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할머니의 여든 세 번째 봄

by 김설원

며칠 동안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더니 대번 햇살의 감촉이 달라졌다. 벌써 봄이 찾아 왔나? 그녀는 털실을 구겨 신고 휘적휘적 대문 밖으로 나갔다.

“아이고 고와라!”

천지에 가득한 햇살을 보자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보드라운 바람까지 불어 동네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 같다. 한 발, 두 발, 세 발……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뒷짐을 지고 섰다. 자기도 모르게 허리가 꼿꼿이 세워지면서 스르르 눈이 감긴다. 정수리, 이마, 입술, 어깨, 가슴, 허리…… 몸 구석구석 햇살이 스며든다. 봄볕은 약초 같다. 메마른 논이나 다름없는 할망구의 몸에 이렇듯 물길을 터주니 말이다.

그녀는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널찍한 마당을 바장인다. 누군가가 뒤에서 다정하게 밀어주는 기분이다. 어째 오늘은 경적을 울리면서 집 앞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들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쭉쭉 뻗어 올라 시야를 가로막는 아파트까지도 말이다. 세상이 정말 놀랍게 탈바꿈했다. 소달구지가 지나다니던 흙길은 아스팔트로, 동네를 푸근히 감싸주던 들판은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렸다. 하긴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시간이 흘렀는데 뭔들 온전히 남아 있을까. 그래도 육십 년이 넘도록 몸담고 살아온 집과 텃밭은 세월의 물살에 씻기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긴긴 세월을 붙어 지내서 어떤 때는 집과 텃밭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동기간 같기도 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싱그러운 봄을 함께 맞이했다. 축복이 따로 없다.

사랑하는 내 새끼들아!

오늘은 이렇게 불러보고 싶다. 내 새끼들. 엄마가 밤낮 일에 치여 살아서 삼시 세끼 밥이나 겨우 해먹였어도 구김살 없이 무럭무럭 자란 내 새끼들. 봄바람을 쐬며 마당을 걷고 있자니 자식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오른다. 텃밭에 왔다. 쪽파, 마늘, 시금치, 양파, 상추, 보리감자, 정구지, 딸기, 강낭콩 싹들이 앙증맞게 돋아났다. 시금치는 캐서 먹어도 될 만큼 자랐다. 새봄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텃밭의 채소들. 그녀는 밭고랑을 느릿느릿 걸으며 어여쁜 새싹들을 눈으로 쓰다듬는다.

“청도군 이서면 대곡리 칠십이번지. 우리 집에서 뿌리를 내렸으니 너희들 본적은 여기다, 그쟈?”

새끼손가락만큼 자란 쪽파가 고개를 끄덕이듯 봄바람에 하느작거린다.

“나도 니들과 같은 시절이 있었겄지. 어마이 뱃속에서 태어나 젖을 먹던 시절이.”

그녀는 밭고랑에 그대로 앉아 버린다. 흙에서 따스한 기운이 올라온다. 평소에도 그녀는 밭일을 하다가 일손을 놓고 상념에 잠긴다. 요즘에는 그 횟수가 잦아졌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 눈을 감고 있노라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순애야 밥 먹어라” “순애야 읍내 가자”, 아버지가 몰고 오는 손수레 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언젠가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하도 생생해서 대문 밖까지 나가보기도 했다. 어머니 대신 승용차들만 오가는 도로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자니 세상이 텅 빈 것 같았다.

오늘은 웬일인지 자식들에게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 누가 땅을 사서 건물을 지었다느니, 뒷집 막내딸이 결혼했다느니, 바닷바람을 쐬고 싶다느니 하는 잡담이 아니라 오로지 ‘박순애’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는 평생 입이 무거운 며느리, 아내, 엄마로 살아왔다. 묵묵히,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소. 이것이 그녀의 모습이었다. 나만 꾹 참으면 집안이 편해진다는 생각을 품고 일평생을 보냈다. 그래서 오늘은 자식들에게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털어놓고 싶다. 노고, 희생 따위를 앞세우며 생색을 내려는 게 아니다. 그저 이대로 눈을 감으면 많이 섭섭할 것 같아서 그런다. 여든 세 번째로 맞은 봄에, 내년에도 이 향기로운 계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더욱 소중해지는 봄날에 불쑥 속내를 보여주고 싶은 에미의 마음을 자식들이 헤아려주겠지. 내 새끼들아, 지금부터 거짓 없이 꺼내 놓는 나의 수다를 들어봐라. 그녀는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그러다 의아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중얼댄다. ‘그런데 영호야, 정숙아, 정미야, 너희들 다 어디로 갔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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