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0] 목욕탕 풍경

에세이

by 김연필

간만에 마음껏 뜨거운 물로 사치를 부리고 싶어서 목욕탕에 갔다. 찜질방까지 함께 있는 목욕탕, 카드를 내밀자 아주머니는 목욕만 할 거냐고 물어왔다. 딱히 찜질방이 땡기지는 않았지만, 천원 차이에 찜질방까지 하겠다고 했다. 이어서 잠깐 누워 있다가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로비는 1층이고 남자 목욕탕은 2층이다. 엘리베이터와 계단, 선택의 기로에 섰다. 디스크로 인해 하지방사통이 있는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불편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자는 의미에 계단을 택했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던 계단이 디스크가 오고 나서 참 오르내리기 버거워졌다.


남자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가 로비에서 받은 키에 적힌 번호를 확인하고 신발장을 찾아 신발을 넣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제일 안쪽에 내가 쓸 라커름이 있었다. 키 하나로 신발장과 라커룸을 다 이용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었다. 외투를 벗고 바지를 벗으려다 상의를 먼저 벗고 바지를 벗었다. 양말을 먼저 벗을까 속옷을 먼저 벗을까 고민하다가 양말을 먼저 벗었다. 시계랑 안경도 사물함에 넣고는 탕을 향해 걸어갔다. 한쪽 옆에 흡연실이 보였고, 그 앞에 체중계가 놓여있었다. 간만에 완벽한 알몸으로 몸무게를 잴 수 있었다. 다 벗었는데도 그 숫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예상을 크게 웃도는 수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보다는 적게 나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정했다.


탕안으로 들어섰다. 열대여섯명 정도 되는 손님들이 있었다. 입구 바로 좌측으로 샤워기 자리가 있었다. 우선 샤워기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뜨거운 물이 세찬 물살로 쏟아져나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뜨거운 물이 흘러내린다. 목덜미를 애두르는 따듯한 느낌, 이 느낌은 언제나 좋다. 만족감에 기뻐하고 있는데, 물이 멈췄다. 괜찮다. 다시 버튼을 누르면 물은 바로바로 콸콸 쏟아지니 말이다. 비누를 집어들고 샤워기 물에 몇번 겉을 비벼 흘려보낸다. 딱히 결벽증 같은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쓰기엔 마음이 좀 찝찝하다.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탕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길에 정면으로 나무로 만든 썬베드 같은게 있었는데, 남자 한 명이 중요부위에 수건을 올린채 자고 있었다. 단 한번도 목욕탕 내에서 잠을 자본 적이 없는 나는 오늘도 탕안에 누울 수 있는 자리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온탕앞에 도착했다. 오른발을 조심스레 담가보았다. 발가락부터 들어가 복숭아뼈를 지나 정강이까지 잠겼는데, 그닥 뜨겁지 않았다. 그대로 허벅지거쳐 무릎을 구부리며 엉덩이를 물속으로 밀어넣었다. 탕 안쪽에 앉을 수 있는 곳에 앉으려다가 그냥 그대로 쑤욱 미끄러지듯 목까지 온탕안으로 들이 밀었다. 아.. 따듯하고 편안한 이 느낌. 좋다.


허리를 구부리지 않는게 허리에 좋겠다고 생각해서 팔꿈치를 탕안쪽 앉을 수 있는 턱에 대고, 머리는 탕 담벼락 위에 올리고는 다리를 쭈욱 뻗었다. 허리가 일직선으로 펴진 것 같지가 않아 팔을 좀 더 몸 안쪽으로 옮기고 머리를 뒤로 더 제쳤다. 조금 나아진 것 같긴 한데, 목이 문제다. 일자로 펴기엔 탕 담벼락이 너무 높고, 팔꿈치로부터 거리도 가까웠다. 머리를 완전히 탕 담벼락 위에 눕듯이 데고 몸을 수면위로 띄우면 몸이 일자로 펴지긴 하겠지만, 나의 하체의 중심부가 수면위로 올라올 것 같아 관두기로 했다. 어차피 서로의 알몸을 다 보이는 장소이긴해도 상어의 등지느러미처럼, 탕 안에서 홀로 우뚝 솟아오르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탕안에서 묙욕탕안을 둘러보았다. 맞은편의 아저씨는 탕안에서 두 다리를 있는 힘껏 벌리고 있었다. 물속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저씨 어깨너머로 사우나실이 보인다. 한 아저씨가 두 팔을 앞으로 쭈욱 편 채. 한 다리씩 무릎을 손바닥에 닿게 하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사우나실 오른쪽으로는 때밀이아저씨가 있었다. 손님 한 명이 다가가 말을 걸고 있었다. 요즘 때밀이 가격은 얼마인가 봤더니 18000원 이었다. 어릴적에는 때밀이 아저씨한테 몸을 거의 매번 맡겼었는데, 중학생이후 정도로 생각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때밀이를 남에게 부탁한 적이 없다.


몸을 뒤집어 엎드린 자세로 바꿨다. 서서 샤워하는 곳 오른편으로 앉아서 씻는 곳이 있다. 방금 막 들어온 사람이 샤워기로 다가간다. 옆사람에게 물이 튀는 것을 피하기위해 가급적 서로 떨어진 자리에 샤워기를 사용한다. 이렇게보면 참 다들 배려심이 깊은데.. 설마 발가벗겨져 있어야만 가능한 걸까? 앉아서 씻는 곳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둘 다 손에 이태리타올을 끼고 있었다. 한 분이 이태리타올을 내려놓고는 목욕탕에서 제공하는 긴타올에 비누를 문지른다. 등이 손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조니 어릴적에는 옆사람에게 등 좀 밀어달라고 부탁하고 그러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사라진건가 싶었다.


탕안에서 누워있는 것 보다 샤워기로 흐르는 물줄기를 맞는 걸 더 좋아하지만, 오늘은 허리가 아픈 관계로 서 있는 것이 불편해 평소보다 탕안에 더 오래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나가기가 싫다. 뜨거운 어묵국물이 생각난다. 한모금하면 기분이 째질것만 같은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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