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며칠 사이, 지인의 부모님 두 분이 소천하셨다.
우선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겨울이 오면 어르신들이 돌아가실 확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시일내에 지인의 부모님 두 분이 세상을 떠나는 일은 처음이다. 죽음에 대한 두 번의 소식은 나로하여 죽음에 관한 글을 쓰게 하고 있다.
누구나 태어나면 반드시 맞이하게 되는 죽음.
죽음은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시간에 우리를 찾아온다. 늘 그래왔고,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한 편으로 죽음은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늘 마음이 쓰인다. 그것은 죽음이 이별이기 때문이다. 반가울 수 없는 이별, 그렇기에 죽음은 우리에게 특별한 감정을 주나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을 위로하기란 쉽지가 않다. 아니, 위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나의 삶으로 아직 더 살아가야 할 그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할 뿐이다. 함께 슬퍼하고, 그 슬픔을 공감해주는 것 뿐이다. 그것을 위로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땐 위로라고 불려도 괜찮다.
퉁퉁 붓고, 발갛게 충혈 눈을 마주하면, 어릴적 기억이 소환된다. 절대 믿을 수 없는, 믿고 싶지 않았던 그 순간의 기억이 온전히 되살아난다. 그때의 내 눈과 닮아있는 그 눈을 보고 있으면, 뭐라 설명하기 힘든, 정의하고 싶지 않은 감정의 교감이 일어난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슬픈 얼굴.. 그 슬픈 얼굴이 어이없게도 조금은 반갑다. 그런 얼굴을 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온전히 드러나있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좋다.
아직까지 한 편으로 다행인 것은 그래도 대부분의 지인들은 그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이별이 아니라서, 슬픔의 깊이가 그래도 조금은 덜 깊을 수 있어서, 다행이고, 다행이다.
죽음에 대하여 온전히 익숙해질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그 어떤 죽음에도 눈물이 멈추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 세상에 와서 고인이 된 모든 사람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