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1
장마가 시작되었다.
꿉꿉한 기분이 당분간 지속되겠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마음의 장마와 장마가 만나
더 우울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2
가끔은 비를 흠뻑 맞고 싶다.
비를 맞으며 땅고를 추고 싶다.
#3
쏴아아아아
빗소리가 들린다.
쏴아아아아
빗소리가 들린다.
#4
장대비가 내리면 우산을 써도
발이 젖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 처럼
어떤 관계들은
마음을 아무리 애써봐도 어쩔 수가 없다.
#5
비가 오면 좋았었다.
너와 더 가까이 걸을 수 있었다.
습한 공기를 타고 너의 향기가 느껴졌다.
평소보다 조금 더 따듯해진 너의 팔짱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던 모습도
재즈를 틀어놓고 창밖을 바라 보던 너도
#6
비가 엄청내리던 어느날
비를 맞으며 걸었던 적이 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걸었다.
빗물에 함께 흘러내려
눈물이 흐르는 줄 모를거라고 생각했다.
표정을 감출 수 없었을 텐데..
표정을 감추지 못했을 텐데..
#7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창밖에 하염없이 내리는 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땅고음악
버스는 뿌옇게 번진 불빛들을 가로질러
동네 어귀에 나를 데려다 준다.
우산을 펼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비를 맞으며 걷는 여자가 보인다.
어디까지 가세요? 같이 쓰실래요?
생각만 할뿐 묻지 않는다.
물어선 안된다.
땅고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홀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