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철씨,
어머니의 자서전은 왜 쓰게 됐나요?

by 김설원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해 가을의 문턱에서 맞닥뜨린 광경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고, 다음 날 일찍 눈이 떠졌다. 새벽 5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어머니의 방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당신은 새벽 예배를 드리기 위해 벌써 집을 나선 것 같았다. 그 순간 어머니가 새벽이슬을 맞으며 걸어간 길을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사진 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언덕배기에 세워진 교회는 여명 속에서 신비한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다.


교회의 출입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신도들의 애절한 기도소리가 나를 휘감았다. 기도에 집중하라는 뜻인지 불을 약하게 켜놔서 어디가 어딘지, 누가 누군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단박에 어머니를 알아봤다. 어머니는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걸어가 어머니 가까이에 앉았다.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자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입에 올리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있었다. 흐릿한 불빛에 감싸인 어머니를 바라보는데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아마도 그 기도소리가 내 귀에 유언처럼 들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웅크린 모습마저 한없이 작고 애처로워 보였다. 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 없이 자리를 떴다.


그해 초가을 새벽에 느낀 애틋한 감정이 나로 하여금 펜을 쥐게 했다.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하얘지는 어머니를 책 속에 살려놓고 싶었다. 먼 훗날 언제라도 책을 펼치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태어나서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은 생명력이 가득했다. 고향 사람들의 정직하고 악착같은 생활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부들이 잡아온 물고기와 각종 해산물이 널찍한 마당에 쌓이면 동네는 잔치 분위기였다. 내 조부와 부모님은 그 바다 식량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독식’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우리 집 뿐만이 아니었다. 그런 나눔의 미덕이 꽃가루처럼 흩날려 내 고향은 부유하지 않았어도 향기로웠다. 고향 사람들의 땀 냄새, 씩씩한 발걸음, 건강한 숨소리가 어우러진 그윽한 냄새였다.


책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어머니를 매개체로 하여 우리 집안이 담쟁이넝쿨처럼 푸릇푸릇한 잎을 무성히 피웠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조상과 자손의 다소 낯설면서도 친근한 만남. 나는 어머니의 자서전을 통해 그런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아울러 자서전에 기록해둔, 인구가 가파르게 줄어들어 지도상에서 없어질 위기에 처한 내 고향의 생김새와 희로애락을 오래오래 기억해주기 바란다. *