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티브이는 화면에 붉은 기운이 감돌아 눈이 피로했는데 새 티브이를 트니까 화창하게 날이 갠 것 같다. 오래 감겨 있던 눈이 떠져서 새로운 세상을 보는 기분이야.”
휴대전화가 들려주는 엄마의 목소리는 맑고 또랑또랑하다. 화질이 지나치게 선명해 바삭바삭 튀긴 치킨의 고소한 냄새까지도 맡아지는 듯한 TV처럼. 홈쇼핑에서 큰 맘 먹고 장기 무이자 할부로 샀다는 TV. 엄마는 TV를 구입해서가 아니라 어떤 굴레에서 조만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로 콧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TV는 자축의 의미로 들여놓은 거겠지.
“너도 공항에 올 거지? 이모가 구년 만에 귀국하는데…….”
Q는 맞장구를 치듯 아, 아, 했다. 솔직히 이모의 귀국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꼭 공항까지 마중을 나가야 해?”
“어차피 만날 텐데 이왕이면 공항에서 반겨주면 좋잖아. 서울에 살면서 코빼기도 안 비치면 서운하겠지.”
“이러니 저러니 뒷말이 많겠지만 신경 안 써. 근데 이모는 언제 와?”
Q는 아무래도 그 마중이 달갑지 않았지만 엄마를 생각해서 움직여 보기로 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들떠 있었다. 짐작이 가는 활기였다. Q는 전화를 끊고 나서야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할머니의 몸 상태가 어떤지 물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통화가 길어질 것 같아서였다. Q가 할머니의 안부를 물으면 엄마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꼬리를 이어 갔다. 자기 동생들이나 지인들에게는 차마 내뱉지 못하는 적나라한 푸념이었다.
팔십 고개를 넘으면서 부쩍 병원 출입이 잦아진 할머니가 어느 날 정신을 잃어 집이 발칵 뒤집혔다. 머지않아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놓지 않은 스스로를 책망하며 앨범을 뒤적였다. 해마다 명절에나 겨우 얼굴을 내미는 외삼촌은 한달음에 달려와 툭하면 눈물바람이었다. 엄마와 외삼촌도 할머니의 죽음을 단정하는 눈치였다. 폭우가 쏟아지기 직전의 하늘처럼 어두침침하고 뒤숭숭한 기운이 집 안에 감돌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생동생동해졌다. 대신 걷지 못했다. 수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걸음발이 둔했는데, 이번에 고비를 넘기면서 두 다리가 아예 굳어버린 것이다. 혼자서는 용변을 보러 욕실에 드나들 수 없으니 필히 기저귀를 차야 했다. 이런 지경인데도 두 다리에 남아 있던 생기가 죄다 입으로 고여 들었는지 할머니는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달게 먹었다.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어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접할 때면 꼬리를 잘랐는데도 아가미가 힘차게 팔딱거리는 물고기가 Q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엄마는 딸이면서도 친정엄마를 십 년 넘게 모셨다. 그때도 할머니는 건강한 몸이 아니었다. 만약 깐깐한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이모나 외삼촌이 그렇듯 염치도 좋게 행동했을까. Q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형부이자 매형이 있었다면 하다못해 눈치를 보는 시늉이라도 했을 터였다. 그 무렵 독신을 고집하던 외삼촌은 여의치 않은 사정을 내세워 딱 일 년 만 할머니를 보살펴 달라고 했다. 엄마는 남동생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줬다. 1년은 금세 흘러갔다. 외삼촌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자꾸만 일이 꼬여 빚이 늘어나는 처지가 이유였다.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장녀. 누구보다 친정엄마의 속마음을 잘 아는 큰딸. 옛날 옛적 집안 이야기를 질려하지 않고 입에 올리면서 함께 늙어가는 두 여자. 부양의 환경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할머니는 Q의 집에 눌러 앉아 십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할머니가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자 엄마의 마음이 들썽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엄마는 ‘1년 만’이라고 했던, 먼지가 두텁게 내려앉은 그 시간을 끄집어냈다.
“내가 엄마를 정확히 십이 년 모셨더라. 힘에 부쳐서 더 이상은 못하겠어. 내 몸도 여기저기 망가져 약을 입에 달고 살거든.”
외삼촌의 생활형편은 누가 봐도 옛날보다 나아졌으니 또다시 책임을 회피한다면 병석의 부모를 사이에 두고 낯 뜨거운 분란이 생길 터였다. 외삼촌은 부양의 바통을 이어 받기로 했다. 엄마가 TV를 구입한 배경에는 이런 사연이 숨어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이모는 딴사람 같았다. 9년이라는 세월의 힘을 실감했다. Q는 억지로 반가운 티를 내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몸에 군살이 붙어 너부데데해진 이모가 “나이스 투 미츠 유” 하며 어깨를 으쓱거리거나, “한국에 오니까 너무 해피해” 하면서 민망스럽게 굴었기 때문이다. 거의 십 년 만에 만난 피붙이들이 공항 로비에서 얼싸 안고 울면 어쩌지 싶었는데 그들의 만남은 어째 뜨뜻미지근했다. 묵직한 세월은 외모만 바꿔놓은 것이 아니라 감정까지도 무디게 만든 모양이었다.
“모처럼 한국에 왔으니까 여행이나 하면서 푹 쉬다 갈랬더니 엄마는 하필 이때 쓰러지고 난리야. 근데 엄마는 아예 못 걸어?”
외삼촌이 핸들을 잡은 승용차의 조수석에 앉은 이모가 야기죽거렸다. 엄마와 외삼촌이 할머니의 거처에 대해 말하는데도 이모는 일부러 그러는 듯 “야경이 아기자기하니 참 예쁘다” 하며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엄마가 언니의 손맛에 길들여졌는데 그 집을 떠난다고 할까?” 하면서 외삼촌을 흘깃 쳐다봤다. 언니가 이왕 맡았으니 계속 보살피라는 말투였다. 자기는 이 문제와 전혀 상관없다 듯이 행동하는 그 뻔뻔함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아 Q의 입이 근질거렸다.
Q는 뒷좌석에 푹 잠겨 먹색 도화지 같은 하늘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후―, 하고 입김을 길게 불면 어느 순간 까맣고 깊은 하늘로 빨려 들어가는 상상을 하면서도 귀는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지인이 베트남 출신 도우미를 알아봐 준댔어요. 내가 환자 옆에 노상 붙어 있을 수도 없고…… 아예 우리 집에서 먹고 자는 도우미면 좋겠는데…….”
외삼촌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단판을 짓겠다는 어떤 의지가 Q의 귀에 젖어들었다.
“베트남 출신 도우미라니? 그러니까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를 밤낮 엄마 곁에 두겠다는 거야?”
엄마가 발끈하며 운전석으로 머리를 바싹 내밀었다.
“한국말은 어느 정도 하겠죠. 못해도 어쩔 수 없고요.”
“노인돌봄서비스라는 게 있던데 알아 봤어?”
“그건 일대일 집중 케어가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그 돌봄서비스의 조건에 맞는지도 모르겠고요.”
이들의 대화는 곧 황색불에서 빨간불로 바뀔 것 같은데, 4차선 도로는 녹색불이 계속 이어져 승용차가 시원하게 달렸다.
“상주하는 도우미라면 돈을 꽤 줘야 할 걸? 차라리 요양원에 모시는 게 낫겠다. 안전하고, 같은 처지의 노인들이 있으니 외롭지 않을 테고.”
손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매만지던 이모가 불쑥 끼어들었다. 외삼촌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대신 해주듯이. 분명 ‘요양원’을 ‘양로원’ 같은 곳으로 여길 엄마가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베트남 출신이든 필리핀 출신이든 알아서 해라. 요양원에 보내는 것도 방법이겠네. 잘난 딸 덕분에 캐나다에서 호강을 누리게 해주든지.”
“언니는 무슨 그런 섬뜩한 농담을 해?”
이모가 이쪽으로 머리를 홱 돌리더니 정색하며 말했다. Q는 이모에게 할머니라는 불똥이 떨어지는 상상을 하며 피식 웃었다. 이내 답답한 현실이 눈앞을 가렸다. 엄마가 정말 베트남이든 필리핀 출신 도우미의 손에 할머니를 맡기게 내버려 둘까. 양로원 같은 요양원이면 어떤가, 과연 이렇게 생각할까. 할머니가 외삼촌의 집으로 가고 나면 엄마는 ‘맨발학교’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맨발학교의 학생이 되어 어딜 가든 빠짐없이 출석해서 맨발로 황톳길을 걸어보겠다고. 황톳길을 공책 삼고, 맨발을 연필처럼 움직여 땅과 자연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포부가 컸다. 그건 한마디로 이제부터는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는 뜻이었다. 누군가의 장녀이자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해낸 후 황혼기에 접어든 ‘나’를 떠받들자는 다짐. 그런데 안타깝게도 엄마는 천성적으로 마음이 약한 여자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