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에게

by 김설원

오늘은 대체 뭐가 부족해서 밉살맞게 구는 거니. 적어도 밤에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잖아. 지금 몇 신 줄 알아? 새벽 두 시가 넘었어. 빨리 잠을 자야 오늘 첫 기차를 탈 수 있단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오늘은 삶의 관록이 만만찮은 분들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어. 소설의 집을 어떻게 짓고, 그 집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말이야. 그래서 저녁식사 후 평소보다 더 정확하고 절도 있게 몸을 움직였지. 누워서 양쪽 다리를 좌우로 움직이고, 천장을 바라보며 허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고, 원통형의 기다란 운동기구를 등에 대고서 위아래로 문질러대고, ‘거꾸리’에 몸을 밀착시킨 뒤 공중에서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취하고, 이것에 더해서 오늘은 반듯하게 누워 양쪽 다리를 붙인 다음 45도 각도까지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새로운 운동까지 했어. 원래는 내일모레 병원에 가야 하는데 하루 앞당겨 물리치료도 받고 왔다고. 오늘 강의할 때만이라도 너의 성깔을 좀 죽이려고 말이야. 이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너는 어깃장 부리듯 설쳐대는구나. 이 새벽에 너는 색다른 느낌으로 내 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허벅지부터 발등까지 빈틈없이 조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옆구리나 엉덩이 속을 콕콕콕 쪼아대네. 전기에 감전된 느낌이기도 해. 이것뿐만이 아니야. 멀쩡하던 왼쪽 다리로까지 자리를 넓혀서 보란 듯 힘을 발휘하고 있어. 내 몸에서 수년 째 기생하며 생긴 미운정도 정이니까 나의 마음을 헤아려줄 수도 있으련만.

너는 어둠이랑 친하지? 낮에는, 내가 햇빛을 받으면서 걸어 다닐 때는 누구 눈치 보듯 잠잠하다가 밤이 되면 슬슬 기지개를 켜잖아. 너는 밤의 그림자인 어둠과 손을 잡고 욕심껏 존재감을 드러내지. 밤이 깊을수록 너의 그 과시욕은 부풀어. 바로 지금이 그래. 내 몸에 네가 촘촘히 거미줄을 쳐놓은 것 같다. 너한테 꽁꽁 묶인 기분이야. 눈에 보이지도, 냄새도 풍기지 않지만 이 순간 내 눈에는 네가 속속들이 보여. 너한테서 지독한 냄새도 맡아지고. 네가 점점 몸집을 키우며 나를 옭아맬 수 있게 도와주는 건 어둠이지. 어둠이 내리면 너는 “어둠아, 어서와!” 하면서 얄밉게 활개를 치니까. 허리를 좌우로 비틀어보고, 발가락을 쥐었다 폈다 해보고, 허벅지와 무릎을 툭툭 치다가 주무르기도 하고…… 아! 새벽 세 시가 가까워온다. 시간에 쫓기니까 너무 불안해. 세상에 너와 어둠만 살아있는 것 같아. 내가 너를 만난 게 언제였더라…… 햇수를 떠올려 보니 인연이 깊구나. 그 해 너를 처음 느꼈을 때 바로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며 참았어. 매달 내 통장에서 실손보험료가 꼬박꼬박 빠져나가는데도 미련하게 치료를 멀리했어. 그렇게 몇 해가 지나 내원해서 MRI를 찍었는데 의사가 깜짝 놀라더라. 아직 젊은데 몸이 왜 이러냐면서. 내 척추 사진을 보여주는데 정말 부끄러웠어. 이 나이 먹도록 자기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소설을 써보겠다고 다짐한 후 ‘소설은 엉덩이와의 싸움’ 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책상 앞에 앉아 읽고 쓰는 일에 매달렸으니 일종의 직업병이지, 뭐.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은 후 너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수술할 단계는 아니라고 했어. 어느 질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허리디스크는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대. 치료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내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는 거야. 질병이 생기니까 귀가 얇아지더라. 어느 병원, 어떤 의사가 허리디스크 치료를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차선 변경하듯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어. 병원에서 시술도 해보고, 한의원에서 처음 들어보는 침도 여러 차례 맞아보고, 실력이 짱짱하다는 의료진에게 도수치료도 받아보고, 인대를 강화하는 주사도 맞아보고…… 심지어는 지인이 귀한 거라며 안겨준 ‘말벌주’까지 마셔 봤다. 비가 내리고, 습도가 높고, 날이 추워지면 더욱 악착같이 달라붙는 너를 떼어내기 위해서. 내가 너를 만나고 가장 충격을 받은 게 언젠 줄 아니? 문학기행이나 세미나에 참석하면 이 사람 저 사람이 사진을 찍잖아. 그때마다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주는데 언제부턴가 내 모습이 볼썽사나운 거야,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뭐가 문제일까, 하고 사진을 유심히 봤지. 아, 이거였구나. 사진마다 내가 서 있는 모습이 똑같았어. 남자처럼 뒷짐을 지고는 두 다리를 쫙 벌리고 서 있는 모양새. 그런 자세를 취하면 너를 덜 느끼니까, 몸이 한결 편해지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모습으로 서 있었던 거야. 그날 너한테 완전히 패한 기분이었어.

그래도 딱 하나, 너한테 고마운 게 있어. 그건 바로 너 때문에 내 몸을 아끼게 됐다는 사실이야. 너를 만나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내 몸을 애지중지하지 않았거든. ‘건강 교만’에 젖어서 내 몸 어디 하나 제대로 돌보지 않고 무관심 했지. 매일 아침 허리를 쫙 펴고서 오천 보 이상 걷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규칙적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어디서든 조심조심 내 몸을 위해주고, 식생활 습관을 바꾸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가도 꼭 삼십 분에 한 번씩 일어나 몸을 풀어주고……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렇듯 내 몸을 아낀 적이 없었어. 진작 이랬다면 지금 내 몸은 생기와 향기로 가득하겠지. 후회스럽지만 이제라도 너를 만나 내 몸 귀한 줄 알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해. 어? 다리가 부드럽고 따뜻해지네? 통증아, 너 어디 갔니? 잠 들었어? 아, 그래, 그래, 알았어. 네가 잠든 것 같으니 나도 얼른 꿈나라로 가야지. 네가 언제쯤 내 곁을 떠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날 좀 살살 다뤄줘, 부탁이야. 슬슬 눈이 감긴다. 통증아, 굿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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