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1
살다보면 가끔 약속이 없는 주말이 있다.
특별히 약속을 잡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종일 방구석에 있다.
딱히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아니어도 티비에 눈을 빼앗기고 몸뚱아리는 이부자리안에 고이 모셔둔다.
담배가 피고 싶은 생각도 좀처럼 들지 않는다.
딱히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다.
그저 의미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조금.. 아주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렇다고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게 그냥 흘려보낸다.
시간을
마음을
#2
별생각이 없다가 문득 오늘 아직 소리내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3
티비 프로그램을 보다가 쌩뚱맞은 순간에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할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다. 예상치못한 순간 어느 감정 하나가 훅 들어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그 순간의
감정은 대체로 슬픈 경우가 많다. 불현듯 찾아온 슬픔이 나를 채운다. 아무도 울 것 같지 않은 씬에서 눈물이 흐른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4
하고 싶은 것들이 툭툭 마음 밖으로 나와 방바닥에 떨어진다. 이것도 저것도 다시 주워 마음에 담아 보려하지만 자꾸 머뭇머뭇하게 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이 맞는지 확인을 하고 넣어야 하는데,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세세히 살펴본다. 어느 것 하나 그대로 내버리고 싶은 것이 없다. 다시 마음속으로 밀어 넣는다. 언제 또 툭툭 튀어 나오려나.
#5
창의적이지 않은, 그저 기계적으로 반복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 있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이다. 그래도 해야한다. 그런 일을 하고 있노라면, 이거야 말로 삶을 낭비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차라리 놀거나 쉬는게 훨씬 가치있다.
#6
돈이 싫다가도 너무너무 필요해지는 그런 날이 있다.
#7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은 없다. 되기 전에 포기하는 내가 있을 뿐이다. 부모님의 부재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결핍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늘밤은 그런 날이다. 나를 재정비하는 그런 날이다.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그래도 잘 지내왔다. 힘든날이 있을지라도 견뎌나가면 오늘보다 더 멋진 나로 거듭날 것이 분명하다. 그런 날이 오도록 마음을 다잡는 오늘은 그런 날이다.
#8
그런 날 향해 보여주고 있는 당신의 마음이 무척이나 고마운 그런 날이 있다. 늘 고맙지만, 유난히 고마운 그런 날이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