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둘이서도 잘 놀아요.
# 자주 듣는 질문 두 가지
결혼을 하고 처음 몇 년 동안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왜 결혼을 결심했어요?'랑 '둘이 뭐하고 놀아요?'라는 질문이었다.
이 두가지의 질문에 나의 답은 항상 단순하고 명쾌했던 것 같다.
왜 결혼을 결심했냐는 질문에는
이 사람을 믿어도 될 것 같아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결혼이라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깔려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부분은 신뢰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신랑은 누구에게나 신뢰를 주는 스타일이지만
내가 가장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때는,
스스로의 인생을 찾지 못하고 한참 방황을 하고 있던 때였다.
나조차도 나를 못 믿겠고 뭘 해야할지 몰랐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에도 많이 나갔고 술도 많이 마셨다.
방황하는 청춘들의 필수코스는 술인 것 같다.
여튼 그렇게 방황하며 힘들어하는 나를 끝까지 지켜보고 기다려준 사람.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결혼결심을 하게 되었다.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프로포즈를 받지 못했다. 아직도 아쉽다.)
신혼 몇 년을 보내면서 신랑의 근무가 이틀 정도 쉬고 이틀반 정도는 시설에 있는거라서
며칠은 둘이 붙어있고 며칠은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내가 항상 집에서 혼자 있으니까 신랑은 쉬는 날이면 자연스레 내 옆에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보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외로웠을 나를 위해서 항상 붙어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주변 지인들은 안지겹냐면서 '둘이 있으면 대체 뭐해?'라고
질문을 돌아가면서 했고, 나는 주저 없이 이야기 했다.
# 동전 저금통을 사용하는 방법 1
우리집에는 저금통이 통전을 넣는 용으로 두 개가 자리를 잡고 있다.
다이소에서 세트로 각자 하나씩 샀고, 각자 동전이 생기면 넣는 방식이다.
동전이 좀 들었다 싶으면 우리는 각자 저금통을 가지고 자리에 앉는다.
이 순간은 긴장이 감도는 시간이다.
둘의 동전을 걸고 맞고를 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화투패도 겨우 맞추고 점수를 세는 정도의 실력이지만,
신랑은 시댁에서 틈만 나면 고스톱을 쳤기 때문에 거의 숙련자에 가깝다.
초보와 숙련자의 대결이지만 우리는 진지하다.
저금통에서 동전으로 일정 금액을 꺼내서 하다가 소진이 되면 게임은 끝난다.
뭐 거의 신랑의 우세지만 야몰차게 나의 귀한 동전을 다 가져가지는 않고 조금 나눠준다.
다 잃지 않은 것으로 감사하며 마무리를 한다.
# 동전 저금통을 사용하는 방법 2
우리는 신혼 초에 월세에 살면서 신랑이 외벌이를 하면서 생활을 해야했기에
웬만하면 생활비를 줄이려고 정말 아등바등했었다.
어떤 달은 한 달에 20만 원 정도만 쓴 적도 있으니 얼마나 허리를 졸랐는지 감이 오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을 엄청 먹어대는 신랑을 위해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또르띠아를 이용해 고르곤졸라 피자를 만들고, 망고퓨레로 망고스무디를 만들어 먹는 등
정말 왠만한 것은 집에서 다 만들어서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우리에게 여윳돈은 만들어지지 않는게 당연한 것이었고,
가끔은 스트레스에 힘들어지고 각자의 용돈도 떨어지고 생활비도 바닥을 보이면
우리는 동전 저금통을 꺼내와서 얼마 들었는지 동전을 세었다.
500원 짜리 위주로만 골라낸 후 1만 원에서 1만5천 원 정도의 금액을 맞춰서 챙기고는
그대로 동전노래방에 갔었다.
그 당시 대학가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조금만 걸어가면 카페들이 즐비하고
동전노래방 역시 한 블럭 안에 몇 개씩 있었다.
그럼 우리의 코스는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에 생수 한 병을 들고
나머지 돈으로 동전노래방에 쏟아 부어 실컷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왠지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기도 하고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기분 전환도 하고 싶어지는데,
우리는 저금통을 털어 동전노래방에서 2시간 가까이 놀고 오는게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어떻게 보면 궁핍해보일지 몰라도 조금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각자의 저금통에 모은 동전들로 하루 데이트를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지폐로 채워진 지갑을 가지고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기억에 많이 남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은 코로나로 동네에 있는 동전노래방조차 갈 수 없지만
다시 동전 털어서 갈 수 있는 날은 기다리며 동전 저금통을 채우는 중이다.
나는 현금을 쓸 일이 없어져서 저금통을 처분했고, 지금은 신랑의 저금통만 남아있다.
하이패스 설치를 하지 않아서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항상 동전이 모인다.
얼마 전에 세어봤는데 금액이 좀 모여서 다음에 또 우리만의 데이트를 할 예정이다.
# 우리만 좋으면 되는거야!
정말 옷도 안사고 신발도 안사고 사야하는건 최소한으로 줄이고
밥도 해먹을 수 있는 건 다 해먹었던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국가에서 시간외수당을 60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여 몇 십 만 원의 급여가 줄어들었지만
신랑은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둘이서도 잘 놀고 있다.
결혼 8년차. 뜻하지 않았지만 딩크족으로 사는 우리 둘.
지금은 보드게임도 하고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맛있는 녀석들도 함께 보고
요즘에는 폰게임 중에 보드게임 같은 걸 하나 시작했는데
서로 높은 레벨로 이기려고 열을 올리며 게임을 하고 있다.
보드게임도 종류별로 몇 가지가 있는데 둘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서
여전히 보드게임이 많은 곳을 가면 새로 나온게 없나.. 둘이 할 수 있는거 없나..
매의 눈으로 스캔을 하고 있다.
지금은 신랑의 직책이 높아지며 출퇴근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쉬는 날에는 어디 갔다올까? 어디 가야되는데 있던가? 하고 싶은거 있어?
서로에게 질문을 하며 쉬는 날의 일정을 잡는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을 때는 정말 둘 다 뒹굴거리며 쉰다.
날씨가 추워져서 에너지소모도 많고 매일 등산프로그램이 있어서
한 두시간을 운동하고 와서 그런지 많이 피곤해하는데
그래도 항상 저녁은 같이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린 여전히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좀 더 할 말이 많은 채로 지내도 좋을 것 같다.
둘이서도 잘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