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털사이트에서 ‘운세박사’를 즐겨 찾는다. 누구 말대로 복(福)이란 재앙 없는 생활이 이어지는 거라면 나는 복 받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재앙이 없다는 건 달리 말해 밋밋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그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지루함과 권태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이것도 정신적인 고통의 일종이겠지.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 작작하라고 핀잔을 주겠지만 그 무엇에 관해서든 내 손톱 밑의 작은 가시가 가장 아픈 법이니까. 그래서 운세박사로 눈길이 가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뭔가 좀 화끈한 일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오늘, 내일, 이번 주, 이달, 신년으로 조각조각 나눠서 알려주는 운세는 거의 맞지 않았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사랑 고백을 받는다거나, 합격 또는 승진을 하고,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온다는 식이었다. 그래도 운세박사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미미하게나마 어떤 기대와 의욕을 안겨주는 운세박사의 문장 때문이었다. 운세가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인기가 많아지고 애인이 생기는 시기예요” “행운이 당신을 따라다니고 있어요” “메마른 가뭄 끝에 반가운 빗소리가 들리니 그간의 노력이 빛을 보겠네요” 같은 문장들을 접하면 순간이나마 가슴 한쪽이 환해졌다. 어떤 날은 그 예언의 문장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기도 했다. 이를테면 “예상보다 늦어지더라도 분명 반가운 소식이 있을 거예요” 라는 운세박사의 속삭임을 들으면 시들시들해진 두 손이 조금이나마 생기를 되찾았다. 물론 불길한 예언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뜻밖에 원수를 만난다거나,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고, 설상가상으로 얼어붙은 땅에 눈까지 내린다는 운세를 보면 엉터리라고 무시해 버리곤 했다.
운세박사는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 첫날 그 해의 주인공 원숭이가 가져다준 운세앱이었다. 나의 병신년 운세는 그저 그랬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운세. 그해 신년의 운세 내용 중 기억나는 문장은 “과도한 음주와 쇼핑은 멀리 하세요”였다. 주머니가 두둑해야 마음껏 마시고, 욕심껏 쇼핑하지. 공연히 운세박사에 대고 푸념했다. 고개를 돌리려는데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띠란 사람들의 심장에 숨어 있는 동물입니다’, 이 문장이 일렬로 늘어선 열두 마리의 동물 위에 중절모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그 말대로라면 원숭이띠들은 심장에 원숭이가 숨어 있다. 양띠들은 양이, 닭띠들은 닭이, 토끼띠들은 토끼가. 그렇다면 내 심장에는 개가 숨어 있겠네. 그날의 감정 때문이었는지 저마다의 심장에 웅크리고 있는 용이나 말, 돼지, 소가 왠지 애잔했다. 못내 그리워하고, 차마 말하지 못한 삶을 살다 떠난 누군가의 영혼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