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통과 천원짜리 한 장
정확하게 그 날이 어느 날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머리속에 남아 있는 기억을 더듬어 보건데 5살즈음인것 같다. 성내동에서 다정한 부모님과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우리집은 자동차 2대가 지나갈 정도의 골목의 가장 안쪽에 있었다.
비록 방한칸이 전부인 우리집이었지만 네가족이 함께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집은 계단을 7개 정도 올라가야 현관이 나오는 1과1/2층이었다. 벽과 문은 어떤 색이었는지 기억해내고 싶은데, 되질 않는다. 그리고 화장실은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형태였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 쪽 벽에는 온 가족을 위한 문이 4개 달린 장농이 있었고, 골목쪽을 향한 벽에는 커다란 창이 있어서 따스한 햇살이 방 안 가득 들어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창문 아래에는 TV가 놓여있었고, 그 TV위에는 내 동생과 나의 초록색과 노란색의 오리모양 저금통이 놓여있었다.
그날도 온 가족이 함께 오손도손 모여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아버지의 출근길을 배웅해주려는데, 아버지께서 기분이 좋으셨는지 지갑에서 천원짜리를 꺼내서 용돈으로 주셨다. 내 손에 얹어진 천원짜리를 보고 동생이 나도 달라고 했다. 천원짜리가 더 없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께서는 둘이 나눠 가지라면서 그렇게 집을 나섰다.
돈을 받지 못한 동생은 서럽게 울며 불며 나도나도를 외쳐댔다. 난 자연스럽게 천원짜리 지폐를 반으로 갈러 동생에게 건네주었고, 동생은 그제서야 울음을 멈추었다. 그렇게 둘로 갈라진 천원짜리는 초록색과 노란색의 오리저금통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둘로 갈라진 천원짜리가 다시 하나가 되는 장면은 아직 떠오르진 않고 있다.
: 어렴풋이 기억나는 장면이다. 마치 스모그가 뿌려진 무대처럼, 머리속에 또렷하게 그려지진 않지만 분위기라던가 조금 흐릿하지만 물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부모님의 다정한 목소리도 그려진다. 전체적으로 따듯한 느낌이다. 아침 햇살이 따듯하게 우리 가족을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떠올리고 글로 옮겨 적다보니 그날이 쨘하게 그립다.
그 따듯함, 그것은 분명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