 끝낸 막내동생이 있었는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우리는 꿍짝이 잘 맞는 편이라서 같이 고민을 하다가 일본 여행을 선택했다.


여행을 떠나면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는 편인데, 다들 사회초년생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가 없어 사진을 보내 줄 사람이 없었다. 친구 목록을 쭈욱 살펴보다가 이름이 눈에 띄어서 오랜만에 안부도 묻고 여행 사진도 보내자 싶어서 연락을 했다. 그날부터 여행을 마치는 날까지 연락을 이어갔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기념품도 줄 겸 한 번 보자고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택배로 보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맞지 않는 동안 이어간 연락은 그를 변하게 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말했다.

'너를 잡고 싶어 졌다고.'말이다.

내가 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나랑 연락을 하면서 그는 나에게 감정이 생겼다며 연애에 대해서 언급을 하기 시작했고, 얼떨떨한 반응으로 이야기를 들은 나는 설렘과 약간의 들뜸이 생겼다.


썸을 타기 시작하고 첫 만남.

그가 의외의 말을 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소개팅하는 것처럼 해볼래?"

살면서 한 번도 소개팅을 해본 적 없어서 아쉽기도 했고 살짝은 분했다고 표현하고 싶은 나의 대학생활을 그가 알고 있었기에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던 것 같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내 입장에서는 '어? 참신한데? 재미있겠는데? 이 오빠 의외네?'라는 반응으로 바로 콜을 외쳤다.


D-day는 막내동생의 졸업식.

평소 외출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겸사겸사였나 싶다. 사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처음 보는 서로의 코트 차림에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가 먼저 나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고, 나는 소개팅이라는 연극이 시작되었구나 생각하며 "네,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했다. 처음 만났을 때 말고는 해 본 적 없는 존댓말을 하면서 모르는 척 연기를 하려니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듯해서 내가 먼저 도저히 못하겠다며 포기 선언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 콘셉트는 한 편의 콩트로 끝났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은 옆에서 폰 게임을 하며 떠드는 내 말에 대충 '응~ 응~.'이란 답을 해주며 같이 살고 있다.

올해로 8년 차.

내 신랑이라는 역할로 열심히 구박받으면서도 나 없이는 못 살겠다고 하면서.


10년도 더 전에 처음 알게 되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연을 떠올리다 '저 사람이 나한테 참 진심이었구나.'라고 새삼스레 느끼며. 이제 글을 다 썼으니 영양제 챙겨 먹었는지 잔소리를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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